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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노예 문제와 한국교회



음악가 솔로몬 노섭은 미국 뉴욕에서 아내, 두 아이와 자유로운 삶을 살던 중 납치돼 루이지애나주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그는 플렛이란 이름으로 12년을 살았다. 신분은 노예였다.

음악가와 노예라는 두 인생을 산 남자의 이 이야기는 실화다. 스티브 맥퀸 감독이 ‘노예 12년’이란 제목으로 영화화해 2014년 개봉했다. 노예를 다룬 영화를 거부감 없이 볼 수 있었던 건 184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이다. 당시 노예 수입이 금지된 미국에선 흑인을 납치해 팔아넘기는 납치 사건이 만연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 노예라는 단어가 국제 사회에 소환되고 있다.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경제 용어와 결합했다. 글로벌 가치사슬(GVC)과 ESG다. 가치사슬은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데 원재료 노동력 자본 등의 자원을 결합하는 과정에서 부가가치가 창출된다는 개념이다. 요즘 상품과 서비스의 설계 생산 유통 사용 폐기 등 전 범위에 이르는 기업 활동이 세계화되면서 글로벌이 붙었다. ESG는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다. 기업 활동에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 등 투명 경영을 고려해야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GVC ESG가 노예와 결합한 건 이렇다. 그동안 기업은 ESG의 ‘E’에 관심과 투자를 집중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기업 공급망의 회복 탄력성과 투명성이 강조되면서 ‘S’를 주목해야 한다고 봤다. 각국 정부와 소비자 투자자들이 기업의 노동착취 같은 비윤리적 활동을 견제한다는 뜻이다. 이는 기업의 생산과 공급망을 뜻하는 GVC로 연결된다. 대표적인 비윤리적 활동은 강제노동 인신매매 등이란 이름의 현대판 노예다.

인권 NGO인 유럽헌법인권센터는 지난해 슈퍼마켓 체인 리들, 패션업체 휴고보스 등 독일 기업 5곳이 신장위구르자치구 면화 산업의 강제노동을 통한 이득을 취했다며 형사고발했다.

지난 6월 미국은 강제노동에 대한 규제 강화를 목적으로 ‘위구르 강제노동방지법’을 제정, 발효했다. 위구르에서 채굴 생산 또는 제조된 제품은 물론 지역과 관계없이 위구르와 연계된 단체 또는 기업이 생산한 모든 제품의 수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6월엔 세계 주요 7개국이 정상회의 후 공동성명을 내놨다.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국가에 투자하는 기업이 현장 실사를 하지 않는다면 업종과 규모에 상관없이 국제 사회로부터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최근 미국 주도로 전 세계 17개 국가는 탄력적인 공급망 구축을 위해 머리를 맞댄 자리에서 강제노동 근절 등을 합의했다.

이처럼 현대판 노예가 국제 사회와 기업에 영향을 미치면서 한 국제단체의 활동과 주장이 눈길을 끈다. 국제 기독 NGO 국제정의선교회(IJM)다. 이 단체는 미국의 변호사 게리 하우겐이 1994년 유엔 특별수사본부장으로 간 르완다 대학살 현장에서 작은 교회에 쌓인 시신을 본 뒤 만들었다. 그의 책 ‘약탈자’의 부제 “폭력은 빈곤을 먹고 자란다”는 바로 IJM의 역할을 설명한다. IJM은 강제노동 성매매로 몰린 이들을 취약한 노동 환경이나 빈곤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부정 부패한 국가 시스템을 믿고 착취라는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노예라고 정의하고 이들을 위한 시스템 구축에 힘을 쏟았다.

최근 만난 IJM 아시아·태평양 지역대표는 노예 문제가 국가와 기업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며 이 문제 해결에 한국교회의 역할을 기대했다. 왜 교회일까. 그는 한국은 국제 사회의 지원을 받은 나라에서 지원하는 나라가 됐고 한국교회가 그 선봉에 섰다는 말로 설명했다. 이어 기독교 변증가인 팀 켈러 뉴욕 리디머교회 설립 목사의 “IJM이 세계 교회의 사회적 양심을 흔들어 깨웠다”는 말을 보탰다. 한국과 한국 기업을 위해 교회가 사회적 양심을 안고 노예 문제에 나서야 할 때라는 건 지나친 해석일까.

서윤경 종교부 차장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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