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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최주혜] 마음의 나이
염색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정수리가 희끗희끗하다. 하나 둘 돋아나던 흰머리가 이제는 정기적인 염색을 피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최근에는 두피가 따가워지는 부작용이 생겨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염색을 중단하지 못하는 이유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영향이 크다. 작년 이맘때 대학 졸업 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동창을 우연히 만났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동안 줄곧 하얗게 서리 내린 그의 머리카락이 신경쓰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동창의 머리가 어른거렸다. 나보다 나이도 적은데 머리가 희니 늙수그레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
입력:2019-07-19 04:10:01
[살며 사랑하며-문화라] 행복하다고 느낄 때
학기 초에 아이들 학교 총회에 갔을 때의 일이다. 교실 책상 위에 질문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엄마들이 오기 전 아이들에게 미리 질문지를 나누어 주고 답변을 적게 하셨다. 엄마들은 아이가 뭐라고 썼는지 보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답변을 적고 아이의 것과 비교해 보게 하셨다. 질문 중에 “나는 언제 행복하다고 느끼나요?”라는 문항이 있었다. 나는 자신 있게 “맛있는 식사를 할 때”라고 적었다. 막상 종이를 돌려 아이는 뭐라고 적었는지 보았더니 답은 빈칸으로 남겨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왜 답을 적지 않았냐고 물...
입력:2019-07-17 04:05:02
[살며 사랑하며-김의경] 카공족
무더웠던 지난 5일, 나는 오전 11시부터 동네 카페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역시나 카공족이 카페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회사원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노트북과 문제집을 펼쳐둔 취업준비생들이었다. 나처럼 글 쓰는 사람에게도 카페는 고마운 공간이었다.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쉼터이기도 했고 적당한 소음으로 집중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작업실이기도 했다. 카페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증가하는 바람에 만들어진 신조어도 있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을 뜻하는 카공족, 카페에서 업무를 보는 사람을 뜻하는 코스피족. 카페...
입력:2019-07-15 04:05:01
[살며 사랑하며-최주혜] 괴담
공포 영화나 소설을 즐기는 편인데 이 장르의 참맛은 책장을 덮고 나서 혹은 영화가 끝난 후 현실로 돌아왔을 때 느낄 수 있다. 깜깜한 극장 안에서 무서움에 떨다 밖으로 나왔을 때를 떠올려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 일상은 변하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안전하다는 걸 확인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는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공포의 대상으로부터 도망치는 이야기는 오히려 현실적 안도감을 강화시킨다. 198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세대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괴담이 있다. 늘 2등만 하던 학생이 전교 1등을 학교 옥상에서 밀어 죽게 만들고 거꾸로 떨어진 1등은 머리로 ...
입력:2019-07-12 04:10:01
[살며 사랑하며-문화라]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
집 옆 산책로를 걷다 보면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예전에는 가슴에 무언가를 안고 가거나 유모차를 끌고 가는 사람을 보게 되면 당연히 아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가까이 가서 봐야만 안고 가는 대상이 아이인지 강아지인지 구분할 수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어느새 10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많이 키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집에서 동물을 키우게 됐는지 떠올려보았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집에서 동물을 키우고 싶어 했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입양하고 싶다고 조르...
입력:2019-07-10 04:10:01
[살며 사랑하며-김의경] 헌책방
한쪽 구석에서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만화책을 보며 키득대는 남학생, 딸아이에게 동화책을 쥐어주고 로맨스 소설에 빠져 있는 젊은 엄마, 창문 너머 거리에서 들려오는 사람들 목소리, 오래된 종이 냄새와 눈앞을 부유하는 먼지. 내가 기억하고 있는 헌책방의 풍경이다. 한때 가장 자주 들르던 공간은 바로 헌책방이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매주 방문하던 헌책방이 있었다. 대체로 마음이 어지러울 때 그곳에 방문했는데 골목 깊은 곳에 있었으므로 가는 중에 저절로 무거운 마음이 풀어지곤 했다. 좁고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들어가 책 구경을 하다 보면 기분이 나른해지...
입력:2019-07-08 04:10:01
[살며 사랑하며-최주혜] 길을 떠나봅시다
이때껏 혼자 여행을 해 본 적이 없다. 해외는 고사하고 국내 여행도 늘 친구나 가족과 함께였다. 배낭 하나 달랑 메고 홀로 장거리 여행을 다녀온 친구를 만나면 참으로 대단해 보인다. 친구의 여행담에 혹해 나 홀로 여행을 계획해 보기도 했으나 막상 실행하려니 걱정부터 앞섰다. 돌이켜보면 별거 아닌 자잘한 걱정거리지만 여행 의지는 쉽게 꺾이고 속된 말로 ‘이불 밖은 위험해’를 곱씹게 된다. 요즘 스페인의 알베르게에서 순례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예능 프로를 다시 보기 중이다. 개성 강한 배우 셋이 요리와 접객 잡일을 나눠 각자 맡은 역할을 해내...
