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서정희 (35) 먼지 속 땀 흘리는 현장에서 또 다른 삶의 색을 배운다

방송인 서정희씨가 지난해 겨울 서울 종로구 단독주택 철거현장에서 인테리어 공사 일지를 정리하고 있다.


공사현장이 좋다. 나를 믿고 공사를 맡겨주는 사람들이 참 좋다. 먼지 속에서 땀 흘리고, 인테리어 공사를 하기 위해 샘솟는 생각들이 좋다.

공사에 대한 상상과 생각이 계획으로 바뀐다. 공사현장은 다시 사진이나 영화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눈을 감고 실물 그대로를 그린 완성 예상도인 ‘렌더링’(rendering)을 해본다. 그리고 공사현장에서 창의적으로 해보고 싶은 것들을 현실로 풀어낸다.

내 전문분야인 인테리어 공사를 하다 보면 뜻대로 안 될 때가 있다. 한숨이 나온다. 꼬인 것이 안 풀리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난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조용히 주님께 기도한다.

“주님 어떻게 할까요”라고 기도 중에 묻는다. 주님께 기도하면서 나를 믿고 맡긴 의뢰인의 입장을 생각한다. 그리고 공사현장을 자세히 살핀다. 그러면 꼬인 문제가 풀릴 때가 많다.

“너는 자세히 묻고 살펴보아서….”(신 13:14)

일본의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는 “뭔가를 이루고 싶다면 독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맞아. 독하게 마음먹어야 해.” 작은 것에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독한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경력이 많고 뛰어난 기능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장인(匠人)은 생활 속에서 단지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수년, 수십 년간 노력하고 손과 머리를 써서 하는 일들이다. 장인은 늘 고민하고 또 생각한다.

함께 일하는 공사현장의 각종 장인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페인트 장인, 목공 장인, 금속 장인 등. 그들은 한눈에도 공사 견적이 나온다. 견적에 따라 에나멜 유성 페인트를 쓸지, 수성 페인트로 써야 할지, 락커 반광으로 할지 무광으로 할지 잘 안다.

안티스타코(벽면 시공) 같은 경우 무늬 하나하나를 손으로 만드는데 장인이 따로 있다. 장인들은 석고 바르는 주걱(헤라)을 자유자재로 다룬다. 숙련된 손으로 원하는 무늬를 척척 표현한다.

나도 요즘 장인처럼 페인트칠을 한다. 빨간색과 초록색, 검은색 등 여러 가지 색을 섞어 젖고, 또 젖는다. 그리고 다시 칠하고 마를 때까지 기다리고, 그 색이 마른 뒤 나오는 색을 지켜본다. 다시 섞고 칠하고, 마를 때를 기다려 마침내 원하는 색을 만든다.

원하는 색을 섞어 큰 통을 만들고 ‘휴~’ 안도감으로 감사한다. 칠하다 묻은 페인트를 닦으면서 입가에 웃음이 가득하다.

지금 사는 나의 월셋집은 칠할 벽도 없다. 싼 벽지로 도배가 돼 있다. 주님이 허락하신다면 새로 집을 지을 것이다. 독한 마음으로 터득했던 기술을 맘껏 펼칠 집,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될 집, 내가 짓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지으시는 하나님이 집을 지어 주실 것이다. 지금은 남의 집을 건축하는 공사를 하고 있지만 말이다.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히 3:4)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신 8:12)

정리=유영대 종교기획위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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