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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마음과 머리의 빨래 널기
연하늘 청파랑 오묘한 자연의 색으로 하늘이 따듯이 빛나고, 잿빛에 불과하던 개나리 꽃망울들이 눈이 부시게 점점이 피어나고 있다. 그런데 요즘, 마음속 어딘가는 서늘한 땅 속 한기가 그대로인 듯 겨울이 끝나간다는 것이 도무지 실감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나이든 부모님을, 또는 어린 아이들을, 누군가는 생계의 위협을, 또 다른 누군가는 한 끼 식사의 지원에 걱정이 끊이질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회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스트레스로 더 포악해진 학대 가족의 눈을 피해 살아남아야 하는 어떤 아이들은, 살아서 학교에 갈 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영화 &ls...
입력:2020-03-06 04:10:01
[살며 사랑하며] 잠시 멈춤
어제 친정엄마께 안부 전화를 드렸다. 통화하는 소리를 듣더니 아이가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겠다면서 전화를 바꿔달라고 한다. 아이는 인사를 드리면서 주일마다 미사를 가시는데 요즘은 어떻게 하시냐고 여쭤본다. 엄마는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지 않고 생중계하는 미사를 방송으로 틀어놓고 집에서 참여한다고 하셨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이후 일상에 여러 변화가 생겼다. 아이가 다니는 영어 학원은 이번 주부터 온라인 화상 수업을 시작했다. 반 아이들과 선생님이 영상 회의가 가능한 프로그램을 통해 동시에 접속해서 수업을 진행했다. 처음으로 영상 수업을 하게 ...
입력:2020-03-04 04:05:01
[살며 사랑하며] 물류창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인해 일상에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이런저런 일정이 취소되었고 도서관도 휴관해 집에 며칠간 갇혀 있는 신세가 되었다.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남편도 귀가시간이 늦어졌다. 사람들이 외출을 꺼리면서 물류업체는 일시적인 활황을 누리는 모양이었다. 늦어도 새벽 2시에는 귀가하던 남편이 새벽 3시가 되도록 집에 오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10분 뒤 남편으로부터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핸드폰 액정화면 속 남편의 얼굴 뒤로 높게 쌓아올린 상자들이 보였다. 남편이 말했다. “아직 안 끝났어. 물량 폭주야.” 남편...
입력:2020-03-02 04:10:01
[살며 사랑하며] 진흙 속의 연꽃
“제가 과연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상처를 겪은 분들의 질문에 치료자들은 답한다. 돌아갈 수 없다고. 잔인한 말 같지만 많은 피해자분들은 이 대답에 안심한다. 오히려 “곧 괜찮아질 거야. 원래대로 돌아갈 거야”라는 위로의 말이 더 잔인하게 들린다고 한다. 도저히 돌아갈 수 없을 것 같건만 모두들 괜찮다고, 곧 돌아갈 거라고 하니 나만 문제인가 싶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치료자들은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일까. ‘외상후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라는 정신과학 용어가 있다. 원래 외상 후 ‘후유 장애, 스트...
입력:2020-02-28 04:05:02
[살며 사랑하며] 독서가 준 선물
책을 읽고 난 후 어떤 변화가 있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 처음에는 스스로도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크게 실감하지 못했다. 책을 안 읽어도 지식도 풍부하고 지혜로운 사람도 많지 않느냐는 질문에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차라리 이렇게 책을 읽을 시간에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고민도 많았다. 나만이 정체되어가고 있다는 두려움도 커져만 갔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변화는 먼저 내면에서 시작되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조금만 안 좋은 소리를 들어도 억울해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들어야 ...
입력:2020-02-26 04:10:01
[살며 사랑하며] 글벗
글쓰기 수업의 마지막 날, 작은 서점은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그날은 평소보다 수업을 일찍 마치고 치킨집으로 이동해 뒤풀이를 했다. 우리가 알게 된 건 고작 5주, 그것도 일주일에 한 번 한두 시간이었는데 알고 지낸 지 좀 더 오래된 기분이 들었다. 집에 가서 글쓰기 숙제를 하는 시간에도 서로 연결돼 있었기 때문일까. 글이란 어쩔 수 없이 글쓴이를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학 시절 나는 글쓰기 모임을 찾다가 인터넷 글쓰기 동호회에 가입했다. 생전 처음으로 참여한 글쓰기 모임이었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만난 동호회 리더는 이렇게 말했다. “...
