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 삶 보듬기] 사회적 영성개발의 필요성을 기대하며

우리는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정치로부터 초연할 수 없는 시절을 보내고 있다. 미국의 대선은 끝났지만, 아직도 그 후유증과 사회적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조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대통령의 3차에 걸친 대국민 담화문이 발표되었고, 사과의 표명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과 정파는 아직도 하야와 탄핵의 요구를 철회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신자로서 이러한 상황에 대한 어떠한 묵상을 할 수 있을까? 대통령의 심사숙고를 통한 결단과 정치권에서 주도하고 있는 정치과정은 간단없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는 가장 슬기로운 해법이 나오도록 정치가들과 국가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더욱이 교회는 조국의 상황에 대한 단편적인 사회적 비평으로 넘어가지 않고, 이 시기를 교회의 장기적인 사회적 조망을 형성하는 중대한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신자의 사회적 책임을 영성이라는 차원에서 조망한 리처드 포스터(Richard Foster)는 우리에게 중대한 통찰력을 준다. 그는 ‘생명의 강’이라는 저술을 통하여 성령충만함을 경험한 성도들이 사회적 영성을 가질 수 있음을 논의하였다.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생수의 강줄기가 낳은 영성의 유형을 여섯 가지, 즉 묵상, 성결, 카리스마, 복음전도, 사회정의, 성육신으로 구분하는데, 이 중에서 사회정의의 전통이나 성육신 전통 등은 사회적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영성(social spirituality)을 담지하고 있다. 포스터에 의하면, 건전한 사회의식을 가지는 것이나 사회비평과 사회봉사 및 사회활동은 기독교역사와 분리된 것이 아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다분히 이러한 사회적 영성을 포함하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도 중세의 위계질서에 기반을 둔 세계관(worldview)을 버리고 하나님 앞
에 평등한 새로운 사회적 관점을 제공한 것이다. 그는 중세의 공고한 기독교 왕국과 그 결과로 생긴 억압적인 사회체제에 의문을 가졌다. 그들은 사회악에 대하여 ‘회피적’(avertive)이지 않고 ‘개혁적’(reformative)이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개혁적인 신앙인들은 사회적 환경(social milieu)을 바꾸려는 ‘새로운 사회 형성적인 개혁자’(social-formative reformer)가 되었다.

캘빈주의자, 청교도들은 이러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사람들의 전형이자 선구자들이었다. 스위스에서 프랑스 이민이 섞인 교회를 목회하던 캘빈은 종교개혁자 쯔빙글리의 전통을 이어받아 종교개혁을 사회개혁과 연결시켜 제네바시를 개혁하였다. 그곳에 세워진 제네바 대학교는 종교개혁자들을 길러내는 모판이 되었으며, 캘빈의 정신적 후손들은 개신교 신앙의 유지는 물론이고 중세의 공고한 사회를 개혁하려는 열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더 나아가 그들은 현대 민주주의의 사상적 기반을 이루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이 영국 케임브릿지의 사상가 쿠엔틴 스키너(Quentin Skinner)의 지적이다.더우기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사상가 마이클 월저(Michael Walzer)는 캘빈주의의 영국적 후예인 청교도들은 사회 개혁적이고 심지어는 혁명적인 사람들이었다고 평가한다. 월저에 의하면, 청교도를 비롯한 캘빈주의자들은 자신의 신앙이 종교적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소명과 비전은 온 세상을 포괄하여야 한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개신교의 역사에서 사회적 경건과 사회적 영성은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현재의 미국과 조국에 대한 묵상과 기도와 참여는 그 이념적 스펙트럼이 어떠하든지 일과성으로 지나가서는 아니 된다. 하나님의 왕 되심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통치의 영역에서 사회와 정치를 배제시킬 수 없다. 교회의 내부적 개혁과 함께, 사회적 영성이라는 위대한 개신교적 전통은 죽은 전통이 아니라 살아있는 전통이 되어 장기적인 사회적 공헌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민종기 목사 (충현선교교회 담임)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