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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역전의 용사들



10여년 전 일이다. 어느 주일 오전에 서울 목동의 한 건물 지하 개척교회에 미리 도착해 취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배 30분 전쯤 도착한 그는 주위의 부축을 받아 단상에 올랐다. 그리고 양손으로 단상을 짚고 몸을 지탱한 채 20분 남짓 꼬장꼬장한 목소리로 설교했다. 단상 위 설교자는 방지일(1911~2014) 목사다. 당시 그는 백수를 2~3년 앞둔 시점이었다. ‘영원한 현역’이라는 수식어가 그를 따라다녔다. 제법 큰 교계 행사마다 자리를 빛내 달라며 이곳저곳에서 그를 모셔다 세웠다. 서울 영등포교회 원로 목사였던 그를 수행하며 보필하는 목사가 있었는데, 그 또한 방 목사의 후임이자 영등포교회 원로 목사였다. ‘원로가 원로를 모시는’ 모습에 사람들은 놀랐고, 숙연해졌고, 감동을 받았다.

한쪽에서는 방 목사의 행보를 두고 “연로하신데 너무 많이 다니시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 것 같다. 실제로 그는 출석 교인이 20명도 안 되는 자그마한 교회도 마다하지 않고 부르는 곳마다 응해 말씀을 전하곤 했다. 압권은 한 원로 목사 모임이 ‘나부터 회개, 회초리 기도회’라는 행사를 기획하면서 준비한 포스터에 방 목사 사진이 등장한 것이었다. 한 손에는 지팡이, 다른 손에는 회초리를 든 방 목사가 가냘픈 자신의 종아리를 내려치는 포즈였다. 다소 작위적이고 자극적이면서도 울림이 컸었던 건 그가 살아온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포스터에 등장한 지 5개월 만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때가 103세였다. “나는 녹슬기보다 닳아 없어지고 싶다”고 되뇌던 그는 별세 사흘 전까지 외부 행사에서 메시지를 전했다.

원로가 사라진 시대다. 솔직히 표현하면 원로가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세상이다. 평균 수명이 늘면서 원로라고 불릴 만한 어르신들의 비율은 오히려 높아졌다. 그럼에도 원로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거나 이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건 예전만 못한 것 같다. 어른들을 통해 얻을 만한 지혜와 지식이 이제는 네이버와 구글이 대신하고 있으니, 원로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건 아닐까.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십시오’(레 19:32)라는 성경 구절이 아니더라도 노인에 대한 권위를 무시하거나 원로의 지혜를 폄훼하는 것은 공동체의 공존과 발전을 위해서도 온당치 못하다. 노인들에게는 인생의 위기를 극복하며 켜켜이 쌓인 지혜가 있다. 저마다 인생의 도전과 문제에 대한 통찰력을 품고 있다. 인생의 전쟁터에서 수많은 전투를 치른 ‘역전의 용사들’이라 할 만하다.

지난달 24일 일본의 전자기기 제조 기업인 교세라의 창업주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이 향년 90세로 삶을 마감했다. 일본에서 ‘살아있는 경영의 신’으로 불리던 그가 파산 직전의 일본항공(JAL)을 3년 만에 살려냈는데, 당시 그의 나이가 78세였다. 평생 쌓아온 경영의 지혜가 인생 말미에 빛을 발한 것이다. 노년의 지혜는 사회 다방면에 또 다른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달 중순 일단의 원로 목회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 모였다. 이들을 주축으로 ‘대한민국 기독교원로의회’가 출범하는 자리였다. 날로 첨예해지는 우리 사회의 반목과 대립과 갈등을 기독교 복음으로 해소해 보자고 의기투합한 것이다.

이름을 올린 면면들을 살펴보니 최고령이 98세 원로 목회자였다. 행사는 슬로 모션으로 돌아가는 비디오를 보는 것 같았다. 다들 고령이라서 무대에 나오는 발걸음도, 움직임도, 말하는 속도도 더뎠다. ‘이분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일하시겠나’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지만 이날 사회자가 던진 한마디는 그런 마음을 쏙 들어가게 만들었다.

“오죽했으면 이분들이 발 벗고 나섰겠습니까. 부디 원로 목사님들의 목소리가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되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나비 효과를 염두에 둔 말 같았다. 역전의 용사들은 아직 죽지 않았다.

박재찬 종교부장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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