입력:2020-02-24 04:10:01
[살며 사랑하며] 크레파스 그림과 유화
교과서에서만 접하던 명화를 미술관에서 직접 보고는, 그 엄청난 색감과 무게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학창시절 얄팍한 책으로는 못 보던 세상을 불혹이 넘어서야 알다니 안타깝던 차에, 동네 구경하듯 미술관에 놀러 온 그 나라의 어린 학생들이 마냥 부러워 보였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우리나라 아이들 중에는 그림 그리기를 완강히 싫어하거나, 그리기도 전에 자기는 잘 못 그린다며 울상부터 짓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런 아이들은 과거 크레파스나 사인펜을 사용하는 시기에 그림 선을 벗어나거나 잘못 색칠을 하면 누군가로부터 지적받은 기억이 많거나, 본인 스스...
입력:2020-02-21 04:05:02
[살며 사랑하며] 인생의 황금기
얼마 전 친구를 만났다가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두 가지 이야기만 주로 한다는 말을 들었다. 본인이 아픈 이야기와 부모님이 아프신 이야기라고 한다. 전혀 웃을 이야기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감이 가서 웃음이 나왔다. 마흔 중반이 넘으면서 갱년기 증상과 함께 몸이 아파 병원치료를 받거나 약을 먹는 게 일상이 된 분도 주변에 많다.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다는 하소연들도 이어진다. 몇 년 전부터 갱년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이 시기를 힘들게 겪으셨던 분의 경험담을 듣고 나서부터였다.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사람을 만나는 것도 피하고, 밤에 잠을 ...
입력:2020-02-19 04:10:01
[살며 사랑하며] 리메이크
과거를 돌아보지 않으려 애쓰지만 어쩔 수 없이 지난 기억들이 물밀 듯이 밀려오는 날이 있다. 카페에 흐르는 아이유의 리메이크 곡들 때문이었다. 십대, 이십대를 지나며 들었던 노래들이 감성이 풍부한 가수의 목소리로 귓가에 스며드니 어쩔 수 없이 하던 일을 놓고 음악에 취할 수밖에 없었다. ‘조용한 밤하늘에 아름다운 별빛이 멀리 있는 창가에도 소리 없이 비추고 한낮의 기억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꿈을 꾸듯 밤하늘만 바라보고 있어요. 부드러운 노랫소리에 내 마음은 아이처럼 파란 추억의 바다로 뛰어가고 있네요. 깊은 밤 아름다운 그 시간은 이렇게 찾아...
입력:2020-02-17 04:10:01
[살며 사랑하며] 꽃 차
직접 만든 차를 선물 받았다. 고운 꽃을 조심스레 골라 긴 시간 정성으로 말렸을 시간과 마음이 느껴졌다. 추운 겨울, 유리병을 열고 꽃 한 송이를 조심스레 꺼내어 뜨끈한 물병에 넣고 기다린다. 햇빛과 바람에 살살 말려 있던 꽃이 다시 한 잎 한 잎 피어나는 것을 보는 재미도 더해진다. 꽃이 다 피고 색이 우러나면, 또 다른 고마운 분께 선물 받은 도기잔에 차를 따른 뒤 눈으로, 향으로 한 모금씩 마시며 몸과 마음을 덥힌다. 다사다난했던 지난 한 해였건만 감사한 일들과 분에 넘치는 사람들이 찻잔 위로 떠오른다.주변의 마음을 느끼는 순간은 드물고 비싼 선물 덕...
입력:2020-02-14 04:10:01
[살며 사랑하며] 한국영화의 저력
며칠 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이 4관왕을 차지하는 장면을 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상당히 고전적으로 들리지만 내 취미는 영화 감상이다. 영화광까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영화를 보지 않았던 시기는 한 번도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매달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집에서도 영화를 즐겨 본다. 처음 극장에 가본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여름방학이 되어 집에서만 보내고 있던 내게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오빠는 좋은 곳에 데려가준다면서 따라오라고 했다. 그때 본 영화는 ‘슈퍼맨 2’였다. 하늘을 나는 망토를 걸친 슈퍼맨만큼이나 처...
입력:2020-02-12 04:05:02
[살며 사랑하며] 마스크
일주일에 한 번 작은 서점에서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세 번째 수업이 진행되었던 지난 수요일, 집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을 잊었기 때문이다. 그날 수강생들은 지난주 과제였던 ‘물건을 소재로 삼아 쓴 짧은 글’을 제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인지 두 명의 수강생이 ‘마스크’를 소재로 삼은 소설을 써왔다. 그들의 글에서 마스크는 공포를 뜻하는 것이기도 했고 아직 잊지 못한 연인의 흔적이기도 했다. 나는 마스크를 보면 한 친구가 떠오른다.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이사를 자주 다녀야 ...
