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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칸타타] 당신은 어떤 글자로 주님과 만나나요


구미정 교수가 서울 동작구 숭실대학교 내 카페에서 실천적 사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약자와 연대하고 환대하는 실천적 사랑이 요즘 관심사”라고 말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구미정(50) 숭실대 기독교학과 초빙교수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다양한 글쓰기로 대중과 소통하는 기독교인 문학자이기도 하다. 진지하고 경직된 신학풍토에서 재미있게 풀어쓴 그의 신학 이야기는 경쾌하다. 구 교수는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기독교윤리학을 전공했다. 에코페미니즘을 바탕으로 신학과 윤리를 재구성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서울 상도동 숭실대 교정에서 만난 그는 에코페미니즘이란 생명과 생명이 조화롭게 사는 세상을 추구하는 ‘생태여성주의’라고 설명했다. 그가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는 여성의 권리옹호가 아니라 자연이 공생하듯, 하나님의 창조섭리대로 남녀가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에코페미니즘 신학자로 불리기보다 ‘21세기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기독교인문학자’로 불려지길 원한다.
 
‘신학은 동사다’
 
구 교수는 ‘신학은 동사’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명사 속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라 우리 삶에 함께 하시며 어떤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중문화 속에서도 기독인들이 주파수를 맞추고 어떻게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한다면 대중문화는 단순히 소비되는 게 아니라 신학놀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여성과 자연, 생명과 평화를 키워드로 삼고 글을 쓴다. 2007년 ‘한글자로 신학하기’를 출간한 후 2013년 ‘두글자로 신학하기’를 출간하면서 신학을 대중들과 쉽게 소통하고 있다. 2014년엔 문화학술계간지 ‘이제 여기 그 너머’(gneomer.blog.me)를 창간해 학생들과 문화담론을 이끌어가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분노사회, 시리아 난민사태 등 다양한 이슈를 다뤘다.
 
‘한글자로 신학하기’는 우리를 하나님과 만나도록 이어주는 한글자 단어에 숨어있는 신학적 상념들을 풀어낸 것이다. 정, 통, 줄, 달, 물, 몸, 길, 살, 색, 문, 신, 공 등으로 사람과 사람사이 칸막이를 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 수 있는 자원을 이야기한다.
 
“색의 신학은 무색무취의 현대인들에게, 규격화된 스펙으로 상품이 된 현대인들에게 자신만의 색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신의 신학’은 정체성을 찾으라는 것이죠. 내 신발이 닿는 모든 곳에서 나는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있는가를 돌아보며 자신의 길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두 글자로 신학하기’는 우리 삶의 기본 바탕을 이루는 두 글자 단어로 세상에서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활동과 그 뜻을 인문학적 관점으로 풀어냈다. 놀이, 희망, 용서, 가족, 생명, 잉여, 공감, 불안, 질투, 저항, 환대, 바보 등의 단어에 담긴 신학적 의미를 탐구하다보면 세상에 자신의 뜻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
 
“공감 저항 환대 생명 등은 젊은 세대가 체득했으면 하는 단어들입니다. 특히 인간성의 최고 보루는 공감입니다. 함께 즐거워하고 슬퍼하는 공감 능력을 잃어버리면 인간은 기계가 됩니다. 자동차가 주행 중 끼어들 때 손을 흔들면 대부분 끼워줍니다. 생명의 위력입니다. 기계와 기계가 만나면 폭력적이 되지만 생명과 생명이 만나면 화해가 이루어집니다. 이런 마음의 틈새를 찾아야 합니다.”
 
요즘 그는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고 부의 불균형 속에 길을 잃어버린 청년들에게 환대와 연대로서의 사랑을 이야기 한다. “IMF 이후 청년들은 무모해질 수가 없어요. 무모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을 알아버렸어요. 고시원과 피시방 편의점을 전전하고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마련해요.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 학생이 고기를 썰다 너무 졸려 자기 손가락을 자를 뻔했다고 이야기를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이렇게 처절하게 살아요. 그러나 저는 돈의 위력을 너무 잘 아는 그들에게 돈이 전부가 아니란 단순한 이야기를 해줍니다.”
 
우리 시대의 청년들에게
 
그는 우리 시대 청년들에게 분석은 치열하게 하되 삶의 명랑성을 잃지 않길 당부한다. 그럴 수 있는 게 바로 놀이정신이고 그 기본이 사랑이라고 말했다. “이집트제국에서 히브리 민족을 향한 강제노역이 점점 거세져도 이들의 자손이 더 강성했던 것은 이들의 사랑이 강했다는 것 아니겠어요. 공포정치를 이길 수 있는 게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순수해지려면 물질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는 성경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선한 이유는 무조건 도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마리아인 자신도 천대받는 민족이었지만 약자와 연대하고 환대했습니다. 이런 실천적 사랑이 개인과 개인, 공동체, 민족, 인종 사이에 확산될 때 인류의 공멸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의 요즘 관심사는 사랑이다. “인간이 이기심과 탐욕 없이 얼마만큼 타자를 환대하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인가. 이주민과 탈북민들에게 아무런 바람 없이 얼마만큼 사랑하고 환대할 수 있을까. 이런 사랑이 요즘 제 삶과 학문에 주요 관심사입니다.”
 
구 교수는 최근 백혈병 소아암 환자에게 모발을 기증하기 위해 어깨 아래로 30㎝이상 길렀던 머리를 싹뚝 잘랐다. 삶 속에서 행동하는 신학자를 보며 신학은 동사가 맞는 듯했다.
 
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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