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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휴일] 열매의 모국



오렌지가 창가로 굴러온다
그림자가 따라붙는다

손을 뻗으면 오렌지의 그림자는 내 그림자와 겹친다
두 개의 그림자는 높낮이가 없고
우리는 평평한 슬픔을 공유한다

빛이 닿은 혀끝에 보풀이 일어나고
내 몸 아닌 것들이 간지러운 세계

슬픔의 깊이를 믿는 연인이
오렌지 나무 아래에서 헤어진다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한 명은 머리 위로 한 명은 발아래로 어긋나는 주말
말 없는 서로의 정수리가 두근거린다

그림자가 묽어질수록 두 귀는 단단해진다
내 목소리만 크게 들렸다

쏟아진 그림자가
네 발밑에서 멎은 줄도 몰랐다

나는 나에게서 도망할 수 없어서
기다림의 시간은 길고

천국은 내내 비수기였다

-전수오 시집 ‘빛의 체인’ 중

그림자를 통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연인과 헤어지는데, 내 그림자가 네 발밑으로 쏟아져 멎어 있다. 나는 나에게서 도망할 수 없다. 그림자가 따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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