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내리는 커피] 현모양처의 커피차 끓이는 법



백년 전 이 땅의 여성들은 현모양처의 길을 가도록 권유받고 강요받았다. 근대식 학교에 여아를 입학시키는 것은 이 여아가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남편과 자식을 위해 필요한 정도의 보조적 인간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무식하지 않아 남편의 말동무가 돼야 했고, 글을 읽을 줄 알아 남편의 책을 책장에 거꾸로 꽂지 않아야 했고, 아이들 가방에 교과서를 시간표에 맞춰 넣을 수는 있어야 했다. 현모양처에게 요구되는 보조 인간 이미지였다.

현모양처가 되기 위해 새롭게 배워야 하는 것이 또 있었다. 바로 커피차 끓이는 법이었다. 신문물 커피차를 제대로 끓여 남편을 즐겁게 하는 게 덕목의 하나로 등장한 것이다. 연일 신문에 게재되던 커피 관련 기사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커피차 맛있게 끓이는 법이었고, 그 대상은 여성 특히 가정주부들이었다. 1930년 2월 6일자 중외일보 기사 제목은 ‘가정에서 커피차를 만드시려면’이었다. 이 내용은 1930년 전후 이 땅의 커피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몇 문장을 살펴보자.

“집에서 만드는 것은 다 나쁘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은 일종의 오해입니다.” 당시에도 외식 문화가 꽤 발달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커피도 끽다점이나 카페 혹은 다방에 가서 마시는 것이 집에서 마시는 것보다 좋다는 생각들이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요즘의 카페 유행이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커피를 사 오시거든, 습기에 젖지 않도록 다른 그릇에 옮겨 둘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커피원두 용기를 열어 커피가 공기와 접촉하면 곧바로 시작되는 산패를 막고, 커피 고유의 맛과 향을 잘 보관하려면 밀폐 용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당시에도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폰트의 커피는 사십인분으로 되어 있는데… 그저 눈짐작으로 덥석 부어가지고 만드는 것은 좋지 못한 일입니다.” 1폰트(1파운드, 453그램)로 40잔이면, 커피 한 잔 만드는 데 11.3그램의 원두를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내리는데 보통 10∼15그램을 사용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커피 음용 문화가 요즘과 비교해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유를 넣을 때에는 따듯한 것이라야 합니다.” 당시에는 아이스커피가 소개되기 이전이었다. 커피는 따듯해야 했고, 우유를 넣더라도 따듯한 것을 넣는 것이 원칙이었다. 물론 1926년 12월 22일자 중외일보는 ‘커피 만드는 법’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커피의 맛을 잃지 않으려면 우유보다는 조금 비싸더라도 크림을 넣는 것이 좋다는 내용을 실은 적도 있었다.

점점 커가는 커피에 대한 관심에 부응해 ‘커피 감별과 내리는 법’ 강습회 겸 시음회가 처음 열렸던 것이 1933년이었다. 브라질커피연구회와 부산일보가 주관하는 행사였다. 브라질의 커피 생산 과잉으로 일본에 값싼 브라질 커피가 넘치기 시작한 시절이었다. 강습회 사진을 보면 참석자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육학과 교수 leegs@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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