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서정희 (9) 딸 동주와 싱가포르 여행… ‘미니멀라이프’를 꿈꾸며

방송인 서정희씨가 지난 8월 싱가포르 호텔의 피아노 앞에서 빨간 드레스를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싱가포르 여행을 2박 3일 계획하면서 이번 만큼은 짐을 줄여야지 다짐했다. 원래 여행을 갈 때마다 트렁크 두 개에 물건을 꽉꽉 채워가곤 했다. 그렇게 다짐하고 짐을 챙겼는데, 또 실패했다. 공항에 도착한 내 손엔 역시나 커다란 트렁크 두 개가 들려 있었다. 필요한 물건을 포기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어쩌겠나, 이게 나인 걸.

이혼 후 2017년 출간한 책 ‘정희’에 썼던 이야기가 문득 생각났다.

“매일 나를 가꾸고 주변을 단정하게 정리하는 일, 이왕이면 깨끗하고 예쁘게 치장하는 것, 이게 타고난 나의 성정이다. 이걸 바꾼다고 상황이 달라질 리 없고, 사람들이 이해해준다 한들 나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면 불행한 일 아닌가. 50년 넘게 이렇게 살았는데 괜히 의식적으로 털털하고 허술한 척 행동하는 게 오히려 나에게는 가식이고 포장이다. 개인의 차이이고, 각자의 취향일 뿐이다. 누군가는 개량 한복을 입으면 편하다지만 나는 도시적으로 세련되게 꾸며야 편안하다. 앞으로는 ‘나답게’ 살 예정이다. 내 자아가 원하는 대로 몸과 마음을 부지런히 가꾸고 주변도 예쁘게 꾸미면서 당당하게 살 것이다. 그게 내가 편안해지는 길이다. 내 인생에 나보다 더 중요한 사람은 없다.”

삶의 패턴을 바꿔보겠다며 청소도 미루고 대충 살아 봤다. 하지만 고작 며칠 안 돼 결국 원래의 나로 돌아왔던 적이 있다. 그래, 나는 이런 사람이야. 맞아, 나를 인정해야지. 할 수 있는데 안 할 이유는 없지. 아무리 환자라고 해도 기내에서 짐을 올리고 내릴 때는 황소 같은 힘이 생기잖아. 림프관 때문에 아프던 팔이 쭉 펴지고,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트렁크도 번쩍 들어 옮기잖아.

싱가포르 여행을 떠나면서 다시 한 번 나에 대해 생각했다. 트렁크 개수를 줄이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나는 ‘미니멀리스트’(minimalist)를 추구한다. 머니멀리스트는 예술가의 경우 가능한 단순하고 최소한의 요소를 통해 최대의 효과를 이루려는 사고방식을 갖는다. 앞으로도 조금씩 천천히 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억지로 비우지 않고 과정을 존중하면서 도달해볼 생각이다. 나의 속도로, 서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앞으로 여행을 떠날 때마다 하나씩 비울 작정이다. 어느 여행에선 작은 배낭만을 들고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짐을 줄여가다 보면 언젠가 짐 보따리가 분명 많이 가벼워질 것이라고 믿는다.

딸 동주와 싱가포르 여행은 즐겁고 행복했다. 옷이며 구두며 꼼꼼하게 챙겨간 것이 헛되지 않게 예쁜 사진도 많이 찍었다. 날씨가 더운 거 빼고는, 깨끗한 도시 풍경도 좋았다.

버리고 비워내는 쪽으로 나아가고 싶다. 나는 지금 충분히 많은 걸 가지고 있다. 예전엔 물건을 사도 사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았다. 지금은 사지 않아도 영적 배부름으로 충분하다. 내 안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사랑의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다. 새로운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야겠다.

정리=유영대 종교기획위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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