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유이상 (2) 소풍 갔다 고무신 밑창 떨어져… 험한 산행에 발 ‘퉁퉁’

유이상 풍년그린텍 대표가 지난 14일 경기도 안산의 본사 사무실에서 유년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자신의 삶을 소개하고 있다. 안산=신석현 포토그래퍼


지금도 4월이 되면 전북 고창 도솔산의 선운사에서 동백꽃 축제가 열린다. 하지만 내게 선운사는 동백꽃이 아니라 ‘검정 고무신’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검정 고무신을 신고 그곳으로 원족(遠足)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그 시절엔 소풍을 원족이라 했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인솔해 산이나 들, 명승지를 찾아 줄지어 걸어갔다가 밥을 먹고 오는 행사였다.

한 번은 도산초등학교에서 12㎞나 떨어진 선운사로 1박 2일에 걸쳐 다녀오는, 조금 특별한 원족을 다녀오게 됐다. 선운사로 가는 길은 비포장 들길과 험한 산길을 3시간 넘게 걸어야 했다. 당시 내 발엔 검정 고무신이 신겨 있었다. 지금처럼 고무 품질이 좋지 않았던 때라 산길을 걷다 보니 밑창이 떨어져 나가 버렸다.

궁여지책으로 산에 있던 칡넝쿨을 고무신과 발에 꽁꽁 묶었다. 야속하게도 걸으면 걸을수록 칡넝쿨은 자꾸만 풀어졌고 수없이 다시 매기를 반복했지만 결국 내 발은 맨발이나 다름없는 꼴이 돼버렸다. 그해 소년 이상이의 기억엔 동백꽃이 없다. 그저 퉁퉁 부은 발과 해진 검정 고무신이 맴돌 뿐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내게 수학여행은 그림의 떡이었다. 96명의 졸업생 중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아이는 24명에 불과했다. 빠듯한 집안 형편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나는 부모님께 수학여행이 있다는 말씀을 드릴 수 없었다. 경비를 마련하자면 가계에 무리가 됐을 것이고 안 보내자니 자식에게 미안함이 컸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오셨다. 단체여행이라 어느 정도 인원이 필요했기 때문에 선생님이 가가호호 방문해 부모님을 설득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 수학여행 경비는 400원 정도였는데 선생님께서는 절반인 200원만 내도록 할 테니 수학여행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셨다.

“저는 수학여행 안 가요.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나는 선생님과 부모님 앞에서 똑 부러지게 말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친구들이 볼 서울역과 남대문, 동물원, 전차를 나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누나와 형, 동생들도 같은 상황이었다. 뻔히 보이는 집안 형편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친구들이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로 다녀온 수학여행. 내게는 그 여행이 빈 좌석으로 남아 있다.

모든 게 부족한 시절이다 보니 땔감도 늘 구하러 다녔다. 나무하러 가는 문수사 쪽은 집에서 10㎞ 이상 떨어져 있는 먼 곳이었다.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갈 때는 괜찮았는데, 나무를 잔뜩 지고 내려올 때는 지게 목발이 땅에 걸리곤 했다. 그럴 때면 나무가 얹어진 지게와 함께 구르기 일쑤였다.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가 감당하기엔 가혹한 노동 같지만 당시엔 그런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냈다.

어느 날 세 살 위 형과 함께 나무를 하러 갔다. 집에 오고 가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그날은 산에서 노숙을 하기로 했다. 도로 밑에 배수로가 있어서 양쪽을 막으니 나름 아늑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온종일 나무를 한 탓에 녹초가 되어 정신없이 잠에 들었다. 그런데 밤중에 비가 많이 와서 순식간에 배수로로 물이 흘러들어왔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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