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숨을 고르며 안을 살피는 신앙



“당신의 이름이 잊히고/ 당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으며/ 당신의 법이 조롱받고/ 당신의 현존이 무시되는/ 이 소란스럽고 절망적인 세계에서/ 당신께 올리는 이 기도를 자비로이 들으소서. 우리가 당신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에게 평화가 없습니다/ 우리를 지배하려고 위협하는 무기들을/ 우리가 지배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토머스 머튼)

안을 살피는 사람들은 남이 문제가 아니라 늘 자신이 문제요 걸림이라고 말한다. 예수님도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나무라지 말고, 네 눈 속의 들보를 보라”(마 7:3) 하셨고, 다석 유영모 선생은 “웃으며 사람 죽인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사람은 이해타산으로 싸우기를 좋아하는데 싸움 대상은 자기지 남입니까? 자기를 이겨야지 남을 이기면 뭐합니까?” 하셨다.

다른 사람은 협력하고 연대하며 함께 살아야 할 이웃이지 싸움의 대상일 수 없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세상이기에 더욱 그렇다. 무슨 일을 하고, 어떤 길을 가든지 자신에게 묻고 자신과 씨름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자신에게 솔직하고 성실해지면 세상엔 아무 문제가 없다. 자신은 점점 발전하고 성숙해질 것이고, 사람들에겐 좋은 이웃이 될 뿐이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까칠하듯이, 삶에 대한 태도와 잣대가 자신을 향하지 않으면 고약한 사람이 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처럼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고 훼방하며 시비를 건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이유는 한가지여야 한다. 자신이 누군지 알고, 자신을 사랑하며 살기 위함이다. 내가 누군지 모르고 자신을 사랑할 수 없으면 행복도 평화도 어떤 성공도 없다. 대림절, 하나님은 수없이 찾아오시고 다가오시지만 번번이 도망가고 외면한다. 자신의 욕망과 요구만 외칠 뿐이지 그분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엇을 이루고 가졌든 늘 불안하고 불행한 이유다.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사람의 특징은 은혜다. 그래서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만족하려 한다. 자신의 존재가 어떤 가치와 의미가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괜한 시비를 걸거나 문제 삼지 않는다. 사람이나 이웃에 관심이 없거나 이기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내 삶의 성실과 진실함이 그들을 위한 큰 배려요 사랑임을 믿기 때문이다. 박노해 시인도 ‘우리는 모두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기 삶의 최고 기술자가 되어야 한다. 최고의 삶의 기술은 언제나 나쁜 것에서 좋은 것을 만들어내는 것, 복잡한 일을 단순하게 만들어내는 것’이라 했다.

하나님이 주신 귀한 생명과 삶의 에너지를 자신에게 집중하며 자신을 발전시켜 간다면, 우리는 더욱 성숙하며 진보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은 아름답고 평화로울 것이다. 안과 밖이 하나가 되고, 너와 내가 우리가 되는 세상이다.

지금은 많은 것이 지나쳐 있고 과도하다. 안으로 제 숨을 쉬어야 한다. 나를 향한 살피기와 비워냄이 절실한 때다. 경건과 절제는 물론 새로운 배치가 필요하다. 모든 갈등과 반목의 원인은 안으로 향하지 않고 밖을 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요 1:14) 사건은 우리의 신앙이 뜬구름 잡는 게 아님과 하나님의 은총이 결코 관념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대림절, 우리에게 진정 그리움이 있고 기다림이란 게 있는지 주님은 묻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정신없이 달려만 가는 우리에게 주님은 어디를 그리 바삐 가느냐 눈짓한다. 숨을 고르며 자신을 살피는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자신에게로 향하는 하늘의 은총을 따라 나의 시선이 안으로 향할 수 있다면 새 은혜는 언제든, 얼마든 가능할 것이다.

백영기 쌍샘자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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