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 삶 보듬기] 이민자의 삶은 순례자의 삶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말씀하셨다. 주머니에 금도 은도 여행가방도 여벌 옷이나 신발 그리고 지팡이도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세상을 향해 떠나는 제자들의 정체성은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오히려 ‘무엇을 가지지 않았느냐’에 있었다.

TV광고에선 연일 내가 무언가를 사고 소유해야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소비주의에 빠진 세상은 내가 가진 것이 곧 내가 누구인지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거기에 반대하셨다. 오늘날 크리스천이 애써 간과하는 가르침이다.

영국에서 몇 년간 지냈던 시기가 있었다. 영국에서 살다 왔다고 하니까 사람들은 내가 뭔가 격식이 있고 고상한 삶을 살다 온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의 삶이었다. 그 시기는 한국이 IMF위기로 환율이 가장 높았을 때이고, 학생이었던 나의 삶은 고상하기는 커녕 가난하고 소박하다 못해 초라했다. 생활을 위해 식당에서 웨이터로도 일했고, 밭에서 콩을 따거나 파를 묶는 등 노동일도 하고, 꽤 오랫동안 청소부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간동안 나는 ‘내가 왜 이런 힘든 일을 해야하나?’ ‘하는 일이 왜 이렇게 고상하지 못하나?’라는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스스로 나의 정체성을 노동자나 청소부가 아닌 학생이었고, 내게 있어 힘든 일은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하는 ‘거룩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는 내가 계속 살 곳이 아니다’라는 생각은 나의 형편과 마음을 더 가볍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러니 내가 했던 일들이 나를 규정할 수 없었고, 일하는 의미도 단지 먹고 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힘든 시간도 언젠가 끝날 것이기에 그 종말론적인(?) 생각은 현재의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새 힘을 주었다. 물론 내가 경험한 것은 이민생활이라기 보다 유학생활이었고, 상대적으로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민자들의 한숨과 깊은 고뇌에 대해 나는 아직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그 짧은 경험을 토대로 감히 이민자의 삶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순례자의삶’이 아닐까 싶다. 궁극적으로 이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님을 알기에 현재의 모습과 상황에 다른 정체성과 보다 자유롭고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언젠가 떠날 것을 알기에 오늘 내 자신을 비하하지도 않고, 또 내 짐을 너무 무겁게 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가지려 하기보다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을 생각하게 된다.

이민자의 삶의 자리가 결코 높은 곳은 아니다. 사회의 중심에서 살다가 어느덧 주변인이 된 것 같고, 소수자가 된 느낌이 늘 유쾌하지만은 않다. 내 품의 자녀들도 이방인이 되어가는 것 같고, 사건 사고가 많은 삶에 치이다 보니 관계도 쉽지 않다. 게다가 잠시라도 직업을 잃거나, 잘됐던 사업마저 휘청하고 나면 그나마 있던 자존심마저 바닥을 친다.

하지만 눈을 좀 더 크게 뜨고 순례자로서 오늘을 보면 내 삶의 실체를 보다 선명하고 정확하게 볼 수 있다. 이곳이 정착지가 아니요 언젠가 떠날 것을 알기에, 인생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오늘 무엇을 위해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다. 그럴 때 오늘의 상황과 어려움은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고, 그 가운데 나의 정체성이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가지지 않았느냐’에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더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게 된다. 나아가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고 살지 않으려 했던 자기 자신을 추스리며 다시 삶의 방향을 설정한다


권혁빈 목사 (얼바인온누리교회 담임)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