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지구에 찍힌 그리스도의 발자국



인간이 걸어가면 그 뒤로 발자국이 남는다. 영화나 소설을 보더라도 실종된 사람을 찾거나 누군가를 추적할 때 발자국이 결정적 실마리가 되곤 한다. 그래서인지 발자국은 인간의 행동 생각 태도 등이 만들어내는 흔적 혹은 영향을 뜻하는 은유로 많이 사용된다.

발자국을 자기 작품에 핵심 은유로 삼은 작가도 있다. 그리스도교 교리에 대한 동양적 해석을 시도했던 일본 소설가 엔도 슈샤쿠는 죄 개념은 중요시했지만 죄론의 설명 방식을 어려워했다. 결국, 그는 죄를 ‘다른 사람의 삶에 남겨진 나의 발자국을 망각하는 것’으로 재정의했다. 나와 너의 만남은 각자의 흔적을 타자의 삶에 남기게 된다. 너의 삶에 새겨진 내 발자국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그 흔적을 통해 상기되는 너에 대한 책임에 눈감을 때 우리는 죄인이 된다.

발자국이 귀해진 시대가 됐다. 도시의 길은 아스팔트나 보도블록으로, 산길은 야자매트로 포장돼 있다. 눈으로 덮인 거리, 혹은 인적 없는 비포장 시골길을 가야 내 발자국을 또렷이 보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발자국을 인지하지 못하는 또 다른 중요한 상황이 있다. 바로 나의 목표에만 시선을 고정할 때, 즉 너와 내가 내딛고 있는 걸음을 무시하고 앞만 보고 걸어갈 때이다.

의식하든 못하든 내 뒤로 발자국이 남는 것처럼, 개인과 기업 국가 등이 생활하거나 제품을 생산, 서비스를 소비하는 전체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의 양을 ‘탄소발자국’이라고 부른다. 탄소가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내가 쓴 탄소가 내 삶에 끼치는 영향을 직접 추적하기도 힘들다. 그런 만큼 기후변화의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에도 불구하고, 먹고살기 급한 인류는 자신의 발자국에 책임감 있게 반응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 역시 인간이 모인 공동체이다 보니, 이 땅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 대가로 탄소를 배출한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발표한 전국 건물 에너지 사용량 통계에 따르면, 종교 시설의 1㎡당 에너지 사용량은 전체 평균의 약 1.8배로, 공장 시설과 비슷하게 에너지를 소비한다. 물론 교회 시설이 전국 건물 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 보면 교회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도 친환경 정책의 사각지대로 남을 확률이 높기도 하다. 이것이 교회가 탄소발자국에 주의를 더 기울여야 할 이유이다.

엔도가 이야기했듯 타자의 삶에 남긴 흔적을 무시하는 것이 죄라면, 한국교회는 자신의 탄소발자국을 망각하는 죄를 범하고 있다. 그런데 성경에 따르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예배와 교육, 친교와 선교 등의 활동이 탄소를 소비할 때, 그리스도의 몸은 지구에 탄소발자국을 남기는 중이다. 교회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하신(골 1:16) 지구를 병들게 한다면, 이것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몸인 교회의 불순종이요 항거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지난달 ‘한국교회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을 발표했다. NCCK는 2030년까지 한국교회의 탄소 배출을 현재의 50%로 줄이고, 2040년까지는 100% 감축, 2050년까지는 100% 감축 상태 지속 등 구체적 목표를 제시했다. 물론 로드맵이 현실화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교회 연합체가 탄소발자국을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매일 마시는 커피, 스마트폰으로 보는 동영상, 도서관을 환히 밝힌 전구,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문화 활동 등 인간이 하는 크고 작은 활동은 탄소발자국을 남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후위기 시대 우리에게는 지금껏 살아온 방식과는 다른 미래로 이끌어 줄 새길이 필요하다. 누군가 남긴 발자국을 뒤따라 사람들이 계속해서 걸어갈 때 길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번 로드맵이 그리스도의 몸이 탄소발자국 대신 생명의 발자국을 남기게 되는 회심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김진혁 교수(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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