입력:2020-02-10 04:05:02
[살며 사랑하며] 겨울의 꿈
파삭한 이파리조차 남지 않은 메마른 나무들이 보인다. 황량한 칼바람에 옷깃을 힘껏 여미다 보면 과연 따스한 봄이, 연한 새싹이 이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올 날이 올지 믿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아무리 겨울이 혹독해도 봄은 언제나 왔다는 것을. 심리적 고통은 지금의 괴로움이 끝없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악화된다. 어쩔 수 없이 상황이 나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계절이 지나가듯, 하루하루 차이는 안 보여도 어느새 옷이 짤막해지는 아이의 키처럼 그 ‘순간’은 변해 간다. 극적인 불안에 쫓기는 공황 발작의 경우에도 시...
입력:2020-02-07 04:05:01
[살며 사랑하며] 선택의 두려움
초등학교 때 푹 빠져 보던 미국 드라마 중에 ‘타임머신’이라는 시리즈가 있었다. 주인공이 꼬마 아이와 함께 시간 여행을 떠나는 모험담이었다. 시간장치에서 역사의 사건이 뒤바뀌었다는 신호가 오면 두 사람은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 이를 바로잡는다. 과거에 잘못된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설정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얼마 전 모임에서 만약 인생의 한 시기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면 언제로 다시 돌아가겠냐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짧은 순간에 인생의 여러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취직을 했다면 ...
입력:2020-02-05 04:10:01
[살며 사랑하며] 만화경
주말마다 공원 놀이터에서 혼자 노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를 본 것은 반년이 넘었다. 다른 아이들은 그네를 타거나 미끄럼틀 위에 올라가 있는데 그 아이는 늘 혼자 놀았다. 아이 엄마가 창문에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집으로 들어오라고 해도 아이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눕거나 앉은 채로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동네 주민이 그 아이에 대해 귀띔해주었는데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이후로 아이가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아이를 더욱 유심히 지켜보게 되었다. 아이는 늘 허름한 옷차림이었고 낮시간에 공원 벤치에 앉아 무언가를...
입력:2020-02-03 04:10:01
[살며 사랑하며] 등굣길 풍경
아이 학교의 교통지도 봉사는 동네 분위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직업상 봉사를 하려면 진료 없는 날로 스케줄을 맞추고 휴가도 내야 해서 처음에는 이 제도가 참 껄끄러웠다. 하지만 몇 번 하다 보니, 종일 건물 안에서만 머물며 어둑한 시간대에 출퇴근하다가 날 밝은 오전의 동네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껴보는 것에도 나름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방학 중에는 안 한다지만 그래도 쨍쨍한 햇빛 아래이거나 살이 에는 추위 속에서는 아무래도 몸이 힘든데, 예년보다 추위가 덜한 요즘에는 40여분 한 자리를 지키는 것도 할 만하다. 길 위 아이들 모습은 정말 각...
입력:2020-01-31 04:10:02
[살며 사랑하며] 누구나 틀릴 수 있다
대학원 시절, 조교로 사무실에 근무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전화가 종종 걸려왔다. 국문과 사무실이었던지라 맞춤법이나 단어는 기본이고 고사성어나 속담을 물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이야기하다 서로 의견이 엇갈려 언쟁이 벌어지면 맞는 답을 찾기 위해 관련된 곳에 전화를 걸어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냥 궁금해서 전화를 건 사람도 있었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 서로 언쟁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자신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이 틀렸다고 말을 하면 답답하기 마련이다. 퇴근 무렵 전화를 걸어 다급하게 ‘배나무밭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가 ...
입력:2020-01-29 04:10:01
[살며 사랑하며] 판, 소리와 추임새
문제가 생기면 서구에서는 영웅을, 한국에서는 책임자부터 찾는다고들 한다. 부정적인 남 탓 성향을 꼬집는 말이라 듣기엔 불편해도, 그 말이 맞는다 싶은 경우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마주하곤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작은 전통음악 공연장에서 우리 문화에 대해 다르게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날의 공연자는 능청스러운 농담과 재치를 섞어 판소리를 소개하는 것으로 무대를 열었다. 어딘가 어색한 청중들의 분위기는 어느새 소리꾼의 맛깔난 입담 덕에 금세 긴장이 풀어졌고 나 역시 무대에 쏙 빠져들어 갔다. 진행자의 설명에 의하면, 판소리는 ‘판’, ...
입력:2020-01-24 04:05:02
[살며 사랑하며] 참견과 조언의 차이
딸아이의 사춘기가 한창이던 무렵, 아이와 나누는 대화는 의도와 무관하게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대화는 말다툼으로 끝을 맺었고, 아이는 어김없이 “다시는 엄마와 이야기 나누고 싶지 않아”라며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점점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일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상황에 대한 올바른 방향이라고 제시했던 조언을 아이는 불편해 했다. 자신을 가르치려 들지 말라는 말도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면 당황스러웠다. 아이의 행동을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나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였다. 청소년 시절 나는 누군가로부터 간섭받는 ...
