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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하주원] 날씨와 기분
더위에 지친다. 그런데 문제는 땡볕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것이 아닌데도 그렇다는 점이다. 차라리 태양 아래 열심히 몸을 움직여서 힘든 것이라면 납득이 되는데 에어컨 아래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사소한 것에 대해 더 예민해지고 걱정이 많아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감정을 다루는 방식은 다르지만, 나는 이럴 때 감정의 이유를 찾아보려고 애쓰는 편이었다. 하지만 감정의 이유를 찾는 방식이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느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다고 답할 수는 없다. 과연 어제 있었던 안 좋은 일, 몇 주째 해결되지 않는 문제, 또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의 애착 관계에 ...
입력:2018-07-18 04:10:01
[살며 사랑하며-김태용] 서울국제실험영화제
어느 순간부터 영화제들이 여러 지역에 생기면서 하나의 연례행사 혹은 축제로 자리 잡고 있다. 지자체의 지원과 지역 홍보를 위해 갑자기 생겼다가 사라지는 영화제도 있어, 영화라는 본질이 실종된 씁쓸한 영화 밖 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많은 영화제 중에서 매년 빼놓지 않고 가거나 작품 리스트를 주목하는 영화제가 있는데 서울국제실험영화제(EXiS2018)가 그렇다. 얼마 전 개막돼 진행 중인 서울국제실험영화제는 그 이름처럼 1년에 한 번 다양한 나라의 실험 영화들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다. 역사적인 전위 영화나 실험적 영상들을 필름으로 볼 수 있는 거의 유일...
입력:2018-07-16 04:10:01
[살며 사랑하며-황시운] 네 잎 클로버
승강기 문이 열렸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내 무릎 위로 풀잎 두 개가 사뿐히 내려앉았다. 연한 초록빛의 네 잎 클로버였다. 잠시 멍하니 클로버를 바라보다 번쩍 정신이 들었다. 서둘러 시선을 들어 그걸 내 무릎 위에 내려놓고 승강기에서 내린 사람의 뒷모습을 좇았다. 샛노란 티셔츠와 회색 반바지, 슬리퍼 차림의 남자였다. 곧 승강기 문이 닫혔다.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무릎 위에 놓인 클로버를 골똘히 바라보았다. 누군가를 향하던 행운이 방향을 틀어 내게로 온 느낌이었다. 이제 더는 나빠질 것도 없다고 생각할 때마다 사람들은 용케 멀쩡한 ...
입력:2018-07-13 04:10:01
[살며 사랑하며-하주원] 과감한 시도
명절에 여자는 하루 종일 음식만 만들고 막상 제사 때는 절을 하지도 못하는 집안에서 자라났다. 제사 때 여자도 절을 같이 하는 게 옳다며 아버지가 나에게 절을 시켰다가 친척 어른들에게 욕을 먹은 기억이 난다. 내가 공부나 행동을 잘해봤자 친척들에게 돌아오는 말은 ‘네가 아들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였다. 고등학교에서 같은 반 남학생이 우수작으로 뽑혀 교탁에서 읽은 논술문의 주제는 ‘여자는 직업을 갖지 말고 엄마의 역할만 하는 것이 좋습니다’였다. 대학이나 직장에서 목격한 성폭행과 성추행은 또 얼마나 많았나. 피해자가 원하지 않...
입력:2018-07-11 04:10:01
[살며 사랑하며-김태용] 무지개 기억
살다보면 일상의 규칙과 사물의 배치를 달리한 것뿐인데 지구의 움직임이 달라지고, 마음의 상태가 변한 것만 같을 때가 있다. 며칠 전 작업실에 앉아 있을 때 평소와 달리 블라인드를 올려보기로 했다. 블라인드를 올리자 창밖의 흔들리는 은행잎들 너머의 구름 저편으로 엷은 무지개가 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지개, 놓칠 수 없다”라고 중얼거리며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보며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나의 손을 움직여 블라인드를 올리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렇다. 나는 2018년 7월 3일 무지개를 보았다. 어쩌면 찾았는지도 모른다. ...
