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신뢰, 채움과 비움의 미학



불과 얼마 전까지 사람들은 ‘저녁이 있는 삶’을 이야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코로나 사태를 맞으며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사회적 욕구를 어느 정도 해소한 듯하다. 정치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일을 코로나가 해냈다니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다. 이젠 누구도 저녁이 있는 삶을 말하지 않는다. 이번 정부가 ‘공정과 법치가 있는 삶’을 내걸고 당선된 것만 봐도 이미 과거형이 된 듯하다. 지금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신뢰가 있는 삶’이 아닐까. 우리는 지금 공정과 법치가 있는 삶을 공으로 얻으려다 불신의 늪에 깊이 빠져버린 사회가 된 듯하다. 불신은 불필요한 갈등과 대결을 부른다. 특히 사법 불신은 민주주의 시스템에 치명적이다. 공정과 법치를 말하기 전에, 저울추가 멀쩡한지 먼저 살피는 것이 상식임을 놓쳤다. 공정과 법치의 실현은 저울을 아무렇게나 속이고 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농락하는 법 기술자가 아니라 법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법조인이어야 가능한 일이 아닌가.

2017년 ‘법조’ 10월호에 흥미로운 글 한 편이 소개됐다. 날카로운 풍자의 정수를 보여준 ‘유토피아’(1516)의 저자 토머스 모어에 관한 글인데 문학이 아닌 재판 이야기였다. ‘판사들의 속마음’이라는 얄궂은 서론 제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법이 신뢰를 얻는 것은 공정해서가 아니라 법이기 때문이다. 법은 어리석은 자들이 만드는 경우가 많다. 공평함을 싫어하고 공정하지 못한 인간이 이들 법을 만든다.” 입안에 쓴맛이 돌았지만, 너무 정직하고 핵심을 찌르는 지적이어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법치의 허상을 에누리 없이 깨며 법조인이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지 말하는 듯했다.

모어는 영국의 종교개혁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법조인이다. 법률가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최고 자리인 대법관에 올랐던 시대의 지성이었다. 동시에 자신을 총애하고 신뢰했던 헨리 8세에게 처형당한 비운의 법조인이기도 했다. 영국성공회는 그를 희생제물로 삼아 탄생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회법이 국법보다 상위법인 중세시대, 헨리 8세는 결혼문제를 빌미로 국법과 교회법을 양손에 모두 쥐고자 했다. 하지만 절대반지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대법관의 협조가 필요했다. 모어는 협조 대신 사직서를 제출했고 왕비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에겐 법과 신앙의 양심 모두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들의 요구를 하나라도 들어주면, 그다음 것을 들어 주지 않을 도리가 없다. 대관식에 참석하면 다음에는 새로운 질서를 위해 강연을 하고 글쓰기를 하라고 강요당할 것이다.”

런던탑 어두운 감옥에 갇히자 그의 아내는 절망했다. “지혜로운 사람으로 칭송받더니 이젠 좁고 더러운 감방에 쥐새끼들과 함께 갇힌 어리석은 바보가 되었구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다는 일이 고작 여기에 주저앉는 것이었소.” 하지만 그는 “여기도 내 집처럼 천국에 가깝지 않소?”라며 재치 있는 답변을 잊지 않았다. 법정에서 남긴 그의 최후 변론이다. “진실하고 충성스러운 신하는 이 세상의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영혼과 양심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법은 절대 정의가 아닌 사회의 최소 정의다. 사법기관은 권위로 신뢰를 얻는 것이 아니라 신뢰로 권위를 얻는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신뢰를 쌓는 일은 스스로에 대한 신뢰와 내용이 먼저 채워지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오랜 시간 내면의 채움과 외양의 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모어는 대법관이 되어서도 수도자의 삶을 이어간 충실한 신앙인이었다. 권력에 탐닉하지 않고 공정한 재판을 통해 ‘곤경에 처한 사람들의 보호자’로 칭송받을 수 있었던 이유다. 그는 끝까지 균형과 합리성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극단의 정의는 극단의 불의를 부른다.”

하희정(감신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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