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마트 패닉' 식탁까지 덮친 미친 인플레 소비자 물가 41년만에 최고 치솟아

대표적인 서민 마켓인 월마트에서 식품을 사는 주민들. <사진=연합>


"월마트에 올 때마다 패닉이죠"

지난 17일 찾은 버지니아주 비엔나의 월마트는 제법 북적였다. 장을 보러 온 이들은 몇 번이나 물건을 집었다 놓으면서 가격표를 유심히 살피는 모습이었다. 절반이 채 차지 않은 카트가 자주 눈에 띄었다.

6살 딸과 함께 마트에 온 40대 주부 케이티 맥커너 씨는 카트에 소고기, 우유, 계란, 주스, 요거트, 바나나, 햄, 치즈, 빵, 시리얼 등 10여종의 식품만 담았다.

"물건값이 그만 올랐으면 좋겠어요. 먹을 것을 사러 월마트에 올 때마다 패닉이 오는 것 같아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장을 보는데 몇 가지만 사도 200달러가 훌쩍 넘어간다고 했다.

같은 종류 식품 중 가격이 싼 자체브랜드(PB) 상품이 가장 인기가 있었다.

맥커너 씨는 통상 한 달에 평균 850달러 정도를 식료품을 사는 데 쓰는데 지난달에는 지출액이 900달러를 넘었다고 한다.

미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작년 같은 달보다 8.6% 급등(식료품은 11.9%), 1981년 12월 이래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 숫자가 맥커너 씨의 카트도 강타한 셈이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인한 이른바 '스티커 쇼크'(sticker shock·예상 밖으로 오른 가격으로 인한 충격)를 호소하는 미국인은 맥커너 씨만이 아니다.

갤럽에 따르면 4월 조사에서 미국인의 32%가 인플레이션과 생활비 문제가 가장 중요한 경제문제라고 답했다. 1년 전 조사에선 같은 대답이 8%였다.

식료품 가격이 오르면서 대형 마트보다 매장 규모는 작지만 물건값이 더 저렴한 슈퍼마켓 체인인 '알디'나 '리들'을 찾는 소비자도 느는 추세다.

특히 '의심스러울 정도로 싼 가격'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리들은 최근 1년새 50여곳에 매장을 개점해 '인플레 대목'을 맞았다.

버지니아 매클레인의 리들 매장에서 만난 60대 주부 브리엘 마티네즈 씨는 "지난번 구매했을 때 받은 식료품 30% 할인 쿠폰을 쓰려고 왔다"며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자주 온다"고 말했다.

이달 1일 문을 연 이 매장에서도 특히 싼 물건은 금세 동이 났다.

이날은 12개들이 계란 한 판 중 가장 싼 2.05달러짜리가 있었던 선반이 텅텅 비었지만, 14센트 싼 2.19달러나 3.07달러짜리는 재고가 남았다.

'미국판 다이소'로 불리는 달러트리나 달러제너럴도 고물가 시대에 손님이 늘었다.

이날 오후 찾은 비엔나의 달러트리 매장의 직원은 "1달러에 2장인 아버지의 날(19일) 카드가 많이 팔린다"라며 "다른 마트에선 4∼5달러는 줘야 1장을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달러트리도 물가 상승 압력을 이유로 지난해 말 대부분 제품의 가격을 1달러로 유지하는 정책을 포기하고 이를 1.25달러로 올렸다.

달러트리의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44% 증가해 더 싼 제품을 찾는 미국 소비자의 흐름을 증명했다.

'자동차의 나라' 미국답게 미국인은 휘발유 가격에 가장 민감하다. 미국의 휘발유 가격은 최근 사상 최고치다.

미국자동차협회(AAA)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날 평균 기름값은 갤런 당 5달러다. 1주일 전에는 4.986달러, 한 달 전은 4.523달러였고 1년 전에는 3.075달러였다.

버지니아주 폴스처치의 한 주유소에서 이날 만난 마이크 말리 씨는 "내일 기름값이 또 오를 것 같아서 가득 채웠다"고 말했다.

그가 도요타 캠리 승용차를 다 채우고 낸 돈은 80달러. 1년 전보다 30달러 정도 많아졌다.

코로나19 대확산이 시작한 2020년에는 갤런당 2달러 안팎이었던 터라 가격 격차가 더 크게 느껴진다고 했다.

연일 기름값이 오르면서 조금이라도 싼 주유소를 찾거나 멤버십 할인, 포인트 사용이 가능한 곳을 찾는 미국인도 이전보다 느는 분위기다.

폴스처치에 사는 60대 주부 바버라 요더 씨는 "슈퍼마켓 포인트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한선이 50달러 정도라서 매번 그 정도만 주유한다"며 "하이브리드 차가 있는 옆집은 3주에 한 번 정도만 주유하면 된다고 해 부럽다"고 말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40대 주부 켈리 리 씨는 "도어대시(배달 앱)로 중국 음식을 먹으려다 가격이 비싸 포기하고 식사를 차렸다"면서 "지난해엔 40달러면 됐는데 지금은 음식값만 50∼60달러다. 여기에 팁과 배달료까지 더하면 너무 비싸다"고 불평했다.

이처럼 극심한 인플레이션은 조 바이든 정부를 향한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일자 ABC방송 여론조사에서는 28%만 바이든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대응을 잘하고 있다고 답했다. 민주당 지지자조차 56%만 정부의 인플레이션 대응을 지지할 정도로 민심이 악화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매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인플레이션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이에 대응하는 입법에 공화당이 협조하지 않는다고 책임을 돌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에는 원유가보다 휘발유가 너무 올랐다면서 정유업체의 과도한 이익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조사기관마다 40% 안팎에 그치며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그의 속이 타들어 갈 만하다.

폴스처치에 사는 퇴직 공무원 피터 라우덴부시 씨는 "인플레이션은 전 세계적인 현상인데 대통령 책임으로 돌아가서 특히 상원 선거가 걱정"이라며 "'더 나은 미국 재건 법안'을 공화당 반대로 통과시키기 어렵다면 법안 항목을 쪼개서라도 입법하는 등 뭐라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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