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정치인 전쟁관, 궁금해 묻는다



최근 정치권에서 말로 인한 정쟁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실언, 폭언, 망언 등 갈수록 태산이다. 급기야 역사 논쟁까지 번졌다. 정치인이 국정을 도모하는 동시에 정권 투쟁도 해야 하니, 정치 현장에서 이런저런 말이 오갈 수 있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국민은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인의 발언이 최소한의 선을 지킬 것을 기대한다.

문제가 된 한 정치인의 발언 요지는 한국이 식민지가 된 것이 한국 탓이 크고, 일본과 한국은 전쟁을 한 적이 없다는 것으로 보인다. 해명을 요구하자 ‘식민사관이 아니고 공부를 더하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뿐만 아니라 한 논객은 이런 발언을 전후해 친북, 친일 논쟁이 재연되자 양자 모두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 정치인의 해명을 받아들인다 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어 몇 가지 묻는다. 우선 발언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동안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에 대한 일반적 공감대는 1910년 한일강제병합이 강제적이고 불법적으로 이뤄졌고, 그래서 ‘한일합방’이 아니라 ‘한일강제병합’ ‘한일병합’ ‘경술국치’ 등의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약 자체가 무효이기에 한·일 관계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특히 그 정치인의 전쟁관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전쟁에 대한 해석이야말로 국제법상 민감한 문제라서 더욱 궁금증이 생긴다.

첫째, 선전포고가 없고 일방적으로 당하면 전쟁이 아닌가? 통상 전쟁은 선전포고를 통해 시작된다. 그 정치인도 한·일 간에 선전포고를 통한 전쟁이 없었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 같다. 역사적 상식이지만, 일본은 연속적 전쟁을 통해 대국으로 발전했는데 일본 관련 전쟁은 대부분 선전포고가 아닌 기습으로 시작됐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은 물론이고 대표적 사례가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된 태평양전쟁이다. 일본이 지금이야 달라졌기를 바라지만 적어도 역사 속 일본은 얼마든지 ‘전쟁이 아닌 전쟁’을 통해 침략할 수 있는 나라였다. 제2차 대전 종전 후 일본을 전쟁 수행이 불가능한 나라로 만든 평화헌법이 제정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둘째, 일본의 장기간에 걸친 치밀한 한국 침략 과정과 1910년 당시의 전쟁 부재를 분리해 생각할 수 있을까? 즉 1910년 한·일 간 전면전이 없었다고 해서 한일강제병합을 전후한 한국의 저항을 평가절하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일본이 을미사변으로 한국의 국모를 살해한 것, 청일전쟁을 빌미로 한국을 침략하고 점령한 것, 러일전쟁으로 한국을 전쟁터로 만들어 초토화한 것, 1909년 의병 섬멸 목적으로 소위 ‘대토벌 작전’을 전개한 것, 한일강제병합 후인 1916년 주차군에서 주둔군으로 전력을 강화한 것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또한 을사늑약으로 인한 민영환의 자결, 을사늑약 이후 토지 강제 수용에 항거한 한국인의 불법 처형, 1907년 의병의 봉기, 1909년 안중근의 의거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국가를 위해 기도회를 연 것, 국가를 살리려고 다양한 민족 운동을 벌인 것, 한일강제병합 직후 ‘105인 사건’이라는 조작 사건으로 탄압받은 것, 1919년 삼일운동 참여로 수난당한 것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셋째, 그 정치인의 발언대로 전쟁 없이 한국이 썩어서 스스로 망했다면 누구 책임일까? 당시 정치인의 책임이 아닐까? 정치인이 제구실을 못하자 그나마 나라를 구하자고 애쓴 사람이 국민이 아니었던가? 오늘날 정치인은 선대 정치인의 잘못에 대한 책임의식을 공유하고 있을까? 최근 벌어지는 일련의 논쟁은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한다.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인 스스로 품위를 지키고, 정쟁이 아닌 정책을 논하기를 요구하는 것이 지나친 바람일까?

안교성(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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