입력:2020-01-22 04:05:01
[살며 사랑하며] 철물점과 예술가
길을 걷다가 길가의 가게에 시선이 멎었다. 2층짜리 연립주택 1층에 있는 철물점이었다. 처음에는 철물점이라는 것을 몰랐다. 철물점이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기도 했지만 살면서 이런 외관을 갖춘 철물점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도꼭지, 샤워기, 자물쇠, 형광등 같은 철물점에서 파는 물건들과 멜로디언, 스피커, 기타 같은 음향기기와 악기들을 벽면에 빼곡히 달아 꾸민 그 가게는 하나의 거대한 예술품 같았다. 벽면에는 ‘모기장 수리’ ‘전기 공사’ ‘수도꼭지 교체’ ‘출장 수리’와 같은 글자가 붙어 있었다. 밤에는 초록빛 등을 켜놓...
입력:2020-01-20 04:10:01
[살며 사랑하며] ‘기생충’의 아이들
우리나라 영화가 세계적으로 눈부신 선전을 보이고 있다. 같은 분야에서 그간 열심히 토대를 쌓아 온 영화인들 못지않게 국민 역시 국제 경기를 보듯 응원하는 축제의 분위기도 느껴진다. 이러한 분위기에 맞춰 풍부한 비평과 의견들이 온오프라인에 쏟아지다 보니 다양한 관점들을 찾아보는 것도 영화 자체와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그런데 전공이 전공(소아정신과)이다 보니, 영화 속에서 내 시선을 끈 것은 기존의 비평들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었다. 스포일러를 피해 간단히 언급하자면, 영화의 중심인 두 가정 모두에서 겉으로 보이는 것 이면의 현실을 정확하게 깨달...
입력:2020-01-17 04:05:02
[살며 사랑하며] 미래를 알게 된다면
최근 바라는 일들이 잘 풀리지 않아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평소에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실제 결과가 그보다 나쁘지 않게 되면 낙담을 덜 하는 편이었다. 몇 달 동안은 이와 반대로 가장 희망적인 상황을 예상하였다. 그러다 보니 번번이 심리적인 기대가 무너지면서 힘들어졌다. 비과학적인 것들을 믿지 않는 성향임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으로 흔들리니 자꾸 무언가에 기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문득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게 된다면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궁금해졌다. 며칠 전 길을 걷다가 아이의 생각이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
입력:2020-01-15 04:10:01
[살며 사랑하며] 협상 가능한 맛
어머니와 함께 비건 카페를 방문했다. 집에서 가깝진 않았지만 친구가 추천한 식당이었으므로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소풍 가는 마음으로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지하철과 마을버스를 타고 예쁜 간판을 단 비건 카페에 도착했다.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전이었지만 이미 외국인 손님들이 한쪽 테이블을 메우고 있었다. 나는 메뉴판을 들여다봤다. 메뉴는 커피, 케이크, 아이스크림과 같은 디저트류부터 햄버거, 피자, 파스타, 볶음밥과 같은 식사류까지 다양했다. 모든 음식은 육류, 어패류는 물론이고 달걀, 버터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식물성 재료만을 사용해 만든...
입력:2020-01-13 04:10:01
[살며 사랑하며] 기념일, 반응
이상하리만치 모든 게 안 풀리는 날이었다. 출근길부터 잘못 들어 한참 돌고, 소소한 일정들마다 어긋나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저녁쯤 되니 진이 다 빠져, 예전 같으면 그냥 웃고 넘길 일에도 씩씩대다 부루퉁해졌다. 애초 이렇게까지 힘들 일정이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꼬였나 생각하다 잠들기 직전에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이 즈음 은사님이 비명에 돌아가셨다. 우연히 시선을 돌린 TV 화면. 뉴스 속보 타이틀을 보는 순간 나는 내가 울부짖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악을 썼다. 1년간 공식적인 어느 자리에서도 나는 그 일을 입에 담지 못했다. 범죄 피해 유가...
입력:2020-01-10 04:10:01
[살며 사랑하며] 운동의 이유
몇 해 전 이렇게 운동을 안 해도 괜찮은 걸까 걱정스러워 뭐라도 해보자며 고민했던 적이 있다. 후보에 올랐던 대부분의 운동을 각각의 이유로 탈락시키고 나니 남은 것은 줄넘기밖에 없었다. 줄넘기쯤이야 하고 시작한 첫날, 천 번은 거뜬히 할 거라는 기대와 달리 백 번도 하기 전에 숨이 차서 주저앉고 말았다. 살면서 운동을 열심히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매해 ‘올해는 운동을 해야지’라는 굳은 결심을 하고 스포츠센터를 몇 개월씩 등록하고 나서도 며칠 다니다 나가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줄넘기에서도 좌절을 경험한 그날 이후, 이제...
입력:2020-01-08 0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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