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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갑작스런 안면마비, 찬바람 탓?… 90%가 귀 질환과 연관

게티이미지뱅크



 
“찬바닥에서 자다가 입 돌아갔다” 잘못된 상식에 치료시기 놓치기도
구안와사, 발병 전 귀통증 호소 많아… 안면마비땐 이비인후과서 감별 필요

갑자기 얼굴 한 쪽이 얼얼하고 마비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면? 요즘 같은 추운 날씨에는 찬바람을 많이 쐐서 혹은 차가운 바닥에 잠을 자서 생긴 현상이려니 하고 가볍게 넘어갈 수 있다. 심각하게는 뇌졸중이 아닌지 걱정하며 신경과를 찾거나 한방치료를 받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안면마비의 상당수가 귀의 문제가 원인일 수 있는데, 흔히 간과된다는 점이다.

지난 4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 안면신경 심포지엄에선 “대다수 한국인들은 안면마비에 대해 매우 어긋난 상식을 갖고 있어 최신 의학수준에 걸맞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에는 매년 9만명 안팎의 안면마비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2014년 심평원 통계를 보면 안면마비의 67%는 헤르페스바이러스 감염 등에 의한 ‘벨마비(구안와사)’와 귀 주변 대상포진바이러스 활성이 원인인 ‘람세이헌트증후군’으로 발생했다. 이런 말초성 안면마비 질환은 바이러스가 신경에 잠복해 있다가 신체 면역이 떨어질 때 활성화돼 증상을 드러낸다. 13%가량은 귀 주변을 포함한 머리 외상, 약 10%는 귀나 침샘의 종양 및 염증에 의해 생겼다. 나머지 10%는 뇌졸중·뇌종양 등 중추성 원인에 의한 마비였다.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조양선 교수는 12일 “안면마비 발병 부위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90% 안팎이 귀 안이나 귀 주변 질환과 연관돼 있다. 막연히 생각해 왔던 찬바람이나 뇌졸중이 주된 원인이 아니다”면서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 우선 귀와 관련된 이비인후과를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얼굴이 미세한 표정까지 지을 수 있는 것은 43개의 근육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안면근육은 뇌의 7번째 신경에 의해 움직이는데, 양측 두개골을 빠져나온 안면신경이 여러 원인에 의해 손상되면 마비 증상이 생긴다.

가장 흔한 벨마비 등 말초성 안면마비의 경우 발병 전부터 귀 주변 통증이 나타나는 사례가 많고 귀의 수포(물집)나 이명, 현기증 등을 일으켜 이비인후과 진료가 필요하다. 귀 안에 위치한 안면신경의 부종과 염증이 생겨 일어나는 벨마비의 경우 처음 발병 시 정상 회복을 위해 2~3일 안에 고농도 스테로이드 복용이 매우 중요하다. 이종대 순천향대 부천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조기 스테로이드 처방이 중요한 것은 신경손상 후 생기는 ‘왈러 변성’ 현상 때문”이라며 “비교적 심한 안면마비 환자에게 발생하는데, 안면마비가 생기고 2~3일부터 시작해 2~3주까지 비가역적인 안면신경의 변성이 진행되고 결국 영구 안면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경우에 따라 항바이러스제 투여, 안면신경 감압술 등 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

만성 중이염이나 청신경 종양, 안면신경 교종, 침샘 종양 등 귀 안이나 주변부에 숨어있는 질환들은 평소 특별한 증상이 없다가 갑자기 혹은 서서히 안면마비를 일으키기 때문에 벨마비로 오인돼 부적절한 치료를 받는 경우도 흔하다. 이 교수는 “이처럼 안면마비가 생기면 귀와 관련된 질병에 대한 감별 진단이 중요하므로 대부분 나라에서 처음 이비인후과 방문을 권고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안면마비 치료를 위해선 성형외과와 신경외과, 재활의학과, 안과 등과의 협진이 필수적인데, 이들 진료과 중 어디를 찾아야 할지 교통정리를 해주는 곳이 이비인후과일 수 있다. 경희대병원 이비인후과 여승근 교수는 “이비인후과에서 진료받은 후 눈을 감지 못하는 후유증이 생기면 안과, 안면재건 수술이 필요하면 성형외과, 재활이 필요하면 재활의학과로 의뢰하는 등 함께 환자를 관리해야 한다”며 “국내에는 이런 치료 체계화가 잘 이뤄지지 않은 게 한계”라고 지적했다.

연구에 의하면 전체 안면마비 환자의 29~33%에서 크고 작은 후유증이 남는 걸로 보고돼 있다. 후유증 완화와 재발 예방을 위해선 증상개선 후에도 꾸준한 재활치료가 이뤄져야 한다. 특히 여러 진료과가 힘을 합치는 다학제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2019년부터 여러 진료과 전문의들이 참여한 대한안면신경학회가 출범해 활동하고 있다. 학회는 최근 제1회 안면마비 재활워크숍을 갖고 안면마비 후유증 치료에 손을 이용한 도수치료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학회 전범조(가톨릭의대 교수) 학술이사는 “도수치료를 급성기에 일찍 시작한 환자군에서 11.6%의 안면구축 개선 효과가 있었으며 특히 눈과 입가가 같이 움직이고 조이는 ‘연합운동’에 많은 개선 효과가 있는 것으로 관찰됐다”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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