입력:2018-07-09 04:10:01
[살며 사랑하며-황시운] 분노의 방향
외출이 어려운 탓에 대부분 생필품을 인터넷 쇼핑으로 산다. 얼마 전에도 필요한 물건이 몇 가지 있어 인터넷 쇼핑을 했다. 늘 하던 대로 최저가 검색을 하고 배송비를 고려해 가장 싼값에 구매가 가능한 각각의 업체에 물건을 주문했다. 물건들은 이튿날부터 속속 도착했다. 그런데 세안제만은 일주일이 넘도록 소식이 없었다. 쇼핑몰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송장 번호가 발부되어 곧 배송이 시작될 거라고 안내되어 있었다. 늦어도 금요일쯤엔 받아볼 수 있을 거로 생각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물건은 주말을 넘기고 월요일까지도 도착하지 않았다. 사이트에 다시 들...
입력:2018-07-06 04:05:02
[살며 사랑하며-하주원] 모기와 멧돼지
등산로 바로 옆에 살다 보니 사슴벌레, 무당벌레, 다람쥐, 백로 등을 자주 만난다. 이런 반가운 존재들을 만나는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고 멧돼지를 마주치는 공포스러운 경험도 있었다. 내가 지능이 있어봤자 저놈과 일대일로 붙으면 지겠구나 싶어 조심스레 도망쳤다. 멧돼지는 그나마 멀리서 알아챌 수 있는데 끊임없이 찾아오는 모기는 잘 안 보여서 무섭다. 방충망을 달고 문틈을 막아도 커다란 산모기는 꼭 온다. 물론 산 옆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연간 2억명에게 말라리아를 감염시킬 뿐만 아니라 귀 옆에 와서 ‘왱∼왱∼’거리며 잠을 깨우고 통증보다 ...
입력:2018-07-04 04:05:01
[살며 사랑하며-김태용] 얼굴들, 마을들
도시에서, 시골 마을에서 종종 마주치게 되는 조형물과 외벽 그림들이 있다. 일종의 공공미술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수억원에 달하는 작품부터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로 만들어진 작품들, 조악한 낙서 같은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지역 문화와 취향에 따라 작품들을 다르게 받아들이지만, 공간의 흉물 같은 작품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고가의 조형물이 도시 한복판에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공공미술에는 단지 눈의 즐거움이 아닌 공간에 대한 사회적·미학적 사유가 있어야 한다. ‘바르다...
입력:2018-07-02 04:10:01
[살며 사랑하며-황시운] 빨간 모자의 아이들
동생의 세 아이 중 늦둥이 막내를 제외한 두 아이는 특별한 일정이 없는 주말이면 내게로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온종일 재잘대며 크고 작은 사건을 일으키는 두 아이를 따라다니다 보면 우울할 새 없이 즐거웠다. 세 아이의 육아에 지친 올케도 그 틈에 한숨 돌릴 수 있으니 모두에게 두루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매주 아이들과 만나왔는데 지난 두어 달간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웬만하면 아이들의 방문을 마다하지 않았겠지만, 여러 개의 마감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급한 일을 어느 정도 해결하고 난 지난주말, 오랜만에 방문한 아이들은 ...
입력:2018-06-29 04:10:02
[살며 사랑하며-하주원] 정신건강의 비용
다음 달부터 정신건강의학과의 상담 비용이 줄어든다. 정확히 말하자면 1차 의료기관인 동네 의원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상담에 대한 본인부담금이 줄어드는 것이다. 상담료는 시간별로 차이가 생기고, 건강보험을 적용받는 치료가 늘어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우리나라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 정신질환이 있어도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여러 이유 중에 비용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기회비용까지 고려한다면 우울증은 치료받지 않았을 때 훨씬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우울증 증상만 봐도 집중력 저하 때문에 ...
