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영성 작가] 오만과 편견에 막혀 나와 타인이 어긋나도 죄의 본성 성찰한다면 진정한 사랑이 보인다

게티이미지뱅크












18세기 영국소설의 ‘개척자’인 동시에 ‘완성자’라는 평가를 받는 제인 오스틴(1775~1817·래 사진)은 장편소설 ‘오만과 편견’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이다. 일생 6권의 소설을 남긴 오스틴은 ‘예민한 관찰자’였다. 그의 작품들은 인간관계와 사회계급제도뿐 아니라 여성의 삶을 비춰주는 거울 역할을 했다. 케임브리지대학의 FR 리비스 교수가 ‘위대한 전통’이란 소설론에서 영국 소설을 짊어질 영예를 다섯 작가에게 부여했는데, 그는 영국소설의 ‘위대한 전통’이 제인 오스틴에서 시작해 조지 엘리엇, 헨리 제임스, 조지프 콘래드를 거쳐 DH 로런스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영국 햄프셔주의 작은 시골 마을 스티븐턴에서 태어난 오스틴은 신앙심이 두텁고 온화한 학자풍의 아버지와 유머가 풍부한 어머니로부터 독실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의 집안은 아버지뿐 아니라 두 오빠와 네 명의 사촌이 모두 목회자일 정도로 목회자를 많이 배출한 신앙의 가문이다. 목사관에서의 생활은 그가 작가가 되는 데 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단조롭고 평범한 생활이었으나 생기 넘치는 형제들과 아버지의 학생들, 이웃과의 분주한 만남 등은 여러 유형의 인간 모습을 관찰할 수 있게 했다.

오스틴의 작품은 높은 도덕적 이상을 추구하지만, 설교조이거나 감상적이지 않다는 점이 신선하다. 더욱이 기독교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맺어야 할 성령의 열매를 작품에서 보여준다. 그의 소설에는 종교나 영성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다만 작품 속에 오스틴의 기독교적 믿음과 교회 양육에 대한 관점들이 들어있다. 특히 그는 성경에서 강조하는 많은 덕목을 그의 인물들에 비춰 말하는데 그것은 존중 겸손 순종 진실 덕망 등이다. 특히 불신과 교만 상태에서 성품과 삶이 변화되거나,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적 덕성과 성품으로 성화되는 모습을 다뤘다. 작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성직자의 모습을 통해 성직자가 가져야 할 성품부터 그리스도인의 경건 생활, 가족 내에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특히 1813년 발표된 ‘오만과 편견’은 영국 근대소설사에서 큰 획을 그은 작품이다. 인간 심리를 꿰뚫어 보는 깊이와 문학적 아름다움이 탁월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긴장감 넘치는 심리묘사와 문장력이 원광 속에 박혀 있는 금맥처럼 빛난다.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인간관계에 초점을 두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인간관계를 묘사하면서 영원히 변치 않을 인간성을 포착하고 있다.

그의 소설을 탐구하다 보면 창조주와의 관계를 향한 인간의 내재한 갈망이 떠오른다. 작품 속 다양한 인물을 통해 진실한 사랑은 물론 참된 인품도 배울 수 있다. ‘오만과 편견’은 계급과 신분이 최고의 가치였던 18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남녀의 사랑과 오해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은 인간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을 좋아했다. 사람들을 볼 줄 아는 남다른 눈이 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별 볼 일 없는 남자라고 생각했던 다아시가 실은 신사였고 반대로 신사일 것으로 생각했던 위컴은 터무니없는 모략꾼인가 하면 자신과 같은 가치관을 가졌다고 믿었던 친구 샤로트에게선 이중성을 발견한다. 엘리자베스는 외면의 모습과 실체를 식별하는 데 실패하지만 결국 진실한 사랑을 찾는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 작가의 시선이다. 오스틴에 따르면 자기를 과대평가하는 ‘오만’과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허영심’은 자기기만을 낳고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한다. 오스틴은 베넷씨의 셋째 딸인 메리의 입을 통해 ‘오만’에 대한 생각을 말한다.

