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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문화라] 통증에 민감하다는 것
낮에 아이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가 목과 귀가 아파서 힘들어 하니 조퇴를 시키려 한다고 말씀하셨다. 급한 마음에 병원에 가보니 편도염이었다. 편도의 염증 치료를 하고 돌아왔는데 아이는 밤새 목이 아프다며 고통을 계속 호소한다. 아이의 앓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힘들다. 면역력이 떨어질 때 사람마다 제일 약한 부분이 먼저 아프다고 하는데 나와 아이들은 목이 취약한 편이다. 그래서 인후염과 편도염에 자주 걸린다. 나는 아들 쌍둥이를 키우고 있다. 쌍둥이 아이들을 돌보면서 제일 힘들 때는 아이들이 아픈 경우다. 한 아이가 아프고 ...
입력:2019-05-22 04:10:01
[살며 사랑하며-김의경] 직업으로서의 교사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는 서울의 한 사립대학교 교육학과에 면접을 보러 갔다. 당시 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도 몰랐지만 두세 군데의 대학에 원서를 넣은 상태였다. 교육학과에 지원한 이유는 어른들이 교사만큼 좋은 직업은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단순히 성적에 맞춰 선생님이 추천한 학과에 지원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살면서 가장 많이, 가까이에서 본 직업인은 선생님이었으므로 나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이 교사가 되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면접대기실에서 나는 앞뒤에 앉은 학생들과 짧은 대화를 ...
입력:2019-05-20 04:05:01
[살며 사랑하며-최주혜] 시선의 자국
그림책 ‘루빈스타인은 참 예뻐요’에는 보석처럼 빛나는 눈과 조각 같은 코, 우아한 손을 가진 루빈스타인이 등장한다. 이처럼 아름답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의 매력을 모른다. 그녀는 세계에서 하나뿐인 수염 난 여자이기 때문이다. 사람들 눈에는 덥수룩한 수염만 보일 뿐이다. 드디어 그녀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파블로프가 나타난다. 그는 코끼리 남자로 불릴 정도로 유난히 긴 코를 가진 남자다. 두 사람은 수염과 코 대신 서로의 마음을 바라보며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빠진 남녀가 다정하게 걷는 그림에는 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적나라하...
입력:2019-05-17 04:10:01
[살며 사랑하며-문화라] 십 년 후 나에게 쓰는 편지
내 휴대폰에는 오 년 전 5월에 저장해둔 알람이 있다. 이 알람은 앞으로 오 년 후에 울릴 예정이다. 알람을 맞추게 된 연유는 이러하다. 그해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클러스터 수업을 맡아서 진행하게 되었다. 클러스터 수업이란 인접해 있는 두 학교 간에 공동으로 운영하는 교육과정으로, 기존에 없는 과목을 개설해 듣고 싶은 학생들이 신청해서 참여하는 소규모 수업이다. 나는 문예창작 과목을 맡게 되었는데 이 수업은 문학적 글쓰기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직접 시와 소설을 써보고 서로 감상과 비평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일 년 동안 수업을 들으며 썼던 ...
입력:2019-05-15 04:10:01
[살며 사랑하며-김의경] 어른의 날
중학교 때 보습학원 친구들과 논술 공부 모임을 결성한 적이 있다. 학생들이 번갈아 가며 스스로 논제를 정한 다음 다 함께 토론하는 방식이었고, 학원 선생님이 가끔 모임에 참관해 조언을 했다. 한 여학생이 자기 아버지가 어린이의 날에 한 말이라면서 “어른의 날은 왜 없을까”라는 논제를 던졌다. 어떤 학생은 국가 예산이 부족해서라고 했고, 어떤 학생은 어른의 날을 빨간 날로 정하면 그날 하루 모든 업무가 마비돼서 사회 혼란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다분히 감상적인 의견을 말했던 것 같다. “우리 모두 언제인지도 모르는 사이에 ...
