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미분류  >  미분류

[빛과 소금] 오순절 신앙은 생각보다 넓다



큰 소리의 열광적 기도, 이상한 중얼거림이나 낯선 말의 반복, 온몸을 흔들며 부르는 찬송…. 광신적 신도의 예배 모습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한 분파인 오순절 교회 또는 은사주의를 표방하는 신자들의 신앙 행위 단면이다. 은사주의는 개신교뿐 아니라 로마가톨릭교회 신자들 사이에도 퍼져 있으며 교단이나 교파를 가리지 않는다. 오순절 교회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성령의 은사인 방언이나 예언, 치유, 영 분별 등 신비한 능력뿐 아니라 타인을 섬기고 구제하고 가르치는 일 등을 강조한다. 국내 오순절 교회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교단과 순복음교회 등을 지칭한다.

아쉽게도 한국교회 안에서 오순절 신앙은 매우 협소하게 다뤄진다. 반지성적이며 극단적 신앙에 치우친 사람들이라는 편견이다. 하지만 전 세계 기독교 인구의 25%가 오순절 신앙을 견지하는 사람들이라면 생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신학자 사이에선 오순절 교회를 제2의 종교개혁 또는 제3의 기독교라고도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순절 신앙은 기독교 복음주의가 지향하는 4가지 공통 요소인 성경, 회개, 십자가, 전도(선교) 외에도 성령세례와 방언을 강조한다는 차이가 있다.

오순절 신앙은 기독교의 미래를 논하는 웬만한 논의와 석학들의 저서에서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 거대하고 활기찬 주제이기도 하다.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최후의 만찬을 했던 바로 그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성령의 불처럼 오순절 운동은 어디에서 어디로 확산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재근 광신대 교수가 쓴 ‘세계 복음주의 지형도’에 따르면 오순절 운동은 몇 가지 특징을 띤다. 성령세례와 방언 이외에도 충만한 복음, 평등주의, 그리고 민중신앙 등이다. 오순절 신앙을 단지 성령이나 은사만 주장하는 극단적 분파로 매도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오순절 신앙은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일례로 조용기 목사가 생전에 독일의 위르겐 몰트만 박사와 친분을 나누고 교류한 것은 유명하다. 두 사람의 신앙 배경이나 신학으로만 놓고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둘은 희망과 십자가라는 주제에서 하나가 됐다. 저명 신학자 중에 오순절 배경이 많고, 세계적 찬양 운동을 이끄는 힐송교회는 오순절 교단이다. 그래서 이 교수는 책에서 “지난 20여년간 서양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한 오순절학이 한국에서는 거의 소개되지 않거나 오순절 진영 내부에서만 유통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오순절 신앙이 기여한 측면 가운데 평등주의와 민중신앙은 특히 값진 것이었다. 평등주의는 오순절 신앙이 개신교의 만인 제사장(사제)직을 넘어 만인 선지자직에 대해 강조하면서 누구나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다고 봤으며, 오순절 신앙은 대중의 삶에 깊이 파고들며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부자와 가난한 자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고, 흑인과 백인이 하나가 됐다. 방언과 신유 은사자 절반이 여성이었으며 이들은 자기 목소리를 낸 유일한 개신교 그룹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위 사중복음의 창시자인 에이미 셈플 맥퍼슨도 캐나다계 미국인 여성이었다. 현재 미국 하나님의성회 소속 목회자 4분의 1이 여성이다. 오순절 신앙은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복음을 전했고, 강력한 성령의 은사 체험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오는 10월 12일부터 14일까지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세계 오순절대회가 열린다. 171개국 5000여명이 참가하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최대 규모의 국제 기독교 행사다. 대회에서는 전 세계 오순절 교회의 이슈를 주로 다루게 되지만 사회 정의와 종교적 권리 증진을 위한 담화문 발표, 인도주의적 노력 지원과 협력 방안 등도 함께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대회를 통해 포로되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사회적 신유의 역사도 일어나기를 바란다. 오순절 신앙에 대한 굽은 시각도 치유되기를 원한다. 제2의 ‘조용기-몰트만’의 조합도 기대해본다.

신상목 종교부장 smshin@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