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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황시운] 버티는 사람들
많은 작가가 어려서부터 독서광이었던 것과 달리 나는 책 읽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평생 읽고 써야 하는 직업을 갖게 되었지만, 이후에도 내게 독서는 어렵고 재미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사고 이후 만성적인 신경병증성 통증에 시달리게 되면서 집중력은 완전히 무너졌고 난독 증상까지 나타났다. 읽을 수 없게 되자 쓰는 일마저 고통스러워졌다. 어떻게 해도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도망치고만 싶었다. 포기를 합리화해줄 핑곗거리가 필요했다. 그러나 아무리 궁리해봐도 걸리는 게 없었다. 아무도 내게 읽고 쓰라고 강요한 적이 없었다. 애초부터 재능...
입력:2019-03-22 04:05:01
[살며 사랑하며-하주원] 관심을 가져야 할 것
어릴 적 아침에 일어나서 배달된 우유를 냉장고에 넣고 일간신문을 읽었다. 우리 집은 색깔이 다른 신문을 세 가지 구독했는데, 같은 사건에 대해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비교하면서 읽는 것이 커다란 재미였다. 책을 마음껏 사달라고 할 만한 형편이 아니어서 읽을 책이 없을 때 가장 괜찮은 읽을거리였다. 그때라고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는 못할 때가 많았다. 중간에 어려운 한자도 섞여 있었고 관심을 갖기 어려운 기사도 꽤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인터넷신문을 더 많이 보는 시대에는 종이가 찢어질까 조심스레 넘기는 수고조차 하지 않고 기사를 ...
입력:2019-03-20 04:05:01
[살며 사랑하며-신용목] 인간의 자리를 지키는 것
우리는 ‘사회화’ 과정을 통해 그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대로 사유하고 처신하는 요령을 터득한다. 물론 살아남기 위해서다. 사회화는 앞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과정이며, 이제 한 인간의 생존능력을 결정짓는 요인이다. 그 사회의 원리에 수용됨으로써 자연으로서의 한 인간은 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며 나아가 국민이 된다.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말은, 그 사회의 이상과 그의 삶이 잘 맞아떨어진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초원에 사는 이가 철 따라 양 떼를 모는 것처럼, 북극해 연안의 부족들이 얼음을 쪼아 집을 짓는 것처럼, 그가 속한 곳의 성격에 따라 ...
입력:2019-03-18 04:10:01
[살며 사랑하며-황시운] 헤어지는 중입니다
지난 토요일, 오래 아프던 이가 끝내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떠나기엔 너무 젊은 사람이었다. 비보를 접하는 순간 허방을 짚은 것처럼 마음이 풀썩 내려앉았다. 그리고 며칠간, 깊은 우울감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사실 그는 이미 한참 전부터 위중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나는 그가 아주 오랫동안 모두의 곁에 있어 줄 거라 믿었던 것 같다. 매일 아침 그가 SNS에 올린 글을 일부러 찾아보며 그의 안녕을 확인했지만, 그가 이렇게 빨리 떠날 거란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는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누구보다 뜨겁게 삶을 예찬하던 사람이었다. 아마 그래...
입력:2019-03-15 04:10:01
[살며 사랑하며-하주원] 다시, 미안하다
20년 전 잠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나와 손님이 둘 다 제대로 앞을 보지 않아서 손님이 음식을 내 옷에 쏟은 적이 있었다. 어쨌든 둘이 부딪혔고 나도 주의했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 같아 죄송하다고 말했다. 무릎을 꿇고 사죄한 것도 아니고 가볍게 죄송하다고 했을 뿐인데, 도리어 사장님께 굉장히 혼났다. 나 혼자 잘못한 상황도 아닌데 그렇게 쉽게 사과하면 어떡하냐고 화를 내셨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미안하다는 말을 쉽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은 자영업자의 상식과도 같았다. 고객이 불만을 제기했을 때 죄송하다는 말 빼고 모든 말은 다 해도 된다. 왜냐하면 ...