입력:2019-05-13 04:05:01
[살며 사랑하며-최주혜] 꽃길
지난달 엄마를 모시고 창경궁 행사에 다녀왔다. 꽃길을 따라 걸으며 숲해설사의 설명도 듣고 전통음악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나들이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화창했지만 엄마는 어쩐지 심드렁해 보였다. 모처럼 마련한 자리인데 반응이 시원찮으니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무슨 일 있냐고 묻자 무덤덤한 표정으로 별일 없다고 대꾸한다. 어쨌든 우리는 함인정에 모인 사람들을 따라 창경궁 후원을 걷기 시작했다. 하얀 꽃이 흐드러진 나무가 나타나자 숲해설사가 나무에 얽힌 일화를 설명했다. “향기를 맡아 보세요. 그윽하죠? 그런데 가지를 꺾으면 고약한 냄...
입력:2019-05-10 04:05:02
[살며 사랑하며-문화라] 가족여행의 추억
연휴 기간에 부모님을 뵈러 친정에 다녀왔다. 아버지는 지난해 겨울부터 병환으로 병원에 누워계신다. 기력이 없으셔서 말씀은 잘 안 하시지만 말은 전부 알아들으시기 때문에 나는 병원에 가면 여러 이야기를 해드린다. 별일 없이 자라고 있는 아이들 소식도 전해드리고, 어릴 적 일들도 이야기한다. 그러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 일이 있으면 질문도 드려본다. 아버지는 한 단어 이상은 말씀하시기 힘들어하시지만 그때 일들을 떠올리시면서 답변을 해주신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부모님과 같이 갔던 제주도 여행이 생각났다. 어렸을 때 갔던 가족 나들이에 대한 ...
입력:2019-05-08 04:10:01
[살며 사랑하며-김의경] 반나절의 말동무
지난여름, 나는 엄마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엄마는 당시 아파트 단지 내 헬스장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있었다. 일하다가 앞으로 살짝 넘어졌을 뿐인데 허리골절이라니. 뼈가 약해진 상태였던 모양이다. 8인용 병실에 들어서자 한쪽 구석에 놓인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가 고개만 든 채로 나를 불렀다. “엄마 여기 있어!” 엄마는 허리에 복대를 두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낙천적인 사람도 병 앞에서는 별 수 없는 모양이었다. 함께 있는 시간이 세 시간을 넘어가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너...
입력:2019-05-06 04:10:01
[살며 사랑하며-최주혜] 작은 물결
어릴 적 생일보다 더 기다리던 날이 어린이날이었다. 이날만은 좀 까불어도 혼나지 않을 수 있는 면책 특권이 주어지기도 했다. 지금은 까마득한 옛 추억이 되었지만 어린이날 즈음에 설레던 기분은 아직도 생생하다. 소파 방정환 선생(1899~1931)은 어린이날과 함께 자연스레 떠오르는 인물이다. 선생은 평생 어린이의 인권을 위해 헌신했던 아동 운동의 선구자였다. “오늘은 우리를 위한 날이에요. 어린이날 선언문을 읽어 보세요!” 1923년 5월 1일, 제1회 어린이날 기념식이 열렸다. 기념식에 참석한 어린이들은 방정환 선생이 만든 ‘어린이 선언문’...
입력:2019-05-03 04:10:01
[살며 사랑하며-문화라] 귀를 기울여보면
얼마 전 모임에 나갔다가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사람이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려 하고 있었다. 구조할 사람들이 출동했지만 누구도 그 사람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건넨 말이 뛰어내리려는 분의 마음을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그 말은 “무엇이 그렇게 힘드세요?” 라는 질문이었다. 뛰어내리지 말라는 말은 누구나 했지만 그 사람에게 왜 그러냐는 이유를 묻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힘들 때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원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의 절망감은 사람을 외롭...
