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멈췄던 꿈이 다시 시작될 때



“어느 날 세상이 멈췄어, 아무런 예고도 하나 없이.”

방탄소년단(BTS)의 곡 ‘Life Goes On’의 도입부 가사처럼, 2020년 초 뉴스에 코로나19라는 생소한 단어가 오르내리다 일상이 갑자기 얼어붙었다. 그때 이후 지금껏 수많은 일이 일어났고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았다. 오랜 진통 끝에 최근에야 팬데믹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듯한 징조가 보이는 듯하다.

전염병이 멈춰 세운 세상에서도 삶은 계속돼야 했다. 세상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바이러스가 건너오지 못할 만큼의 거리를 뼈대 삼아 재조직됐다. 그러다 보니 일상의 필요를 비대면으로 충족하는 기술이 적극적으로 개발되고 활용됐다.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천 년간 인간이 살아온 삶을 변화시켰다. 그중 하나가 영화의 생산과 소비 방식이다.

팬데믹 상황에 급성장한 OTT 서비스는 영화인들에게 새로운 현실에 적응할 것을 강요하다시피 했다. 관객으로서는 예전에는 마음이 가는 영화를 어느 극장에서 볼까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거의 무한대로 제공되는 온라인 콘텐츠 중 취향에 따라 고르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변화가 불가역적으로 보이는 만큼, 일상 회복이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영화 관계자들의 고민이 적지 않아 보인다. 사람들이 사적인 공간에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으로 문화를 소비하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상황에서, 어떻게 은막의 스크린 앞에 타인과 함께 앉아 영화에 집중함으로써 맛보게 되는 ‘전통적’ 감동을 다시 선사할 수 있을까. 솔직히 그 답은 모르겠지만 필자의 취향상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제맛이다.

개인적으로 팬데믹 상황에서 영화라면, 코로나로 취소된 2020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경쟁부문에 오른 덴마크 영화 ‘어나더 라운드’가 떠오른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영화가 시작될 때 나오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젊음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꿈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꿈의 내용이다.” 이는 평온한 일상에도 몹시나 심각할 줄 알았던 19세기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가 한 말이다. 그가 던진 두 개의 질문과 두 개의 답변을 합쳐 보면, ‘젊음은 사랑이라는 내용의 꿈을 꾸는 것’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생명이 생물학적인 나이가 들수록 쇠약해지는 것이라면, 인간의 삶은 무의미한 유기체적 활동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사랑이라는 꿈을 꿈으로써 생명의 푸릇푸릇함을 누리도록 창조됐다. 사랑의 꿈을 꿀 줄 아는 사람이 계속 등장했기에 역사에는 새로움이 마르지 않았다. 1895년 프랑스 파리에서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선보인 이후, 수많은 사람이 영화를 통해 더 다채롭고 생동적인 꿈에 푹 빠지는 호사를 누렸다. 물론 지금껏 선보인 영화 중 좋은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는 세대와 국적과 인종과 언어를 넘어서 사랑의 꿈에 함께 잠기게 하는 강력하고 흥미로운 매체였다.

가을이 깊어가며 들려오는 문화 공연 소식 중에 몇몇 기독교 영화제와 관련한 뉴스가 포함되어 있어서 몹시 반갑다. 코로나가 지구를 뒤덮기 전이든 후든 할 것 없이, 현대 문화는 피상적 재미와 자극적 소재를 좇고 상업적 성공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기독교 영화제는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색다른 사랑의 꿈을 꾸게 해주는, 그럼으로써 늙어버린 지구에서 청춘으로서 살아갈 힘을 얻게 해준다.

기독교적 가치를 품고 있는 작품성 높은 비상업적 영화를 모아 상영한다는 것은 평소에도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이들 영화제가 팬데믹 기간을 꿋꿋이 버텨줬고 올해에도 어김없이 다시 찾아와 준 것이 고맙다. 삶이 계속되듯 영화도 계속된다는 한 영화제 관계자의 말처럼, 사랑을 내용으로 하는 꿈도 계속돼야 하기 때문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조금은 낯선 모습으로) 돌아온 일상을 환영하는 올가을, 좋은 기독영화를 보며 사랑의 꿈을 꿔보는 것도 뉴노멀을 마주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김진혁 교수(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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