입력:2019-07-05 04:05:01
[살며 사랑하며-문화라] 아들에게 주는 레시피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들은 아직 휴대폰이 없다. 그래서 학교에서 전화할 일이 생기면 콜렉트 콜을 한다. 얼마 전의 일이다. 일이 있어 무음으로 해놓았던 전화를 확인해보니 콜렉트 콜로 걸려온 부재중 전화가 다섯 통이나 와 있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싶어 걱정이 앞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전화가 걸려온다. 황급히 전화를 받아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더니 “엄마, 저녁에 닭볶음탕을 먹을 수 있을까요”라며 아이가 진지하게 묻는다. “아니, 그것 때문에 전화를 계속한 거야”라고 물으니 그렇단다. 점심때 학교 급식이 시원치 않았나 보...
입력:2019-07-03 04:10:01
[살며 사랑하며-김의경]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만난 아이
며칠 전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왔다. 독서 인구가 줄었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그곳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나는 대여섯 권의 책을 구입해 손에 들고 방문객을 위해 비치해둔 빈 백 의자에 앉았다. 내 옆에는 한 여자아이가 백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이북리더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쳐다보다가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아이에게 이북이 종이책보다 좋으냐고 물었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간다는 여자아이는 뜻밖에도 자신은 종이책을 읽어본 적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책을 좋아하지만 집에 짐이 늘어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
입력:2019-07-01 04:05:01
[살며 사랑하며-최주혜] 후회
한때 소설 쓰는 모임에 나간 적이 있다. 문학을 전공한 사람은 소수였고 책을 좋아하다 보니 쓰고 싶어진 일반인이 대부분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각자 쓴 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선배가 반장을 맡아 모임을 이끌어주는 방식이었다. 겨우 새내기 딱지를 떼었을 때 선배에게 갑작스러운 부탁을 받았다. 나더러 새내기반 반장을 맡아달라는 것이다. 자신이 없었지만 거절했을 때 실망할 선배를 떠올리니 도저히 못 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신입 회원과 만나는 날이 다가올수록 암담하기만 했다. 뜨거운 음식을 손에 쥐고 삼키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꼴이었다. 전전긍긍...
입력:2019-06-28 04:10:01
[살며 사랑하며-문화라]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동네친구라는 동아리 플랫폼이 있다. 동아리 플랫폼이란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자율적으로 소규모 동아리들을 만들어 지식도 쌓고, 관심도 공유하며 교류를 해나가는 취미 모임 공동체이다. 동아리는 학교에 다닐 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런 동아리 모임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게 신기해서 참여하게 되었다. 올해로 3년째인 이 모임은 영어 원서를 읽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후 회원이 증가하면서 다양한 동아리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지금은 그림책이나 여러 분야의 책을 읽는 모임도 있고 함께 음악을 듣거나 ...
입력:2019-06-26 04:05:01
[살며 사랑하며-김의경] 엄마가 두려워하는 것
엄마는 지난봄 40일간 요양보호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엄마는 내가 전화를 하면 작은 목소리로 수업 중이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쉬는 시간에 내게 전화를 걸어 수업 내용이 너무나 재미있다면서 그날 배운 것들에 대해 말해주었다. 칠순의 나이에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즐거웠던 모양이다. 나는 엄마 나이에 요양보호사는 무리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엄마는 함께 교육받는 사람 중에 엄마와 동년배 여성이 많다고 했다. 일자리를 찾는 칠십대 노인이 많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론수업이 끝나고 실습이 시작되자 전화기 너머 엄마의 목소리가 부쩍 작...
입력:2019-06-24 04:10:01
[살며 사랑하며-최주혜] 오백원의 진심
아들과 같은 학교의 한 부모 가정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봉사를 한 적이 있다. 나와 맺어진 K는 조선 중기의 유명한 장군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남자 아이였다. 처음 만난 날, 긴장한 K를 위해 목소리의 높낮이를 살려 실감나게 책을 읽어줬다. 듣는지 마는지 표정만 보고는 도무지 K의 속내를 알기 힘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한 달이 지났는데도 우리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못했다. 나름 애써봐도 잴 수 없는 거리가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봉사 모임에서 어려움을 털어놓으니 다른 분들도 각자의 고충을 말했다. 그들은 나와 다른 이유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아이...