입력:2018-06-27 04:10:01
[살며 사랑하며-황시운] 아빠와 함께 떠날 여행
SNS 친구들 중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행 중이어서, 나는 거의 매일 그들이 올리는 이국의 풍경과 생소한 음식 사진들을 본다. 이제 더는 해외여행이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세상이 된 것 같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하면서 동시에 소설도 써야 했기 때문에 여유가 없었다는 말은, 이제 와 생각하면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여유가 없는 형편인데도 시간과 돈을 투자해 낯선 곳으로 떠나는 이들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어쩌면 그것은 형편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사고로 두 다리를 잃고 난 후였다. ...
입력:2018-06-22 04:05:01
[살며 사랑하며-하주원] 월드컵 소외감
모든 종류의 소외감이 그렇듯 분명 잘 찾아보면 나와 똑같이 느끼는 사람이 어디엔가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내 생각을 드러내놓고 말하기는 참 어려운 것이 소외감의 본질이다. 축제에 찬물 끼얹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나는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소외감을 느꼈다. 2002년에는 우리 과만 시험이 늦게 끝나 시험공부를 하며 신나는 함성 소리를 들었다. 예상을 넘어 우리나라가 4강까지 올라간 덕분에 시험이 끝나고도 우리나라 경기를 볼 수 있었다. 마지막 경기에 거리응원을 나갔다가 거리응원 행렬 속으로 행진하는 8명쯤 올라탄 경차에 발이 깔리면서 공황을 경험했...
입력:2018-06-20 04:05:01
[살며 사랑하며-김태용]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이 끝나고 전 세계 사람들은 한 편의 영화를 동시에 보았다. 국제미디어센터 스크린에 투사된 영상들과 내레이션에 감각이 집중되었다. 5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한반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압축하고 역사적 질문을 던지는 영상이었다. 불연속적인 이미지를 속도감 있게 연결·충돌시키고 있었다. 백악관에서 만든 영상으로 사전에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여주고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기자회견에서 나오기도 했다. 이미지와 내레이션이 머리와 가슴에 스며드는 사이, 한 장면이 눈에 들어와 이후...
입력:2018-06-18 04:05:01
[살며 사랑하며-황시운] 반공 트라우마에 대하여
열한 살 때까지 산골마을에서 자랐다. 극장이 있는 읍내는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은 족히 가야 하는 곳이었다. 아버지들은 대부분 탄을 캐는 광부였고 엄마들은 밭농사를 짓거나 양잠을 했다. 아이들은 온종일 저희들끼리 놀다가 아무 집에나 몰려가 밥을 먹었다. 그곳의 작은 초등학교에선 일 년에 두어 번 교실 벽에 흰 천을 걸고 영화를 보여줬다. 야생소년 똘이가 붉은 돼지 수령을 무찌르는 내용의 ‘똘이장군’ 시리즈나, 이승복 어린이의 일화를 다룬 기록영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같은 것들이었다. 아마도 반공교육의 일환이었을 텐데, 나는 매번 ...
입력:2018-06-15 05:05:04
[살며 사랑하며-하주원] 예측과 기대
우리가 ‘예측한다’고 말하는 많은 것들이 실제로는 예측보다는 소망에 가깝다. 도서관에서 온갖 먼지나는 책을 뒤져야 했던 예전과 달리 인터넷의 방대한 데이터 중에 내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를 찾는 것은 더 쉬워졌다. 이를 통해 실은 주장하거나 바라면서도 마치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예측하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되었다. 자가 주택 보유자들이 부동산 상승론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대학병원에서 논문을 쓰던 때, 내 실험 결과와 일치하고 내 주장을 잘 뒷받침하는 논문을 찾기 쉬웠다. 한편 내 결과와 반대인 논문 역시 찾기 어렵지 않았다. ...
