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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둠스데이 클락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2년 뒤인 1947년 미국 시카고대학의 핵 과학자들이 학회지에 ‘둠스데이 클락’이란 상징적인 시계를 공개했다. 인류가 스스로 문명을 파괴해 멸망하는 날을 자정으로 설정하고 분침을 그 7분 전에 맞췄다. 핵의 위험성을 상징물에 담아 대중에 알리려던 학회의 의뢰를 받고 여성 디자이너가 고안했다. 그의 남편이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해 핵폭탄을 만든 물리학자였다. 자책하며 재앙을 걱정하는 남편을 보고 ‘종말시계’를 떠올렸다고 한다.

시간을 7분 전에 맞춘 것은 그냥 ‘보기에 좋아서’ 디자이너가 그리한 거였는데, 학자들은 이후 국제 정세를 분석해 분침을 앞뒤로 옮기곤 했다.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한 1949년 처음 바뀌어 3분 전이 됐고, 미국과 소련이 전략무기감축협정에 서명한 1991년에는 17분 전까지 되감았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는 단기간에 종료된 데다 이후 백악관-크렘린궁 핫라인 등 예방 조치가 이뤄져 시간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2007년부터 북한과 기후변화가 종말의 변수로 새롭게 등장했다. 그해 시계는 북한 핵실험과 이상기후로 기존보다 2분 앞당겨진 5분 전이 됐다. 1953년 미·소의 수소폭탄 실험에 종말 2분 전까지 근접했던 기록은 오랫동안 깨지지 않다가 2020년 1분40초 전으로 갱신됐는데, 그 배경에도 북한이 있었다. 김정은과 트럼프의 핵협상 좌초 이후 고조된 북핵 위협이 미·이란 핵 갈등 등과 함께 종말에 다가선 원인이 됐다.

미국 핵과학자회(BAS)는 매년 1월 회의를 열어 이 시계를 조정하고 있다. 올해는 1분40초를 유지했지만, 내년엔 그러기 어려울 것 같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친 척 핵을 꺼내려 한다. 러시아 핵잠수함이 핵 어뢰 포세이돈을 싣고 출항했다는데, 그 어뢰는 히로시마 원자폭탄보다 100배나 강력해 ‘둠스데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여기에 북한 김정은까지 전술핵 선제공격을 외치며 핵실험을 강행할 태세다. 두 미치광이 때문에 종말까지 몇 초 안 남은 시계를 보게 될 듯하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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