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빵왕 김탁구’는 2010년 방영된 KBS 드라마로 최종회는 시청률 50%를 넘길 만큼 인기를 끌었다. 대기업 회장의 혼외자로 태어난 주인공이 미각과 후각, 심지어 한쪽 눈의 각막까지 잃으면서도 제빵사로 인정 받고 행복을 찾아간다는 이야기였다. 다소 뻔한 스토리였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특히 극중에서 색다른 빵 만들기 시합이 벌어지고 제빵 과정이 생생하게 다뤄지면서 드라마를 보고 난 뒤 빵 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빵업계 매출도 껑충 뛰었다. 드라마 특수를 가장 톡톡히 누린 건 제빵업계 1위 기업인 SPC그룹이었다. 드라마에서 재연할 제빵의 레시피를 제공한 SPC는 협찬사 지위를 활용해 극중 주인공이 만든 ‘배부른 보리밥빵’ 등을 종영되기도 전에 실제 출시해 재미를 봤다. 드라마는 SPC그룹 허영인 회장의 성공기를 모티브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빵사 자격증을 가진 허 회장은 신제품의 식감과 반죽 상태를 놓고 연구원들과 토론할 만큼 제빵에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다. 그는 삼립식품 창업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대부분 재산을 물려받은 형과 달리 경기 성남의 작은 빵 공장 하나 갖고 사업을 시작한 지 40년 만인 지난해 매출 7조원을 돌파하는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 우뚝 섰다.

제빵왕 김탁구는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를 담은 착한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았다. 드라마 때문에 SPC그룹도 착한 기업이 아닐까 생각했다면 오해인 것 같다. 지난 15일 20대 여성 근로자가 무거운 소스통을 들다가 배합기에 딸려 들어가 숨진 사고가 발생한 평택 SPL 제빵공장이 SPC 계열이다. 이 공장은 배합기 회전축에 덮개를 설치하지 않은 채 기계를 가동시켜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의무를 소홀히 했다. 1주일 전에도 손 끼임 사고가 발생했지만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소스통을 힘들이지 않게 옮길 수 있도록 설비를 갖춰달라는 근로자들의 요구도 무시했다. 고용노동부와 경찰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을 수도 있다.

전석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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