입력:2018-06-13 05:10:02
[살며 사랑하며-김태용] 세계의 일기
내가 쓴 최초의 문장은 무엇일까?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그 문장을 찾기 위한 시간의 여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 시간은 무수한 언어들로 가득 찬 세계다. 매 순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나라는 필터를 통과해 언어로 재조립된다. 중학교 때부터 일기를 쓰고 있는데 기록 방식은 다양하다. 때로는 감정의 토로로, 객관적 서술로, 장소들과 음식들의 나열로, 추상적인 그림으로 바뀌거나 뒤섞여 있다. 날짜만 쓰여 있는 텅 빈 지면도 자주 발견하곤 한다.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고, 누구를 만났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생략돼 있지만 그 어느 날보다 중요한 날이었다는 ...
입력:2018-06-11 05:10:02
[살며 사랑하며-황시운] 휠체어 생활자들의 나들이
지난주 재활병원에서 함께 생활했던 친구들과 모임이 있었다. 오십 대부터 이십 대까지 다양한 연령이다. 모임 장소는 참석자들 중 한 사람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내 공원이었다. 여러 대의 휠체어가 들어갈 만한 장소를 찾기 힘드니 차라리 속 편하게 밖에서 보자는 그이의 의견에 따른 것이었다. 우리는 따가운 봄 햇살이 내리쬐는 야외에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며 오래 수다를 떨었다. 그날 모인 사람들은 모두 갑자기 닥친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중도장애인이었다. 아직은 건강했던 몸에 대한 기억이 훨씬 더 많은 이들이다. 그래서인지 다들 불쑥불쑥 과거의 한때...
입력:2018-06-08 05:05:03
[살며 사랑하며-김태용] 소리의 천국
1980년대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놀이가 있었다. 바로 콜라병 따는 소리였다. 제법 잘 흉내 내는 아이들이 있었고, 심지어 콜라 거품 소리와 컵에 콜라는 따르는 소리를 만들 줄 아는 아이도 있었다. 당시 TV 광고의 콜라병 따는 소리를 사람이 만들었고, 그 사람이 콜라 회사로부터 백지수표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돌았다. 후에 그 사람이 김벌래라는 음향감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치약 광고의 뽀드득 소리, 만화 ‘로봇 태권V’에 나오는 우주선 소리, 88올림픽 때 굴렁쇠 소년의 배경음으로 사용한 시그널 등 많은 소리들을 만들었다고 한다. 최근에 ...
입력:2018-06-04 05:05:02
[살며 사랑하며-황시운] 모두가 행복한 극장
극장에 가는 걸 좋아했다. 기대 가득한 웅성거림과 조도 낮은 조명, 달큼하고 고소한 팝콘 냄새 같은 것들이 한데 어우러진 이 공간은 평범한 일상도 조금쯤은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관객이 가득 찬 상영관에서 사람들과 함께 웃고 울고 놀라며 영화를 보는 것은 신나는 일이었다. 텅 빈 상영관에서 혼자 스크린을 바라볼 때면 한없이 쓸쓸해졌지만 그 또한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즐거운 공간은 내가 휠체어를 사용하게 된 순간부터 더할 수 없이 불편한 곳이 되어 버렸다. 상영관의 좌석은 대개 중간부터 차기 시작한다. 매진이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맨 앞의 서너 ...
입력:2018-06-01 05:05:03
[살며 사랑하며-하주원] 질병과 무관한 것들
재작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가장 큰 마음고생을 했다가 그래도 한동안 괜찮았던 K씨가 다시 걱정에 빠졌다. K씨는 조현병 15년째이며 나는 그 전투 중에 4년을 함께했는데 1년이면 360일은 약을 먹는 정성이 놀라운 분이다. 매일 약을 빠뜨리지 않고 먹는 것은 하나의 수행(修行)이며, 몇 달만 지나도 나태해지기 쉬운데 말이다. 조현병을 앓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다 털어놓지는 못했지만, 뛰어난 실력으로 점점 좋은 직장으로 이직하는 데다 동호회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물론 K씨의 경과가 좋은 편인 것은 사실이다. 최근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조현...