입력:2019-05-01 04:05:01
[살며 사랑하며-김의경] 소등
며칠 전 친구 집을 방문했다. 친구 남편이 출장 간 틈을 타 하룻밤을 친구 집에서 보낼 생각이었다. 자주 보지 못하는 친구와 밤새 속닥거릴 생각을 하니 기분이 설렜다. 벨을 누르자 친구와 친구의 네 살짜리 아들이 반겨주었다. 얼마 전까지 기어 다닌 것 같은데. 아이는 어느새 부쩍 자라 있었다. 저녁을 먹은 뒤 친구가 냉장고에서 사과를 꺼내왔다. 내가 과도를 들어 사과를 깎으려는데 친구가 말했다. “어머, 몇 시야? 아직 8시 안 됐지?” 내가 7시55분이라고 하자 친구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오늘 지구의 날이잖아. 8시에 소등 행사 참여하려고.&rdquo...
입력:2019-04-29 04:10:01
[살며 사랑하며-최주혜] 편리의 찌꺼기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분리수거일을 놓치면 베란다는 전쟁터가 된다. 배달음식과 각종 과일을 담던 플라스틱 용기들이 분리수거통에 산더미처럼 쌓이기 때문이다. 생활의 일부분이 돼버린 플라스틱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플라스틱은 당구가 유행했던 근대 미국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구공의 재료로 쓰이던 상아 가격이 급등하면서 값싼 대체 물질을 찾던 중 1869년 미국의 존 하이엇이 최초의 플라스틱 셀룰로이드를 만들었다. 이후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이 개발되었고 20세기 신의 선물이라 불리며 각광받아 왔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신의 선물이라 부르지 않는다. ...
입력:2019-04-26 04:10:02
[살며 사랑하며-문화라] 추억의 의미
봄맞이 청소를 하느라 집안의 묵은 짐들을 정리하기로 하였다. 베란다를 치우다가 낡은 종이상자를 발견하였다. 편지를 모아두었던 상자인데 오랫동안 꺼내보지 않아 먼지가 쌓여 있었다. 상자 속에는 20대 때 친하게 지낸 외국 친구와 주고받았던 편지도 있었다. 편지를 읽자 자연스럽게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당시 외국인 기숙사에 살았는데 옆방에는 교환학생으로 와 있던 일본인 여학생이 있었다. 처음 몇 번 마주쳤을 때는 짧은 머리에 무뚝뚝해 보이는 그녀의 첫인상 때문에 선뜻 말을 걸기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비슷한 음악...
입력:2019-04-24 04:05:01
[살며 사랑하며-김의경] 남겨진 사람들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해,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그날의 기억은 비교적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 사고는 이른 아침에 일어났지만 내가 그 일에 대해 알게 된 것은 3교시 수업을 5분 남겨놓은 때였다. 복도에 나갔다가 옆 반 친구에게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친구는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날 수업에 들어온 선생님들은 그 사건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오후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희생자 중에는 같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배정받은 M여고 학생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말은 희생자 중에 우리와 중학교를 함께 ...
입력:2019-04-22 04:10:01
[살며 사랑하며-최주혜] 무의식에 숨은 그것
동네 중학교 앞을 지나다 신기한 광경을 보았다. 학생들이 피구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공을 들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색이 입혀진 공은 축구공보다 세 배쯤 커 보였다.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자 한 여학생이 두어 걸음 물러났다 돌진하며 힘껏 공을 던졌다. ‘맞으면 엄청 아프겠다’고 생각이 든 순간 공이 슬로모션 처리라도 한 듯 느릿느릿 날아갔다. 알고 보니 ‘빅 발리볼’ 경기에 사용되는 공으로 가볍고 부드러워 체육 수업에 두루 쓰인다고 했다. 나는 무등산수박만 한 공이 하늘을 떠다니는(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모양이 ...
