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유형진] 호두 투병기(1)

26개월 된 토이푸들을 키우고 있다. 개의 이름은 호두다. 털빛이 호두색이고 동글동글 호두처럼 귀여운 아이다. 99%의 대한민국 강아지들이 그렇듯, ‘강아지공장’ 출신이다. 호두를 키우게 된 사연은 너무 길어 생략한다. 잘 놀던 호두가 얼마 전부터 놀지도 않고, 방석에만 앉아 있는데 다리를 부들부들 떨고, 아랫배는 돌처럼 딱딱했다. 혹시 감기에 걸린 걸까? 배탈이 났나? 사료 사러갔다가 사은품으로 받은 훈제오리물렁뼈를 간식으로 준 것이 잘못됐나? 모르는 사이 양파껍질이나 초콜릿 조각이라도 먹었나? ‘호두야∼’ 이름을 부르면 덜덜 떨며, 비척비척 다가온다. 작은 개에게 잘 온다는 슬개골 탈구가 아닐까?
 
아무리 아파도 말은 않고 앓기만 하는 호두. 아무리 되짚어 봐도 왜 그런지 알 수 없고, 호두는 점점 다리 떠는 강도가 심해져 갔다. 나는 작은 담요에 호두를 안고 주머니 가방에 넣어 택시를 불렀다. 빈 택시들은 내 앞에 섰다가도 그냥 갔다. 간신히 개를 안고 있는 여자를 거부하지 않는 택시를 만날 수 있었다. 동물병원 의사는 슬개골 탈구는 아니라고 했다. 의사는 등뼈를 하나하나 만져 보더니 우리 호두가 가장 아파하는 부위를 찾았다. 개들은 웬만한 통증들은 잘 견디는데, 뱃가죽 근육이 경직되고 다리가 떨릴 정도면 진짜 심하게 아픈 거라며. 의사는 뜻밖에도 척추 디스크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정확한 것은 MRI를 찍어보아야 하지만, 문진 결과 그럴 것이라고 진단했다. 네 발 달린 짐승에게 디스크라니? 의사의 말은, 아파트 생활을 많이 하는 개들에게만 있는 질병이라 했다. 미끄러운 마루를 달리거나, 식탁과 소파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려고 뒷발만 들고 서 있거나, 울타리를 넘으려 점프하는 행동이 개들에게 허리디스크 질병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눈물이 핑 돌고 갑자기 너무 혼란스러워졌다. 너를 아프게 하려고 키운 건 아닌데, 너는 아직 어린데,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긴데 벌써 이렇게 아프면 호두야, 우리 이제 어떡하니? 
 
유형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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