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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가슴 안열고 판막 교체… 고위험 환자, 이제 시술비 5%만 낸다

타비(TAVI) 시술 장면. 지난달부터 만 80세 이상이나 심장수술 고위험군 환자 등에게 건강보험 본인 부담률이 5%만 적용돼 치료 문턱이 대폭 낮아졌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고령화로 대동맥판막협착증 증가
나이 들며 판막 딱딱 혈액 공급 이상
개흉 없는 타비, 시술비 비싸 부담
5월부터 고위험군 건보기준 확대
본인부담률 80%서 5%로 낮아져

신장 투석과 함께 고지혈증 약물을 복용중인 신모(70·여)씨는 어느 날부터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생기기 시작해 검사결과 대동맥판막협착증 진단을 받았다. 심장에서 뿜어져 나가는 혈액이 역류하지 않도록 문 역할을 하는 큰 혈관의 판막이 노화로 딱딱하게 굳어 잘 작동하지 않는 병이다. 계속되는 불편감으로 치료가 필요했던 신씨는 수술과 시술적 방법인 ‘타비(TAVI·경피적 대동맥판막치환술)’를 놓고 각각 위험성과 비용 부담 때문에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지난달부터 고가의 타비 시술에 건강보험이 확대된 소식을 접하고 타비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신씨는 심장수술위험도 평가(STS) 점수가 높은 고위험군(8점 초과)으로 분류돼 시술 비용의 5%만 부담하게 됐다. 또 다른 환자인 김모(89)씨는 STS 점수가 3점으로 낮았지만 다른 보험 혜택 기준인 ‘만 80세 이상’에 해당돼 역시 짐을 덜 수 있었다.
 
고령화로 환자 빠르게 증가 추세

대동맥판막협착증은 대동맥의 여닫이문인 판막이 딱딱해져 좁아지고 제대로 열리지 않아 발생한다. 심장박동에 따라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는데, 나이들면서 판막의 변성으로 망가지는 것이다. 환자의 90% 이상이 노화로 인해 발병하는 대표적인 퇴행성질환이다. 결국 전신에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해 심장에 부담이 가고 실신이나 호흡곤란, 흉통을 겪게 된다. 초기에는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다가 중증으로 접어들었을 때 진단되기 십상이다. 더 심해지면 급사로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빠른 검사와 치료가 필수적이다.

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타비팀 장기육(순환기내과) 교수는 20일 “고령화로 대동맥판막협착증 환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60세 이상 인구(2018년 기준 1050만명)의 0.1%에서 진단되고 있는데, 비슷한 환경의 일본(4%)에 비하면 진단율이 매우 낮다. 실제로는 더 많은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최근 타비 시술의 발전과 보험 적용으로 의사와 환자들 관심이 높아지면서 더 많이 진단되고 치료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병은 보통 70대 이상에서 진단되고 80세 이상에서는 발생률이 현저히 높다.

대부분 심장초음파 검사를 통해 진단되며 약물 치료로는 한계가 있어 타비 시술과 가슴을 여는 수술 중 하나를 고려해야 한다. 전통적 치료법인 수술 판막치환술은 가슴뼈를 열어 심장을 일시 정지시킨 후 낡은 판막을 떼내고 새 인공판막을 삽입하는 방식이다. 역사가 길기 때문에 임상 성적이 많이 확보돼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개흉을 해야 하는 부담이 크고 수술 후 혈액이 굳지 않도록 항응고제를 지속 복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따른다. 또 인공판막의 수명이 대부분 10년이기 때문에 환자의 기대수명을 고려해야 하며 재수술이 불가피하다.

반면 타비는 심장을 열지 않고 사타구니 쪽 동맥을 이용해 판막을 교체하는 시술법이다. 사타구니 피부를 작게 절개하고 얇은 도관(카테터)을 삽입해서 복부 대동맥을 거쳐 병변이 있는 판막까지 밀어올린다.

망가진 판막 부근에 카테터를 위치했을 때 인공판막을 펼치고 (풍선 혹은 자가 확장 시스템으로) 기존 판막을 밀어내면서 대체하게 된다. 시술에는 1~2시간 정도 걸린다. 신체적 부담이 덜하다 보니 회복이 빠른 게 장점이다. 시술 후 1~2일이면 퇴원 가능하다.

당뇨나 만성 신부전 등 복합 질환으로 합병증 발생 가능성이 높아 수술이 어려운 경우, 고령 환자 대상으로 고려할 수 있다. 즉 수술에 위험부담이 큰 환자들이 적합하며 유럽에선 75세 이상, 미국에선 80세 이상에서 수술보다 타비 시술을 우선 권장하고 있다.

장 교수팀은 최근 보편적으로 시행되는 사타구니 동맥이 아닌, 손목과 겨드랑이 동맥을 통한 타비 시술을 국내 처음으로 성공시켜 주목받았다. 장 교수는 “사타구니 등 하지 동맥과 복부 대동맥이 심한 협착으로 좁아져 도관 삽입이 불가능할 때 새 접근법으로 고려할 수 있다. 전신마취와 피부 절개가 필요 없어 역시 고령과 기저 질환자에게 맞춤형 치료”라고 설명했다.
 
5월부터 건보 확대…시술 증가할 듯

타비 시술은 도입 초창기에 수술을 받지 못하는 환자를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시행됐다. 하지만 10여년 넘게 장기 효과와 안전성 데이터가 쌓이면서 국내외적으로 시술 건수가 급증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5년 61건 시행됐던 타비 시술이 2020년에는 763건으로 12.5배 증가했다. 현재 국내에는 45곳이 타비 시술 기관으로 승인받았으며 건강보험 확대로 점차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이전까지는 수술 불가능군과 고위험군 중심으로 선별 급여를 통해 본인 부담률 80%가 일률 적용돼 왔다. 하지만 지난달 1일부터 중증도에 따라 건보 적용 기준을 3가지로 나눠 확대했다. 고위험 환자들의 치료 문턱을 크게 낮춘 게 핵심이다.

순환기내과와 흉부외과 등 심장통합진료에 참여한 의료진 전원이 수술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환자, 심장수술위험도평가(STS) 점수가 8점을 초과한 고위험군(개흉 수술 시 사망 가능성 8% 넘음), 만 80세 이상 연령 등 3가지 조건 중 1개를 충족할 경우 산정특례 대상이 돼 본인 부담률이 5%로 낮아졌다. 이에 따라 의료기관마다 차이가 있지만 3000만원을 웃돌던 타비 시술 비용이 160만원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단 수술 중위험군(STS점수 4점 이상 8점 이하)이나 수술 저위험군(STS 점수 4점 미만)은 본인 부담률 각각 50%, 80%가 적용된다. 이들의 경우 각각 1600만원, 2600만원 정도를 내야 한다.

심장수술 위험도 평가는 나이, 당뇨, 폐기능, 수술 경력, 심장질환 여부 등을 토대로 수술 30일 내 사망률을 점수화해서 산정한다. 만 80세 미만 환자라도 전문의 진료를 거쳐 건보 적용 여부를 상담해 보는 것이 좋다. 중증의 대동맥판막협착증은 증상이 나타난 지 2년 안에 치료받지 않을 경우 50%가 사망할 정도로 예후가 좋지 않기 때문에 무작정 기다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장 교수는 “개흉 수술이 힘든 사람들은 타비 시술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이전에 개흉 수술을 받았던 사람, 가슴에 방사선치료를 받아서 유착이 심한 환자, 상행 대동맥의 동맥경화가 심해서 개흉 수술 시 뇌경색 위험이 높은 환자 등이 해당된다”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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