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격’이 들춘 통일교… 日 “반사회적 종교 제재를” 목소리

일본의 한 시민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장을 반대한다는 내용이 영어와 한글로 적힌 손팻말을 들고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현지의 한 언론사는 다음 달 27일 도쿄 일본무도관에서 열리는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에 50% 넘는 국민이 반대 의사를 표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연합뉴스


“그동안 대다수 일본인에게 통일교는 안 좋은 단체라는 인식이 적었습니다. 기독교 종파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죠. 하지만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사망으로 통일교 피해 사례와 정치권과의 유착 의혹이 연일 불거지며 부정적 인식이 늘고 있습니다.”

탁지웅 일본성공회 도쿄교구 신부는 30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달 8일 일어난 아베 전 총리 총격 사망 이후 현지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실제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단·사이비 종파의 폐해에 무감각했던 일본인들이 경각심을 갖게 됐으며, 이단 종파 피해 2세들이 겪는 어려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일본에서는 용의자 야마가미 데쓰야가 범행 전 지인에게 “가족이 통일교에 빠져 ‘영감상법’ 문제로 흩어졌다”며 “통일교가 없었으면 가족 관계는 괜찮았을 것이다. 아베와 관계 깊은 통일교라 경찰이 수사를 못 한다”고 고민을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지며 ‘영감상법(靈感商法)’의 폐해가 전면에 드러났다. 영감상법이란 통일교의 독특한 교리로 지옥에 있는 조상들의 고통을 없애고 후손들이 안전하려면 영적 능력이 있는 고액의 물건을 구매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인감이나 화병, 목주, 인삼, 진액 등을 초자연적 영력이 있다며 판매하는 것이다.

일본의 전국영감상법대책변호사연락회(전국변련)에 따르면 1987년부터 2021년까지 집계된 통일교 피해 사례만 3만4537건에 달한다. 특히 영감상법 등으로 인한 피해액은 1237억엔, 한화로 1조원을 넘겼다고 한다. 이를 두고 다나카 도미히로 일본 통일교 회장은 사건 발생 직후 연 기자회견에서 “헌금을 강요하도록 지도하지 않는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국변련의 야마구치 히로시 변호사는 “너무나도 사실에 반하는 말”이라며 “빚을 져가면서 통일교에 바친 헌금 때문에 파산한 신도가 많다. 야마가미의 어머니가 파산한 원인도 과도한 헌금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와 정치권은 즉각 통일교로 인한 피해 조사에 나섰다. 요미우리신문과 마이니치신문은 지난 27일 일본 집권여당인 자민당이 소속 국회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통일교와의 접점을 조사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조사 내용은 ‘통일교 관련 모임에 축전이나 메시지를 보냈는지’ ‘통일교 관련 단체 모임에 참석하고 회비를 기부했는지’ ‘선거 때 통일교 측의 조직적 지원을 받았는지’ 등이다. 일본 입헌민주당도 최근 “영감상법 등에 의한 피해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므로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당내에 피해대책본부를 설치해 대책을 검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통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종교단체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탁 신부는 “반사회적 이단·사이비 단체에 대해서만큼은 헌법상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종교단체로 보지 말고 ‘반사회적 집단’으로 규정해 최대 해산조치에 이르는 법적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교계는 이번 사건이 자칫 ‘혐한’과 교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우려한다. 탁 신부는 “현지 교회에서는 주보나 게시판에 ‘우리 교회는 통일교나 여호와의증인 등과 일절 관계가 없다’는 문구를 넣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사건 발생 초기 용의자가 재일동포가 아니냐는 소문도 돌아 현지 한인 사회가 긴장했다”며 “자녀가 다니는 한인학교에서는 ‘밖에서 한국말 사용을 조심하고 사람들을 자극하지 말라’는 내용의 가정통신문도 보내왔다”고 전했다.

탁 신부는 “컬트(이단) 집단은 자신들의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자금원과 노동력인 신도가 탈퇴하지 못하도록 ‘왜곡된 교리’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더 많은 신도 확보를 위해 가장 먼저 신도의 자녀를 노린다”며 “하지만 일본 사회는 이 문제에 대해 ‘매우 민감한 가정 내 문제’라는 이유로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자신의 힘으로 탈퇴조차 못 하는 이단 피해 2세의 어려움을 일본 사회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는 아동학대와 인권유린으로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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