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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만추에 만난 사람들
초등학교 1학년 때쯤인 것 같다. 우리집에 들른 교회 집사님이 아버지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집사님이 타고 온 자전거를 갖고 놀다가 양쪽 바퀴 바람을 다 빼고 말았다. 아버지는 노발대발 꾸중을 하시는데, 집사님은 크게 한번 웃으시고는 자전거를 손수 끌고 나갔다. 그때 그분 집이 가까운 곳은 아니었기에 많이 미안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달 초, 그 집사님이 사는 전남 진도에 다녀왔다. 자전거 사건 이후 집사님의 삶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던 일을 관두고 신학에 입문해 목사님이 됐다. 그는 지도 한 장 들고 아내와 어린 삼남매를 데리고 진도 땅을 밟았다. ...
입력:2022-11-19 04:10:01
[바이블시론] ‘이태원역 1번 출구’의 애도
다시 참사다. 온 나라가 충격과 슬픔에 잠긴 사회적 참사다. 그래서 사고냐 참사냐의 논쟁은 단순한 말꼬리 잡기가 아니다. 예기치 못한 불행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사고’라는 말로는 이 일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음을 직감한 대중 정서를 무시한 결과다. 관료들의 불순한 의도는 아닐지 몰라도, 언어가 전혀 다른 현실을 만든다는 걸 경험으로 체득한 대중을 채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158명의 안타까운 생명을 잃은 참사 앞에서 진정한 사회적 애도의 길을 묻는다. 사회적 참사를 겪으며 우리는 어떤 애도의 언어와 형식을 취해야 할까? 어떤 것이 유족과 함...
입력:2022-11-18 04:10:01
[시온의 소리] 감사 찬양의 향기
어느새 11월이 되었다. 교회력으로는 11월이 한 해의 끝이고 보니, 지금은 지내온 시간을 돌아보는 때다. 예기치 못했던 사건과 사고들로 인한 슬픔과 절망, 참담한 분노도 차분히 마무리해야 하고, 한 해 동안 지내온 화려한 순간들에 대한 기억도 마땅한 정리가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어느 누구에나 돌아보면 아쉽고 부족한 시간이 있었겠지만, 또한 어느 누구의 시간도 안타까움만으로 채워지지는 않는다. 예기치 못한 은혜와 감사의 시간이 삶의 곳곳에는 들어있다. 우리의 능력 밖에서 일어난 무수히 많은 일은, ‘은혜’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
입력:2022-11-17 03:10:01
[송상철 목사의 ‘복음 백신’] 지속 가능한 일을 계속하게 하소서
코로나19로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우리는 질문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지속 가능한 일인가. 나는 기도한다. 지속 가능한 일에 집중해 계속하게 하소서! 앞으로 지구가 존속하려면 탄소배출량을 줄여 지구 표면 온도가 올라가지 않게 막아야 한다. 그래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고 화석연료인 석탄과 휘발유 사용을 줄이고, 태양광 발전 같은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태양광 설비, 수소전지, 전기 배터리 등이 지속 가능하 게 될 것이다. 앞으로 10년 이내에 휘발유 자동차는 사라지고 전기 자동차 시대가 온다고 한다. 영국의 윌리엄 문은 수재였다. 그러나 ...
입력:2022-11-16 03:10:01
[송태근 목사의 묵상 일침] 다양함 속에서 하나 됨을 이루는 교회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싶지 않은 성도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방법을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신약성경 에베소서 4장에서 바울은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이야기한다. 에베소 성도를 향해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걸으라)는 것으로 압축된다. ‘행하다’ ‘걷다’는 말은 라이프 스타일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성도들은 ‘죄와 허물’ 가운데서 걸어왔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걸어가도록 부르셨다. 그렇기에 바울은 성도 삶의 기준을 그 ‘부르심’에 두기...
입력:2022-11-16 03: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