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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코너] 아베 사후의 대만 문제



선거 유세 중 총격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대만을 적극 지지해 중국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대만에선 ‘대만에 가장 친화적인 일본 총리’란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대만 국책연구원 화상 연설에서 한 “대만의 유사(有事·비상사태)는 일본의 유사이며 미·일동맹의 유사”라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일본이 대외 관계에서 쓰는 ‘유사’는 일본 영토가 무력 공격을 받거나 받을 게 예상되는 사태를 의미한다. 일본의 안전보장 관련법 중 하나인 무력공격사태법은 일본이 이런 돌발 상황에 처했다고 판단되면 자위대를 출동시켜 방위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아베 전 총리의 유사 발언은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받고 있는 침공 위협을 일본에 대한 무력 공격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퇴임 후 집권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을 이끌며 정국 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아베 전 총리가 대만 문제를 건드릴 때마다 중국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중국 외교부가 전직 총리 발언을 두고 현직 일본 대사를 불러들여 항의하는 이례적인 일도 벌어졌다. 그러나 아베 전 총리는 개의치 않았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아베 전 총리를 추모하는 의미로 지난 11일 정부 기관과 공립학교에 조기 게양을 지시했다. 그러자 중국 관영 매체는 즉각 “일본에 아첨하는 것은 차이 총통의 개인 취향이지만 규정에 어긋난다”고 비난했다. 대만의 조기게양법은 우방국의 현직 원수, 세계 평화와 인류의 진보 또는 대만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자가 사망했을 때 조기를 게양하도록 했는데 아베 전 총리는 아무데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이 총통의 조기 게양은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이어가겠다는 명확한 제스처다. 같은 날 라이칭더 대만 부총통은 아베 전 총리의 도쿄 자택을 찾아 조문했다. 1972년 일본이 중국과 수교하고 대만과 단교한 이후 50년 만에 일본을 방문한 대만 최고위급 인사여서 외교적 파장이 예상된다.

미국과는 가까웠던 아베 전 총리 사망 소식에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즉각 애도 성명을 내고 주미 일본대사관저를 찾아 조문했다.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 참석차 동남아 국가를 방문 중이던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귀국 일정을 미루고 일본으로 향했다. 아베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예정에 없던 한·일 최고위급 간 조문 외교가 가동되면서 양국 사이에도 관계 개선의 물꼬가 트일 여지가 생겼다.

아베 전 총리 총격 사건이 있었던 지난 8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의제로 ‘중국이 제기하는 도전’이 다뤄진 건 상징적이다. 3국 협의에서 중국 문제가 거론되고 이를 명시적으로 밝힌 건 전례를 찾기 힘들다. 3국 협력이 북핵뿐 아니라 중국 견제로도 확대될지 주목된다. 중국은 한·미·일 공조 및 미·일동맹 강화 움직임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미·중 갈등의 핵심인 대만에 대한 무력 시위와 수사도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최근 아세안 사무국 연설 후 “하나의 중국 원칙이 파괴되면 대만해협에 폭풍우가 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중이 대만 문제에서 접점을 찾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다만 올해 하반기 미국은 중간선거, 중국은 당 대회라는 초대형 정치 행사를 앞두고 있어 상황 관리에 나설 가능성은 있다.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다음 날 마주한 미·중 외교장관은 동시통역으로 5시간 넘게 대화했다고 한다. 조만간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첫 대면 회담을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일 대 중국 대결 구도가 심화되는 건 한국에도 부담이다. 양측이 긴장 수위를 낮출 최소한의 돌파구를 마련하길 기대한다.

권지혜 베이징특파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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