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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근 목사의 묵상 일침] 넘치도록 능히 하시는 하나님



신약성경 에베소서 3장에는 바울의 기도가 등장한다. 바울은 독특하게 ‘무릎을 꿇는다’는 표현으로 자신의 기도를 시작한다. 우리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에 익숙하지만 사실 유대인의 일반적인 기도 자세는 일어서는 것이다. 무릎을 꿇는 것은 경배와 복종을 나타내는 행위다. 지금 바울이 무릎을 꿇고 있는 대상은 모든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이다.

아담의 경우에서 보듯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창조와 관련돼 있으며 권위와 다스림을 나타낸다. 즉 바울은 성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족속을 존재케 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다스리시는 진정한 아버지이심을 강조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힘입어 살며 움직이고 존재한다.

누구를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느냐는 신앙의 기초이자 본질이다. 요즘 사주와 점을 봐주는 업체와 유튜버들에게 많은 사람이 몰린다고 한다. 이 모든 현상은 미래에 대한 불안에 기인한다. 우리가 무릎 꿇어야 할 대상은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뿐이다.

이 기도에서 바울은 크게 세 가지를 간구한다. 가장 먼저 간구하는 제목은 속사람의 강건함이다. 겉사람이 물리적인 몸을 가리킨다면 속사람은 내면과 관련돼 우리 존재를 형성하고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속사람은 다른 수단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강해질 수 있다. 성령은 죽음 속에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부활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바울의 두 번째 간구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지식에 넘치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 사랑의 너비와 길이, 높이, 깊이는 사실상 헤아릴 수 없으며 또한 지식을 넘어 경험으로 깨닫게 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도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써 우리를 향한 사랑을 확증하셨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와 함께’ 그 사랑을 알게 해달라는 바울의 기도는 매우 중요하다. 사랑은 홀로 알아가고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와 함께 교회 공동체 안에서 경험하고 배워가는 것이다. 교회는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가시적으로 경험되는 곳이다.

이는 자연스레 세 번째 간구로 연결된다. 그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충만에 이르기까지’ 충만해져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바울의 기도 안에서 강조되는 바는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 사랑은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의 자리까지 이끄신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경륜은 삼위 하나님 안에 있는 그 사랑을 모든 만물에까지 확장하고 충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충만한 사랑에까지 자라가면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이 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에 그 사랑을 부으셔서 온 세상에 흘러넘치게 하신다.

바울은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을 기도하고 있는가. 이토록 연약하고 부족한 지상의 교회가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충만에까지 이를 수 있겠는가. 그러나 바울은 확신한다.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시며 우리 가운데서 일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다. 성도의 성숙과 교회의 성장은 우리의 능력에 달려있지 않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있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의 모습은 아직 연약할지라도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그분은 우리의 간구와 생각보다도 더 넘치도록, 우리의 헤아림을 넘어서 일하시는 분이다. 심지어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에도 다시금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앞에 무릎 꿇을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여기에 있다.

(삼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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