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성권 (1) 인생 실패의 경험 통해 하나님 만난 것이 가장 큰 축복

어린 시절의 최성권(왼쪽 두번째) 선교사가 가족과 함께 야외에서 단란한 한 때를 보내고 있다.


교육자의 가정은 가난을 면하기 어렵다. 아버지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면 온 가족은 보따리를 싸야 했다. 나 역시 아버지를 따라 이사 가는 게 일상이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어렵게 살았지만 그래도 미션스쿨에 다녔던 건 축복이었다. 안과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안경학과를 전공했고, 전공과 상관없는 일을 두루 섭렵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한 가지 연구에만 몰두했다. 국내선 비행기도 탈 기회가 없던 나였지만, 실패를 거듭하는 역경 속에서 다시 일어나 오대양 육대주를 휘젓고 다니는 기업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은 국내는 물론 일본 미국 등 해외에서 생산라인을 구축한 경영자이면서 비즈니스 선교사로 바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열흘씩 격리를 해야 했던 코로나19 비상시국 때도 한 달에 한 번씩 미국을 오갔다.

지난 5월 국민일보 미션어워드 시상식에서 수상한 뒤 국민일보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할 때였다. 감사 인사를 하면서 나는 왈칵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오늘의 일들이 믿기지 않은 듯 지난날 역경의 순간들을 회상하며 감격이 북 받쳐 올랐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인생 실패의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 가장 큰 복이 하나님을 만난 것이라 생각하고 이를 자랑으로 여긴다.

미국에 간 지 2년을 조금 넘긴 현재, 언어 소통의 어려움을 많이 극복했다.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영어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저변에 깔린 믿음의 담력 때문이라 생각된다. 오래 전부터 사업차 남아메리카의 브라질과 멕시코를 드나들면서 남미 문화에 익숙했고 그 덕에 히스패닉 사람들과 농담도 주고받을 정도다. 기도하고 땀 흘린 만큼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일분일초를 허비하지 않는 성실함을 무기 삼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기를 즐긴다.

‘역경의 열매’를 통해 내 삶을 드러낸다는 게 두렵기도 하다. 아직 제대로 성공한 기업가로 우뚝 선 것도 아니고 여전히 내일을 향해 달려가는 현재 진행형 기업가일 뿐이다. 그러나 새로운 일 앞에 두려움이 앞서는 젊은이들에게 진솔하게 전하고 싶은 나의 삶과 신앙 이야기가 있다. 아직 인생의 절반도 살지 않은 풋내기 기업가지만 젊은이들에게 도전 정신을 심어 줄 수 있다.

1968년도 당시 나의 외할아버지는 경상남도 거창군에 있는 고제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대만 가겠다며 고집하는 자신의 딸을 끔찍이 아끼셨다. 나의 어머니시다. 교육자 집안에서 오르간을 칠 줄 아는 딸에게 외할아버지는 오르간 교본 한 권을 갖다주며 연습해 보라 하시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한 주가 지난 어느 날 연습하는 딸에게 “1학년 아이들 한 번 가르쳐 볼래”라고 하셨단다. 당시는 교장이 추천하고 임명하면 초등학교 강단에 설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로 임명돼 선생님의 길을 걷게 됐다. 그러니까 결혼도 안 한 어린 여성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사회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약력=1970년 경상남도 거창 출생. 김천대 안경학과 졸업, 이엔포스 대표, 서울 새행로교회 파송 BM 선교사.

정리=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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