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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희의 인사이트] 풍요로움에 밀려나는 신



지난 주말 서울 외곽의 쇼핑몰을 찾았다가 황당한 싸움을 목격했다. 더위 때문이라고 하기엔 그 장면이 너무 씁쓸했다. 딸과 엄마로 보이는 젊은 여성과 나이 지긋한 여성의 앙칼진 목소리가 또 다른 젊은 여성을 잡아먹을 기세로 압도했다. 발단은 매장 입구에서 긴 줄에 매어 왔다 갔다 하는 개였다.

쇼핑 후 매장에서 나오려던 아기를 안은 젊은 부부가 “개를 좀 치워 달라”고 하자 모녀는 “어디서 개를 치우라고 하느냐”며 소리를 질러댔다. 개나 고양이를 싫어하는 나로서도 줄에 매여 있긴 했지만 매장 입구에서 어슬렁거리는 개가 위협적으로 느껴졌던 차다. 아기 부모 입장에선 오죽하랴 싶었다.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이 넘쳐서 ‘치우라’는 말조차 용납되지 않는 세상이 돼버린 걸까. 매장 직원이 싸움을 말려도 역부족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결국 경찰까지 출동했지만 그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반려동물이 아기와 같은 반열이라니. 이쯤 되면 우상화다.

풍요로움이 신을 밀어내고 있다. 그 자리를 재물과 자식, 반려동물 등이 차지하고 있다. 분노가 용광로처럼 끓어오른다. 사회가 각박해지면서 이성과 체면, 염치는 없어지고 무례함과 폭력으로 점철돼 간다. 타인에 대한 배려나 관용이 사라지고 있다. 층간소음으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사소한 말다툼이 날카로운 비수가 돼 돌아온다.

2017년 이후 우리나라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 달러를 넘는 ‘선진국’ 대열에 들었지만 국민 개개인의 삶은 더 행복해진 것 같지는 않다.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론’에서 주장한 것처럼 노동으로 돈을 버는 속도보다 자산이 돈을 버는 속도가 훨씬 빨라 자산 격차로 인한 불평등이 심화된 탓도 있을 터다. 일하는 즐거움, 노동의 가치가 높게 평가받던 시절에는 오히려 삶의 만족도는 높았다. 한탕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현세대는 자꾸만 더 많이 가지려 아등바등 살다 보니 삶의 질은 높아졌어도 만족감은 줄어든 것 아닐까.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더 큰 차, 더 비싼 아파트를 좇는 삶은 불행하다.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종교가 쇠락한 전철을 우리도 밟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먹고살 만해졌는데 정신은 공허해지고 피폐해졌다. 선진국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율이 후진국보다 높은 것은 아이러니다. 풍요로움에 기독교를 잃어가고 있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1970년대 세계일주 여행을 하며 겪은 일을 강연이나 저서에서 자주 이야기한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교회는 700명까지 신도가 있던 대형교회였으나 당시 예배드리는 신도가 20명뿐이었다고 한다. 목사는 5명이나 됐는데 예배 시간 내내 목사들은 입구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다음 주에 들른 영국 런던의 가장 오래된 교회는 일주일 있다가 문을 닫는다고 했다. 그는 저서 ‘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에서 “100년 후에도 희망의 기독교가 되려면 기독교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일교회로 최대 성도 수가 출석 중인 대형교회 목사는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고 영적으로 부흥하는 나라는 없었다”며 “영적 각성 운동을 통해 도덕성을 회복하고 소외된 계층을 돌보고 빈부격차를 줄이는 데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고 했다.

엔데믹 이후 탈기독교 현상은 가속화하고 있다. 가난과 고난에 처할 때는 신에게 의지하기 쉽다. 하지만 인간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자만해진 시대에는 신을 등한시하게 된다. 유튜브로 ‘설교 쇼핑’을 하고 키오스크에서 헌금하는 시대, 예수를 어떻게 전할까.

미국 내슈빌 그리스도장로교회 담임목사인 스캇 솔즈는 ‘세상이 기다리는 기독교’(원제: 거부할 수 없는 믿음)에서 “우리는 로비와 술수로 권력과 특권을 지닌 ‘도덕적 다수’가 되려는 욕구를 일절 거부하고 대신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선지자적 소수가 되라는 하나님이 주신 성경적 소명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친 세상 사람들, 냉소적으로 변해버린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가던 길을 멈추고 ‘이들의 말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기독교, 그런 매력적인 크리스천이 되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 2:15)

이명희 종교국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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