입력:2019-06-21 04:05:01
[살며 사랑하며-문화라] 부족하거나 넘치지 않게
얼마 전 후배로부터 아이 때문에 힘들었던 사연을 듣게 되었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놀이터에 나가서 놀려고 하는 아이에게 “오늘은 나가지 말고 밀린 문제집을 풀어라”라고 했더니 왜 나가면 안 되느냐고, 자신은 엄마가 하라는 대로만 해야 하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직장 일과 아이 돌보는 일을 힘들게 병행하며 지내오던 후배는 자신이 최선을 다해왔으니 아이도 알아서 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속상했다고 한다. 아이가 알아서 자신의 일을 잘하기란 쉽지 않다. 나의 어린 시절만 생각해봐도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금방 알 수 있다...
입력:2019-06-19 04:10:01
[살며 사랑하며-김의경] 도시락의 추억
지난주에 친구들과 함께 산에 올랐다. 중간쯤 가다가 도시락 가게에서 사온 도시락을 풀었는데 모두들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던 모양이다. 화제는 갑자기 ‘학창시절 도시락’으로 바뀌었다. 나는 도시락을 떠올리면 기분이 마냥 좋지 않았다. 맞벌이였던 엄마는 새벽에 도시락을 세 개나 싸는 것을 힘들어했다. 엄마는 빠르고 쉽게 만들 수 있는 반찬 몇 가지를 번갈아 담아 주었다. 하지만 남의 떡이 커 보이기 때문이었을까. 엄마의 노력이 어떻든 간에 내 눈에는 다른 친구의 도시락이 더 맛있어 보였다. A는 집안사정이 어려운 탓에 아무리 고기를 넣어 달...
입력:2019-06-17 04:05:01
[살며 사랑하며-최주혜] 생명을 책임지는 것
고양이 집사 노릇에 푹 빠진 친구와 통화를 하고 나니 불현듯 반려동물을 키워볼까 하는 마음이 든다. 주인과 다정하게 산책하는 강아지들을 보면 절로 눈길이 가며 부러운 마음이 든 지도 오래되었다. 그러나 그때뿐, 이내 고개를 젓고 만다. 키우려고 했으면 벌써 키웠을 테지만 이제까지 망설였던 건 예측할 수 없는 변수와 그로 인한 이별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다. 내가 키운 첫 동물은 병아리였다. 봄만 되면 학교 앞에 나타나던 병아리 장수가 있었다. 교문을 나서기 전 삐약삐약 소리가 들리면 아이들은 앞다퉈 병아리가 담긴 상자로 내달렸다. 노란 솜털 뭉치들의 ...
입력:2019-06-14 04:05:01
[살며 사랑하며-문화라] 남기고 싶은 것들
얼마 전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했다. 주로 수십 년 동안 스크랩해 놓은 신문 자료들과 생활 문서들, 일기장 등이었다. 한 아파트에서 30년 동안을 살아오셔서인지 그 양은 상당했다. 매일 각종 신문을 읽고 스크랩을 해오셨는데, 기사를 주제별로 담아놓은 종이봉투만 해도 수백 장이 넘었다. 봉투의 사이즈도 제각각이었는데 작게는 편지봉투에서 크게는 8절지 사이즈까지 다양했다.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쓰셨던 아버지는 두꺼운 대학노트로 30권 넘는 일기장도 남기셨다. 일기장과 직접 쓰신 글 등을 우선적으로 챙겨두었다. 정리를 하면서 보니 남겨야 할 물건과 ...
입력:2019-06-12 04:05:01
[살며 사랑하며-김의경] 반지하 집
나는 지난 십여 년간 서울의 반지하 집을 전전했다. 이런저런 동네에서 살았지만 그중에서도 연희동 반지하 집은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 집은 우리 부부가 처음으로 가진 방 두 개짜리 집이었으므로 나는 좀 더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었다. 우리는 그 집에서 1년 정도 더 살고 싶었지만 집주인은 자기 소유인 이 건물과 땅을 팔기로 했다면서 계약기간이 조금 남았지만 나가 달라고 부탁했다. 이 건물은 헐어버릴 것이므로 버릴 가구가 있다면 그대로 두고 나가면 된다고 했다. 나는 내심 안도했다. 개가 장판을 훼손했고 벽지도 누렇게 변색되었기 때문에 보증금을 ...
입력:2019-06-10 04:10:01
[살며 사랑하며-최주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신고
레바논의 희뿌연 하늘 아래 열두 살 소년 자인이 휘적휘적 걸어간다. 아이답지 않은 어두운 눈동자와 건조한 표정은 소년의 삶이 만만치 않음을 짐작하게 한다. ‘가버나움(Capernaum)’은 출생신고 되지 않은 아이의 삶을 현실적으로 담아낸 영화다. 자인은 출생신고라는 마땅한 도리를 저버리고 줄줄이 아이만 낳는 부모를 고소하며 외친다.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게 해주세요!” 주인공 자인 역의 배우는 실제 시장에서 배달을 하던 시리아 난민 소년이다. 출생 미등록 아동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한 영화제에서다. 극장 로비에 ‘세상에서 ...