입력:2019-03-13 04:10:01
[살며 사랑하며-신용목] 백자의 시간
박물관에서 백자를 보았다. 부드러운 선의 둘레 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백자. 아름다웠다. 인공적이지 않은 인공 같아서, 한때 인간은 자연을 만들 줄 알았구나, 생각했다. 연하게 반짝이는 표면이 위로 갈수록 좁아지더니 주먹 하나가 들어갈 만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술이나 귀한 액체류를 담았을 테니 당연한 구조겠지. 하지만 이제 유리관을 뜯고 꺼내 거기 술을 따를 리 없으니, 아니 원래의 이유를 먼 시간 밖으로 돌려놓으며 할로겐 조명을 받고 있으니, 백자는 정말이지 다른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가령 머리를 올려놓아야 할 자리를 비운 채 제 속을 열어놓은 어떤 ...
입력:2019-03-11 04:10:01
[살며 사랑하며-황시운] 특별하지 않은 삶은 없다
“고모는 어렸을 때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어요?” 올해 열 살, 아홉 살이 된 연년생 조카들이 물었다. 지난 주말 저녁, 함께 뒹굴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중이었다. 내가 먼저 아이들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물었는데, 아이들은 그걸 ‘어떤 직업을 갖고 싶냐’는 질문으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아니, 그렇진 않았어.” “그럼 뭐가 되고 싶었는데요?” 아이들이 새까만 눈동자를 빛내며 물었다. “글쎄….” 한참을 머뭇거렸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사실 나는 되고 싶은 것이 없는 아...
입력:2019-03-08 04:10:01
[살며 사랑하며-하주원] 마약 생각
요즘 마약에 대한 생각이 많다. 버닝썬에 대한 뉴스가 쏟아지고 마침 마약의 특징과 역사에 대해 소개한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를 재미있게 읽고 더 그렇다. 나는 매일 향정신성의약품과 함께 지내고 처방하고, 마약류 통합 관리 시스템(NIMS)에 접속한다. 지난해 엄격해진 NIMS에 적응하느라 명절에도 나와서 고생했는데,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고 작은 의원이나 약국에서 전산화를 위해 장비도 각자 구입하고, 매일 전산 보고하는 것은 꽤 벅찬 일이었다. 도대체 이걸 누가 빼돌린다고 이렇게까지 하나 싶었는데 마약 관련 범죄가 늘어나고 우리 생활에 더 ...
입력:2019-03-06 04:10:01
[살며 사랑하며-신용목] 제 몫을 다하며 지나간다
이제 나에게도 십 대 자녀를 둔 친구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최근 한 친구의 고민은 자녀가 말도 잘 안 섞을 뿐더러 아예 제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도무지 가족모임에 끼지 않으려 하는 것도 거슬리는데, 일기장에 ‘죽음’이란 단어를 써놓았다며 걱정했다. 친구는 이른 사춘기를 맞이한 자녀의 버릇없음을 대놓고 나무라야겠다고 화를 내기도 하고, 혹여 자녀가 잘못된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하기도 하며, 새삼 처음인 부모 역할에 당황하고 있었다. 부모의 일이라면 내가 영원히 알 수 없는 영역이니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여전히 부...
입력:2019-03-04 04:10:01
[살며 사랑하며-황시운] 그날, 그곳, 그 사람들
고교 시절 내 관심사는 오로지 ‘나’였다. 그때 나는 내 존재의 보잘것없는 일면들을 들춰보며 매일 좌절했다. 그리고 누추하고 나약한 내면을 숨기려고 일부러 가시를 세운 채 사소한 반항을 일삼았다. 생전 안 그러던 애가 어깃장을 부리기 시작하자 부모님은 당황했다. 얌전한 모범생들의 순종에 익숙해 있던 교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자꾸만 학교 밖을 서성였다. 머릿속이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내 머리가 펑 터지거나 활활 타버릴 것만 같아 불안할 지경이었다. 나는 그렇게, 단 한순간도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성인이 되었다. ...
