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오은영 박사를 더 빛나게 하려면



대중문화 수업에선 학생들이 찾아온 ‘대중문화의 수작’을 놓고 토론한다. 각자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관점을 계발하는 게 목표인 이 수업에서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가끔 인물이 뽑히기도 하는데 지난 시간에는 오은영 박사가 선정됐다. ‘금쪽같은 내 새끼’ ‘금쪽상담소’ ‘OK! OK!’ ‘오은영 리포트: 결혼지옥’ 등 여러 콘텐츠에서 맹활약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 여기서 오 박사는 정신적·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연예인, 비연예인을 위해 상담을 제공한다.

학생들은 대중문화 속 오 박사가 수작인 이유로 첫째 대중의 마음을 잘 읽어낸다는 점, 둘째 다양한 인간 모습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는 점, 셋째 스스로를 성찰해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하게 한다는 점 등을 들었다. 대중문화를 통해 인간 이해를 도모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동기까지 생긴다면 수작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겠다. 더구나 학생들은 오 박사의 콘텐츠에서 위로를 얻는단다. 막막한 현실에서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급증하는 등 젊은 세대의 정신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팬데믹으로 이들의 미래는 더 불투명해졌다. 젊은이들의 정신적 고통을 경고하는 지표가 쌓여가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친숙한 대중문화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다니 참 다행스럽다.

오 박사의 콘텐츠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뛰어난 공감 능력과 통찰력의 소유자인지 매번 놀란다. 부드러움뿐 아니라 단호함과 카리스마까지 단연 독보적이다. 2010년대 중반까지 10여년간 한국 사회를 호령하던 ‘힐링’ 담론이 쇠퇴한 이후 심리와 정신건강에 대한 대중적 관심의 재부상을 보여준 대표 인물이다. 힐링 유행 당시와 비교할 때 전문성을 갖춘 인물이 이 흐름을 주도한다는 점이 반갑다. 힐링 시대의 어쭙잖은 위로와 공허한 토닥임에 지친 대중이 오 박사의 진가를 알아차린 것일 테다.

하지만 소위 ‘오은영 시대’는 그다지 달갑지 않다. 지상파와 종편, 유튜브까지 오 박사의 상담 콘텐츠가 차고 넘치는 시대 말이다. 또 이런 유행에 편승한 각종 아류가 대중문화 전반을 도배하는 ‘심리·정신건강의 전성시대’ 말이다. 인간의 고통에 대한 심리적·정신적 차원의 설명과 해법은 본래 개인적이고 미시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차원의 아픔을 공감하고 실천 가능한 솔루션까지 제공하는 일은 무척 귀하다. 그러나 이런 접근만으로는 우리 삶을 둘러싼 사회, 경제, 법, 제도 등 고통의 더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원인과 해법은 간과되거나 아예 은폐될 수 있어 위험하다.

사실 개인의 기질과 경험, 트라우마로 문제를 설명하고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 자체가 미디어 친화적이다. 개인적 결단과 의지를 중심으로 비포(before)와 애프터(after)의 변화가 명확히 전시되기 때문이다. 반면 미디어에서 개인의 고통을 경제적 여건과 계층, 차별과 착취 등 사회적·거시적 차원으로 설명하고 그 해법을 찾아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설령 찾았다 해도 그 해법은 쉽게 손에 쥐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대중적이지 않다. 고구마 수십 개 먹은 갑갑함만을 남기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미디어에서 거시적 차원의 이야기가 완전히 사라진다면 그 결과는 참담할 것이다. 오 박사에게 위로를 얻는 젊은 세대만 해도, 그들 정신건강 위협의 근본 원인을 개인적·심리적 차원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과도한 경쟁과 안전망 부족 등 사회적 차원의 난제들이 그들 목을 옥죄고 있음을 외면해서는 적실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도 없다. 결국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이야기도 놓치지 않는 미디어 환경이 갖춰질 때 지금 오 박사가 훌륭히 담당하고 있는 몫 역시 더 빛날 것이다.

박진규(서울여대 교수·언론영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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