입력:2019-06-07 04:10:01
[살며 사랑하며-문화라] 다시 보면 더 좋은 이유
중고등학교 시절, 나의 유일한 문화생활은 일요일마다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일이었다. 지정좌석제가 없던 때라 앉은 자리에서 같은 영화를 연달아 서너 번씩 보곤 하였다. 같은 영화를 지겨워서 어떻게 여러 번 보냐고 묻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몇 번을 연속해서 봐도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재미있었다. 그 이유는 처음 볼 때 줄거리에 몰입해 보다가 놓쳤던 장면을 볼 수 있고, 좋았던 대사를 다시 음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도 비슷할 때가 있다. 인상적이었거나 마음에 여운이 오래 남았던 책들은 종종 꺼내서 다시 펼쳐 보곤 한다. 같...
입력:2019-06-05 04:05:01
[살며 사랑하며-김의경] 애견공동체
요즘은 사회가 삭막해서 이웃끼리 인사도 하지 않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이사 온 지 다섯 달밖에 안 되었지만 남편은 벌써 동네에서 많은 사람을 사귀었다. 산책을 나갔다가 돌아오면 이웃들 이야기를 하느라 바쁘다. 쫑이 엄마는 지금 대만 여행을 갔다든가, 희망이네 집에는 시골에서 장인어른이 올라오셨다는 둥 이웃집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다. 며칠 전에는 사랑이 아빠가 갑자기 출장을 가게 되었다면서 사랑이가 하룻밤만 우리 집에서 지내면 안 되겠냐고 했다. 그렇다. 쫑이도, 희망이도, 사랑이도 우리 동네에 사는 개 이름...
입력:2019-06-03 04:10:01
[살며 사랑하며-최주혜] 미운 오리의 꿈
덴마크 왕세자 부부가 방한했다는 뉴스를 듣고는 옛 사진첩을 꺼내보았다. 함께 보던 남편이 “여기서도 찍었네” 하며 사진 한 장을 건넨다. 코펜하겐 시청 광장에 있는 안데르센 동상 앞에서 찍은 독사진이었다. 들여다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동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안데르센, 그의 나라 덴마크에서 잠시 지낸 적이 있는데 그때는 내가 동화를 쓰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어릴 때 사촌들에게 종종 주워온 아이라는 놀림을 받곤 했다. 동네 개천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것이었다. 반신반의하다 진짜로 믿게 된 건 이웃이 인사차 건넨 말 때문이었다. ...
입력:2019-05-31 04:10:01
[살며 사랑하며-문화라] 아이를 찾습니다
아이들이 일곱 살 때, 대형 쇼핑몰에 갔을 때의 일이다. 정문 앞에 장난감을 파는 자동판매기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그곳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몇 개를 뽑은 다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8층 매장으로 올라갔다. 매장에서 계산하려는 순간 돌아보니 쌍둥이 중 형이 보이지 않았다. 일행이 일곱 명이었는데 누구도 아이를 본 사람이 없었다. 처음에는 근처에 있으려니 생각하고 매장 주변을 찾아보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아이가 없었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매장 직원에게 안내 방송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니 그런 시설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는 와중에 시간은 계속 흘러...
입력:2019-05-29 04:10:01
[살며 사랑하며-김의경] 늦봄
오래 전 늦봄의 어느 날, 나는 공원 정문에서 가족들을 기다렸다. 당시 우리 가족은 서로 다른 지역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었다. 그런 우리가 오랜만에 만남의 장소로 택한 곳은 다름 아닌 서울대공원이었다. 장소를 정한 사람은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에겐 우리가 여전히 어린이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당시 우리 가족은 모두 개인파산 혹은 개인회생을 신청한 상태였다. 이메일이나 휴대폰으로 가끔 서로의 안부를 물었지만 지금처럼 카카오톡이 없었기 때문에 단톡방에서 동시에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평일 ...
입력:2019-05-27 04:10:01
[살며 사랑하며-최주혜] 그늘 한 자락
국민학생이었을 때 교문 근처 좌판에서 간식거리를 팔던 할머니가 있었다. 어른들이 먹지 말라는 불량식품이었다. 먹으면 배탈이 난다는데 배앓이를 했다는 친구는 보지 못했다. 교문을 나서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좌판으로 몰려갔다. 이가 듬성듬성 빠진 할머니가 새는 소리로 “뭐 줄까?” 물으면 “쫀드기요! 쥐포요!”라고 두서없이 주문했다. 와글와글 시끄러워도 할머니는 용케 알아들었고 헷갈리는 법도 없었다. 나는 쫀드기와 쥐포가 몸을 뒤틀며 구워지는 동안 연탄불 옆에 쪼그려 앉아 얼른 먹고 싶어 조바심치곤 했다. 이런 생각이 들기...
입력:2019-05-24 04: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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