입력:2019-03-01 04:10:01
[살며 사랑하며-하주원] 심리적 연좌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의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은 범죄자나 가해자에 준하는 책임을 갖는 것이 마땅한가 아니면 또 하나의 피해자인가. 어렸을 적 사극에서 대역죄인을 처형할 뿐 아니라 삼족을 멸하라는 명령, 그래서 영문을 모르는 자손까지 억울하게 귀양 가거나 목숨을 잃게 되는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물론 그런 연좌제에는 연대책임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씨앗을 미리 없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외에도 행위를 한 당사자의 가족도 잠재적인 가해자로 보는 심리적인 연좌제는 우리 문화에 많이 남아 있다. 다른...
입력:2019-02-27 04:10:01
[살며 사랑하며-신용목] 사랑을 지켜주는 나라
세상에는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원칙이 있다. 예컨대 ‘인권’ 같은 것. 그것이 아무리 기본이라 할지라도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배웠다.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뿐 아니라 여성과 소수자, 권위적인 조직문화 개선과 갑질 반대 운동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계속되는 싸움이 인권을 지켜내기 위한 과정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한 이견이 있지만 대부분 논란거리가 못 되는 것들이다. 어떤 정권이나 정책도 인간의 인간다움을 해친 자리에 서 있는 이상 자기 정당성을 가질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가치를 일컫는 ...
입력:2019-02-25 04:05:01
[살며 사랑하며-황시운] 칼이 되는 말
누구나 간혹, 순간적으로 치솟는 화를 참지 못해 입에 담지 못할 모진 말을 뱉기도 한다. 그 자리에 없는 사람 얘기를 하다가 본의 아니게 남의 험담이나 전하는 채신머리없는 사람이 되는 수도 있다. 말이 칼이 되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 생각보다 흔하게 일어난다. 나쁜 의도가 없었더라도 일단 벌어진 일은 수습해야겠지만, 이런 종류의 실수는 대개 가까운 이들에게 저지르기 마련이어서 제대로 된 수습도 쉽지 않다. 흐지부지 넘어가 볼까 싶어 모른 척하려 해도 내내 꺼림칙하고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자책으로 밤을 ...
입력:2019-02-22 04:10:01
[살며 사랑하며-하주원] 거기 자리 있어요
공중목욕탕에 갈 때마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왜 다들 자리를 맡는 것일까? 샤워기가 있는 좌석에는 어김없이 이미 바구니와 수건으로 자리가 맡아져 있다. 유명한 온천,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 찜질방, 동네 낡은 대중탕 모두 마찬가지다. 남탕에 가본 적이 없으므로 남탕에서는 그렇게 자리 맡는 일이 전혀 없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측정해본 적은 없지만 분명 여탕 이용자의 짐이 더 많을 것이다. 깜빡 잊고 안 갖고 온 경우를 제외하면 비치된 비누를 그냥 쓰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단순히 목욕 짐이 많은 탓이라면 그 자리에 두더라도 다른 사람이 쓰고 ...
입력:2019-02-20 04:10:01
[살며 사랑하며-신용목]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
글을 쓰려고 앉았다. 새해 다짐이 그새 느슨해진 탓도 있겠지만 원래 게으름에 대해서라면 나는 장인에 속한다. 그러나 더는 미룰 수 없는 일이 많았다. 그때, 늘 그 자리에 있던 맞은편 책장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자리에 있는 책장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다른 곳으로 치워야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침대 옆으로 옮기는 게 좋을 것이다.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침대의 방향을 바꾸었다. 역시 먼지는 숨바꼭질의 대마왕이다. 뒤늦게 술래를 부지런하게 만든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했다. 이제 책장만 옮기면 된다. 하지만 거기 잔뜩 ...