입력:2018-05-30 05:05:03
[살며 사랑하며-김태용] 드라마는 계속돼야 한다
4·27 남북 정상회담 이후 숨 가쁘게 돌아가는 국내외 정세를 보면 이보다 더 쫄깃쫄깃한 드라마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며칠 새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북·미의 정치적 언어 갈등, 미국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남북 정상의 두 번째 만남, 북·미 회담의 재개 가능성 등은 한 편의 드라마를 정주행하는 것만 같다. 예고편은 예고편일 뿐 본편은 기대 이상과 이하의 반전이 있고, 때로는 대본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감동과 미스터리의 씨줄과 날줄로 엮인 드라마의 후반부에서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뜬금없지만 놀라운 ...
입력:2018-05-28 05:10:03
[살며 사랑하며-황시운] 포옹
얼마 전, 이모님 내외분과 함께 식사를 했다. 약속 시간에 맞춰 부모님을 모시고 이종사촌 오빠가 예약해 둔 식당으로 갔다. 호숫가에 자리한 식당의 진입로는 좁고 가팔랐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주차장으로 진입하려는데, 아빠가 갑자기 차문을 열었다. 나도 모르게 버럭 화를 냈다. 아빠는 막무가내로 차에서 내리더니 식당 건물을 향해 휘청휘청 걷기 시작했다. 건물 출입구 앞엔 먼저 도착한 이모부께서 이쪽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건물 앞에 다다른 아빠가 이모부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나는 두 분이 포옹하며 서로의 등을 쓸어내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도 모르게 ...
입력:2018-05-25 05:05:03
[살며 사랑하며-하주원] 말하지 못하는 승자
미투 운동으로 인해 묻힐 뻔한 성폭력이 세상에 드러났고, 특히 위계에 의한 성폭력에 대해 많은 이들이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커다란 용기를 갖고 미투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대단하지만, 상대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초라함을 느끼는 경우를 본다. 피해자라고 모두 미투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에, 약자와 약자 간의 간극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첫째로 가해자를 찾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 26년 전쯤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어 언제라도 가해자를 혼내주고 싶으나 도무지 찾을 길이 없다. 둘째로 피해자로서 이런 사실을 밝혀서 얻는 손해가 가해자에게 끼치는 ...
입력:2018-05-23 05:05:03
[살며 사랑하며-김태용] 엄청 매우 가능한 글쓰기
독자들은 이 글의 제목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미소를 지을 수도,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겠다. ‘뭐가 엄청 매우 가능한 글쓰기라는 거야?’라고 댓글을 달수도 있을 것이다. 더 악의적인 댓글들이 달리면 어째서 나는 저런 제목의 글을 쓰게 됐나 하고 잠시 동안 엄청 매우 심란한 상태에 빠질지도 모른다. 소설 창작 강의를 하면서 문장에 대한 대화를 많이 하게 된다. 문체(文體)와 문채(文彩)가 동시에 작동하는 작가의 의식세계가 문장이다. 명료하고, 독창적이면서 경제적으로 써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쓸 것인가 인데 ...
입력:2018-05-21 05:05:02
[살며 사랑하며-황시운] 낮은 이들의 소확행
올해 2월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최저시급을 받는 시간제 재택근무다. 비정규직이긴 해도 4대 보험이 보장되는 일자리는 8년 만이었다. 그동안 돈을 벌어오라고 눈치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언제부턴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절약하려 애써도 비정기적인 원고료만으론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살림을 따로 나고 혼자서 일상을 꾸려가도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탓에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더는 늙은 부모의 등골을 빼먹으며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정기적인 수입이 절실했다.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규칙적인 수입이 생기자 할 수 있는 일이 늘...
입력:2018-05-18 05: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