입력:2019-04-19 04:10:01
[살며 사랑하며-문화라] 꽃들도 자신의 이야기가 있다
주말에 집 근처 공원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활짝 핀 봄꽃들을 보고 싶어서였다. 벚꽃, 목련, 진달래 등 봄꽃이 만개해 있었다. 꽃들의 화려함에 감탄하고 있는데 아직 꽃과 잎이 나지 않은 나무를 가리키며 아이가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이름 표지가 없고 꽃이나 잎이 없으니 무슨 나무인지 알기 어려웠다. 꽃과 나무에는 각자의 이름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도 있다. 주택에서 처음 맞이하던 봄, 가족들과 화훼단지에 갔다. 마당에 심을 꽃나무와 야생화를 사기 위해서였다. 주인아주머니가 권해주는 몇몇 꽃나무와 야생화를 사 와서 아이들과 함께 마당에 심었다. ...
입력:2019-04-17 04:10:01
[살며 사랑하며-김의경] 사람 사이의 화학반응
2011년, 나는 광진구에 있는 장애 관련 단체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내가 맡은 직무는 ‘장애인 활동보조인 코디네이터’로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최근 ‘활동지원사’로 명칭 변경)을 연결해주는 일이었다. 나는 100여명의 장애인 회원과 100여명의 활동보조인 회원을 관리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료들은 과반수가 뇌성마비 장애인이었다. 그들은 유머러스했으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잠재력이 뛰어났다. 마음 맞는 활동보조인만 존재한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활동보조인으로 활동하는 장애인도 있었다. 경증장애인이 중증장애인의 활...
입력:2019-04-15 09:16:46
[살며 사랑하며-문화라] 왼손잡이여도 괜찮아
아이의 가방에서 독서기록장을 꺼내어 펼쳐본다. 매주 목요일 독서기록장을 제출해야 하니 전날 미리 살펴본다. 그런데 내용보다 글씨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갈겨써서 무슨 글자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단어가 한둘이 아니다. 절로 잔소리가 나온다. “글씨를 왜 이리 흘려 썼어? 무슨 글자인지 알아보기 어렵잖아?” 아이는 왼손잡이이다. 왼손으로 밥을 먹고, 글씨를 쓴다. 왼손으로 글씨를 쓰면 불편한 점이 있다. 먼저 쓴 글자가 왼손에 가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앞에 쓴 글자가 보일 수 있는 각도로 종이를 기울여서 쓰게 된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글씨를 ...
입력:2019-04-10 04:10:01
[살며 사랑하며-김의경] 순식간이네 순식간이야
벚꽃 피는 계절이 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자연의 향연이 바로 벚꽃축제 아닐까. 아르바이트와 빚에 시달리며 청춘을 보낸 내게도 벚꽃축제는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인생은 살 만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벚꽃이 만개한 거리를 함께 걸을 사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해 봄, 나는 역시나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고 있었다. 전화를 하는 곳마다 이미 정원이 찼다고 말해서 적잖이 실망한 상태였다. 이런 내 사정을 알기라도 한 듯 선배 언니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는 벚꽃축제 때 사진을 찍어 돈을 벌 거라면서 나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입력:2019-04-08 04:05:02
[살며 사랑하며-최주혜] 행주 냄새가 뭔지도 모르면서
며칠 전, 마감이 코앞이라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고 책상 앞에 붙어 있던 때였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이 신발도 벗기 전에 ‘저녁이 뭐예요?’를 외쳤다. 즉시 쓰던 걸 멈추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학원 수업에 늦지 않게 보내려면 서둘러야 했기 때문이다. 머릿속은 여전히 주인공의 결투 장면으로 꽉 차 있었지만 두 손은 습관대로 밥상 차리기를 시작했다. 우선 밥솥을 열어 밥이 충분한지를 확인하고 냉동실의 고기를 꺼내 프라이팬에 구웠다. 기름이 사방으로 튀며 구워지는 동안 잡동사니로 어질러진 식탁을 치우고 행주로 닦았다. 마지막으로 고기와 반...