입력:2019-02-18 04:05:01
[살며 사랑하며-황시운] 앞서 걷는 이의 품위
오래전, 한 개그맨이 SNS에 올린 게시물에 긴 댓글 행렬이 이어지는 걸 본 적이 있다. 유명 연예인의 게시물에 수많은 댓글이 붙는 거야 예삿일이지만, 연예인 본인과 아무 상관없는 댓글이 줄줄이 달리는 건 흔치 않은 일이어서 흥미로웠다.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그 개그맨의 오랜 팬이라는 고등학생이 쓴 ‘나도 언젠가는 형처럼 포털사이트에서 인물 검색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는 짧은 댓글이 시초였다. 이후 달린 댓글 중에는 꼭 꿈을 이루길 바란다는 격려의 글도 있었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는 훈계나 한창 공부해야 할 학생이 헛바람만 잔...
입력:2019-02-15 04:05:01
[살며 사랑하며-하주원] 언어는 변화한다
유행어를 쓰지 맙시다가 하나의 표어였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인기 있었던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오는 ‘영구 없다’ 또는 ‘잘돼야 될 텐데’ ‘안녕하시렵니까’ 이런 말이 욕설도 아니고 남을 비하하는 것도 아닌데 따라하는 것을 왜 쓰지 말자고 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불조심도 아니고, 물을 절약하자는 것도 아니고, 유행어를 쓰지 말자는 주장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물론 비속어도 있지만 모든 유행어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뇌가 먼저 명령하고 거기에 따라 몸이 움직이거나 감정이 생기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
입력:2019-02-13 04:05:01
[살며 사랑하며-신용목] 나의 문제와 사회의 문제
한때 대형마트 대신 재래시장을 이용하겠다고 마음먹은 적 있다. 여러 이유 중에는 좀 거창한 것도 있었는데, 대자본 프랜차이즈가 생선 한 마리, 파 한 단까지 독점한다는 것이 끔찍했다고 할까. 내가 먹고 입고 자고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몇몇 기업을 통해 이루어지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이익 역시 한 곳으로 흘러드는 것이 무서웠다. 생활 방식이 다양해진 만큼 소비 패턴과 소비재도 다양해졌지만 그 모든 과정을 거미줄처럼 당겨놓은 돈의 흐름은 오히려 한 곳으로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 전체의 부는 늘어나는데 개인은 점점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것도 ...
입력:2019-02-11 04:10:01
[살며 사랑하며-황시운] 평범한 이들의 존엄한 생애사
병원생활을 할 때, 다양한 사람들의 생애사를 육성으로 들을 기회가 있었다. “작가라고? 그럼 내 얘기를 써봐. 책으로 쓰면 열두 권은 족히 나올 거야.” 내가 소설가라는 걸 알게 된 이들이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살아온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두 시간 만에 끝나기도 했고 며칠에 걸쳐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했다. 보통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면 다음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같은 병실을 쓰는 이들의 경험담이 뒤죽박죽 뒤섞여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사실 나는 나이 든 이들의 생애사에 특별히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
입력:2019-02-08 04:05:01
[살며 사랑하며-황시운] 소년의 도약
친구가 전지훈련을 다녀온 소년의 복근 사진을 보여주었다. 소년의 몸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야물게 성장해 있었다. 일 년 전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소년은 본격적으로 육상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깎아놓은 듯 선명한 복근은 그간 고된 훈련을 견뎌낸 결과물일 것이다. 소년의 이 놀라운 성장은 새로운 세대의 도약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우리 세대의 쇠락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가슴이 뛰었다. 친자매와도 같은 친구가 첫 아이를 가진 후 불안한 상황을 여러 번 겪으면서도 얼마나 용감하게 아기를 지켜냈는지 빠짐없이 기억한다. 마침내 아...