“오만은 모든 사람이 가진 성질이야. 누구한테나 있는 것이고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그쪽으로 기울게 돼 있어.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실질적이건 상상적이건 일종의 자기만족을 갖지 않는 사람은 없어. 그리고 허영심과 오만함은 다른 거야. 우리가 그걸 혼동해서 쓰고 있는 거지. 우린 허영심을 갖지 않고도 오만해질 수 있어. 오만함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가진 견해하고 관련된 것이고 허영심은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부분과 관련이 있지.”(‘오만과 편견’ 1부 5장 중)

자긍심이 지나쳐 다른 사람에게 무례하고 거만한 태도를 보일 때 오만이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대할 때처럼 다른 사람의 자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기보다 자기 자질과 비교하여 깎아내리는 자세가 바로 오만이다. 성서가 말하는 죄의 본질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속성 존재를 무시하고 부정하는 인간의 무례하고 무도한 자세가 바로 죄다.

오스틴은 인간의 본성에는 어떤 특정한 악을 지향하는 경향성이 있는데 이것은 최고의 교육도 극복할 수 없다고 봤다. 이 결함이 오만이나 편견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오스틴은 다아시가 오만한 태도를 보이게 된 데는 자녀교육의 영향이 컸다고 다아시의 입을 빌려 지적한다. “어린 시절에 옳은 것이 무엇이라는 가르침은 받았지만 제 성깔을 고치라는 가르침은 못 받았어요. 훌륭한 원칙들을 줬지만 오만과 자만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따르도록 방치되었지요. …부모님은 참 좋으신 분들이셨지만 제가 이기적이고 거만하도록 내버려 두고 부추기고 심지어 가르치기까지 하셨습니다. 저 자신의 가문 혈족 외에는 세상 사람들을 비천하다고 생각하길 원하도록 말입니다.”(3부 16장 중)

다아시는 오만한 언행을 일삼는 자신을 돌아보며 성품의 회심을 이루었다. 엘리자베스의 경우 자신의 관찰과 해석에 의심을 하지 않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했다. “사랑에 빠져 있었다 해도 이보다 더 기막히게 눈이 멀 수는 없었을 거야. 그렇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허영심이었어. 처음 만났을 때 한 사람은 나를 무시해서 기분이 나빴고, 다른 한 사람은 특별한 호감을 표시했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서, 난 두 사람에 관해서 선입관과 무지를 따르고 이성을 쫓아낸 거야. 지금 이 순간까지 난 나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거야.”(2부 13장 중)

이 소설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 되는 진리 하나를 전해준다. 사랑은 사랑할 구석이 없는 세상에서 사랑할 구석이 없는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오스틴 문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길잡이가 되는 것은 그의 작품 밑바닥에 깔린 풍자이다. 그는 허영이나 부자연성을 무척 싫어했다. 전 작품을 통해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세계의 설정과 변치 않는 보편적 요소를 담았다. 이 같은 사유 양식은 목사인 아버지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42년이란 짧은 생애를 살았던 오스틴은 당시 사회상을 재치있게 비판하면서 늘 자신의 삶을 성찰했다. 그가 남긴 기도문을 보면 날마다 성화의 삶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지금 이 순간 그리고 매일 밤이 올 때마다 우리가 지난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돌아보게 하시고 지난 하루 동안 무엇이 우리의 생각, 말, 행동을 사로잡았는지 생각하게 하소서… 오! 하나님, 그리고 교만이나 허영에서 오는 자기기만으로부터 우리를 구해 주소서.”

일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작품활동에 정성을 쏟았던 그에게도 사랑의 아픔은 있었다. 청혼 직전까지 갔다가 상대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결혼이 무산된 일이 있었다. 이 첫사랑의 실패에 대한 아픔을 그린 소설이 21살 때 완성한 ‘첫사랑’이며, 이 작품이 1813년에 ‘오만과 편견’으로 개작돼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친구의 오빠이자 많은 유산의 상속자인 한 남성의 청혼을 받아들였다가 하루 만에 거절하기도 했다.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처럼 사랑 없는 결혼보다는 독신을 택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정인지 모르겠다. 그가 남긴 작품은 ‘오만과 편견’ 외에 ‘분별과 다감’(1811) ‘맨스필드 공원’(1814) ‘에마’(1815) ‘노생거 수도원’(1818) ‘설득’(1818) 등이 있다.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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