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원응두 (6) 뒤늦게 현역 입대했지만 몸 약해 1년 넘게 병원 신세

원응두 원로장로가 입대 당시 중문교회 청년들과 촬영한 송별 사진. 뒷줄 왼쪽 네 번째가 원 장로.


1956년 6월 6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첫 현충기념일(현충일)에 국민의 3대 의무인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를 결심한 날이기 때문이다.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징집통지서를 받았지만 입대를 결정했다.

화순항에서 대형 선박을 타고 목포로 향했다. 목포에서 화물열차를 타고 논산 훈련소에 도착했다. 곧바로 신체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폐디스토마’라는 질병으로 불합격 판정을 받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2년 뒤 재소집을 받았다. 제주읍에서 1000명 정도의 장병들과 함께 또다시 징집되었다. 논산훈련소에서 입대해 교육을 받았다. 병참 병과를 얻어 전방 부대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그해 여름은 전국이 물난리로 처참했다. 사라호 태풍으로 제주 역시 큰 피해를 입었다.

나는 후방 부대로 옮겼다. 그러나 전방 지역에 보병 수가 적어 얼마 후 전방 부대로 차출되었다. 경기도 전곡이었다. 그곳에서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 막사를 짓고 소대별로 생활을 했다. 훈련도 하고 사역도 하면서 군 생활을 해 나갔다. 나는 병사 중 나이가 많아서 걱정을 많이 했지만, 다행히 나보다 어린 병사들의 배려로 군 생활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몸이 약해서 심한 훈련을 받을 때는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기도 했다. 때때로 피를 토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때마다 연대 의무실에서 약 처방을 받았다. 그러나 효과가 없어 의정부 야전병원으로 후송돼 2주간 치료를 받았다. 이후 큰 병원으로 이송돼 10개월간 병원 신세를 졌다.

병원에는 독서실이 있어서 많은 책을 읽었고 성경도 수십 번 완독했다. 병원에는 전도사님이 계셔서 주일에는 함께 시내 교회로 나가 예배를 드리고 일반 음식(사식)도 먹고 시내 구경도 했다.

그때 마침 담당 간호장교가 기독교인이어서 간호를 잘 해주었다. 간호장교는 강원도 출신이었고 동료 중엔 제주 출신 간호장교도 있었다. 특히 약조 과장이 고향 제주 중문 출신이었다. 정말 반가웠다. 그래서 병원 생활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1년 이상 병원 생활을 하다 보니 진급도 안 되고 휴가도 때를 놓쳐 못 가게 되었다. 병이 어느 정도 치료가 되어 다시 원래의 전방 부대로 복귀했다. 복귀하고 보니 동료들은 병장 계급을 달고 있었고 후임들도 상병 계급을 달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이등병 계급을 달고 있었다.

하지만 후배들은 ‘선배님’이라 하며 존중해주었고 동기들도 ‘원 병장’이라 불러줬다. 입대 후 2년 만에 특명을 받아 휴가를 받았다. 휴가 복귀 후 전방 OP(관측소)에 파견 근무를 받아 몇 개월 동안 혼자 근무를 했다. OP에 근무할 때도 성경을 계속 읽었다. 부대에서는 내가 병원 생활을 오래 했기에 제대가 늦어진다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전역 명령을 받았고 28개월 만에 만기 제대를 했다. 그때 하나님은 어떤 환경에서도 지키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정리=윤중식 종교기획위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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