입력:2019-02-01 04:05:01
[살며 사랑하며-하주원] 괜찮은 척
정신건강의학과에 와서 행복한 추억부터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진료실에서 아픈 이야기를 종일 듣자면 뉴스에 나오는 비극은 세상사 중 극히 일부구나 싶다. 많은 이들이 비극을 주변과 공유하지 않는다. 엄청난 일을 겪고도 혼자 간직하거나 극소수에게만 털어놓기도 한다. SNS에서 늘 재미있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도 실은 괜찮은 척하며 살아내는 것이다. 괜찮은 척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가까운 사람들과 슬픔을 나누면 위로를 주고받으며 고통이 줄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많다. 배려해 주지는 않으면서 생색만 내거나 어쭙잖은 위로로 상처를 후벼 파는 사람...
입력:2019-01-30 04:10:01
[살며 사랑하며-신용목] 매 순간 해야 할 일
베를린에 잠시 머물 때, 한 강연에서 내가 벤야민을 인용하는 걸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청중이 있었다. 내가 공자나 맹자, 아니면 퇴계 이황을 예로 들 것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나는 내가 배워온 유럽 중심 철학이 문제인지, 나에게 요구하는 동양인다움이 문제인지 잠시 헷갈렸다. 세상에 거대한 중심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가진 주변에 대한 시선. 거개의 차별은 여기서 비롯되는데, 유럽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이 동양인에게 바라는 ‘동양다움’ 역시 또 다른 폭력인 셈이다. 이처럼 차별의 구조는 단순하지 않다. 내가 인종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
입력:2019-01-28 04:05:01
[살며 사랑하며-황시운]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삶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 등급 재심사를 받을 때의 일이다. 방문 조사를 위해 미리 시간 약속을 해뒀다. 그러나 조사원들은 약속보다 이른 시간에 찾아왔다. 활동보조인이 도착하기도 전이었다. 나는 척수 손상으로 인한 신경병증성 통증을 앓고 있어서 침상 생활을 하는 날이 많다. 그날도 통증이 심해 일어나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초인종 소리에 일어나 휠체어로 옮겨 앉기 위한 준비를 하는데 초인종이 연달아 울리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당황하니 늘 하던 일마저 뜻대로 되지 않아 휠체어에서 떨어질 뻔하기도 했다. 식은땀이 솟고 가슴이 터질 듯이 뛰었다. ...
입력:2019-01-25 04:10:01
[살며 사랑하며-하주원] 개인사의 반복
더 이상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은 이야기였다. 제자에게 물리적, 성적 폭력을 가했다는 의혹을 받는 코치가 막상 선수 시절엔 누구보다 폭력을 싫어하는 사람이었고, 다른 후배가 폭행을 당했을 때 위로해주는 선배였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거짓말 같은 반복. 하지만 거짓말이 아니다. 한때 피해자였던 사람이 왜 가해자가 되는 것일까? 박노해 시인의 말처럼 자녀는 부모의 부족한 부분을 먼저 닮는다. 부모의 가정폭력을 겪고 자란 사람이 가족 구성원 가해자를 미워하고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결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학대를 당한 사람이 앞으로 폭력...
입력:2019-01-23 04:05:02
[살며 사랑하며-신용목] 믿음을 의심하는 믿음
최근 발표된 안희연 시인의 ‘추리극’이란 시가 있다. 마음의 미로를 헤매는 사람의 그 마음을 그린 시.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건 정확하지 않다. 전문을 인용할 수 없으니 아쉬운 대로 이렇게 옮겨본다. 내 존재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내 속의 존재가 매일 바뀌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래서 시는 “나”는 “아흔아홉 마리 양과 한 마리 늑대”로부터 시작되었고 “매일 한 마리씩, 양은 늑대로 변한다”고 말한다. 그냥 변하기만 하면, 그래서 ‘백 마리의 늑대’가 되고 말면, 아무런 고통도 없을 것이다. 그 와중...
입력:2019-01-21 0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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