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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박수홍과 친족상도례



로마법은 ‘법은 가정의 문턱을 넘지 않는다’는 태도를 취한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정서의 특례 조항이 있는데 바로 ‘친족상도례’이다. 친족 간 재산범죄에 적용되는 형법상 조항이다. 절도·사기·횡령 등 재산범죄 가해자가 직계혈족이나 배우자 등 동거 친족일 경우 형이 면제된다. 그 외 친족은 6개월 내 피해자가 직접 고소해야 처벌이 가능하다. 가정 내 문제는 먼저 가족끼리 해결할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형법이 제정된 1953년부터 적용돼 왔다.

하지만 대가족에서 핵가족을 지나 1인 가구 시대에 접어든 요즘에도 친족상도례를 유지하는 게 맞을까. 이에 따르면 30년 전 집을 나간 아버지가 갑자기 딸을 찾아와 거액의 사기를 쳐도 직계혈족이라는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 조카가 곧 갚을 수 있다며 이모에게 빌려 간 돈을 6개월 넘게 갚지 않아도 처벌할 수 없다. 6개월 내 고소해야 한다는 조항 때문이다. 치매환자나 지적장애인의 친족이 이를 악용해 재산범죄를 저질러도 처벌이 어렵다. 그동안 개정 논의가 있긴 했지만 큰 주목은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국민적 관심을 끌게 된 사건이 일어났다. 방송인 박수홍 친형의 거액 횡령 사건이다. 박수홍이 수십 년간 자신의 출연료 등을 횡령한 혐의로 친형을 고소했는데, 최근 조사 과정에서 박수홍 부친이 횡령은 아들(박수홍 형)이 아닌 자신이 했다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동거하지 않아도 직계혈족이라 친족상도례상 형이 면제된다. 그러나 형은 동거가족이 아니어서 횡령이 드러나면 꼼짝없이 처벌을 받게 된다. 때문에 아버지가 친족상도례를 악용해 아들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려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6일 국정감사에서 “친족상도례는 지금 사회에선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예전의 개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 여론조사에서 이 조항이 폐지되어야 한다는 답변이 85%에 달했다. 시대는 변하는데 법이 이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한승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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