입력:2019-04-05 04:10:01
[살며 사랑하며-문화라] 꽃샘추위
지난 주말에 외출을 했다가 날씨가 추워 옷깃을 목 아래까지 여민 채 다녔다. 옷깃을 여민 손이 시렸다. ‘봄인데 왜 이리 춥지’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오후에는 우박이 떨어졌는데, 강원도에 놀러 간 친구는 눈발까지 날렸다며 소식을 전해온다. 요 며칠 꽃샘추위 기세가 심하였다. 봄꽃 위로 찬바람이 사정없이 불어닥친다. 그러다가 문득 이렇게 추운데 나무들은 봄이 왔는지 어찌 알고 꽃을 피웠을까 궁금해진다. 식물은 꽃을 피우는 시기를 감지해내는 개화 시계를 스스로 가지고 있다고 한다. 기온이 올라가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면 꽃을 피울 준비를 ...
입력:2019-04-03 04:05:01
[살며 사랑하며-김의경] 마흔 살의 산전검사
며칠 전 남편과 함께 외출을 했다. 손을 맞잡고 빠르게 걸었지만 발걸음이 마냥 가볍진 않았다.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 멀지도 않은데 이곳에 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려 10년이라는 세월이. 오는 동안에도 아직 이른 것은 아닌가,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닌가 고민했다. 우리는 보건소 건물 앞에서 한 번 숨을 고른 다음 안으로 들어갔다. 좀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산전검사를 하는 곳은 텅 비어 있었다. 그렇다. 우리는 함께 산 지 10년이 넘어 임신을 계획하고 보건소를 찾은 것이다. 무료 산전검사는 오전에만 한다는 말에 아침 일찍 서둘러 온 것이 ...
입력:2019-04-01 04:10:01
[살며 사랑하며-황시운]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텔레비전 화면 속 사람들이 대게를 먹고 있다. 야무지게 발라낸 게살을 입에 넣기 바쁘게 너도나도 탄성을 내질렀다. 실하게 들어찬 게살을 클로즈업한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침이 고였다. 그게 한심해서 웃다가 엄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엄마의 표정이 이상했다. 시선은 화면에 두고 있었지만, 엄마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지 않았다. 엄마의 텅 빈 시선이 헤어날 수 없는 허무에 잠긴 듯 처연해 보였다. 머릿속이 바빠졌다. 무슨 일이 있었나? 혹시 내가 마음 상할 만한 말을 했나? 오늘 어디 어디에 들른다고 했더라? 여러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아, 아빠가 돌아가셨...
입력:2019-03-29 04:05:02
[살며 사랑하며-하주원] 약속을 이루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평생을 쓴다는 말처럼, 어렸을 적부터 목표를 혼자서 간직하지 않았다. 많은 것이 되고 싶었다. 간호사, 천문학자, 연출가, 카피라이터, 시인, 소설가, 정신과 의사 등 모든 꿈을 떠벌리고 다녔다. 처음에는 마음속의 희미하고 작은 목표였어도, 일단 호언장담을 하고 나면 구체적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해보게 되고, 약속으로 바뀌는 연금술을 경험한다. 처음에 국민일보에 ‘살며 사랑하며’ 연재를 시작하면서 내가 속한 독서모임 사람들에게 약속했다. 첫 넉 달의 기간을 한 번 이상 연장하도록 애쓸 것이...
입력:2019-03-27 04:10:01
[살며 사랑하며-신용목] 우리의 삶을 있게 한 것
유리에 얼룩이 보였습니다. 섀시를 열기 위해 손을 댔거나 아래를 보려고 이마를 짚었던 자국일 것입니다. 니트 소매를 당겨 쥐고는 얼룩을 닦았습니다. 얼핏얼핏 무지갯빛 같은 게 비쳤습니다. 입김을 불고 다시 서너 번 문질렀습니다. 새 떼가 가까운 곳에서 먼곳으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새 떼가 사라진 곳에서도 새 떼는 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홍콩야자와 고무나무는 그새 또 새 싹을 밀어올렸습니다. 하도 투명하고 여려서 가만히 손끝을 갖다대면 잎 어딘가 꼭 감았던 눈을 뜨고 아기처럼 울음을 터트릴 것 같습니다. 녹보수에는 깍지벌레가 자주 끼는데, ...
입력:2019-03-25 04: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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