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미분류  >  미분류

[시온의 소리] 대한민국 해방일지



우리와 같은 86세대가 젊었을 때는 독재정권만 물리치면 아무 걱정 없는 나라가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민주화에 성공한 것은 물론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는데도 우리의 삶은 여전히 고되고 미래는 어둡다. 이상한 일이다. 세상은 좋아졌다는데 왜 살기가 더 힘들어진 것일까. 돌이켜 추측해 보면 일제강점기에는 해방만 오면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 믿었을 것이고, 전쟁 후 배곯던 시절에는 산업화만 성공적으로 이루면 행복할 것이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들이 희망하던 일이 이루어졌지만 유토피아는 오지 않았다.

나는 역사의 진보를 믿지 않는 비관주의자다. 한국전쟁 후의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 성취는 특정 계층의 사람들에게 그 열매가 돌아갔을 뿐, 어떤 사람들의 삶은 더 비참해졌다. 사회적 갈등은 심화했고 행복지수는 더 낮아졌으며 권력은 더 노골적으로 되었다. 사실상 우리 사회는 퇴행하고 있으며 어쩌면 디스토피아가 되기 직전이다. 진보라는 신화를 걷어내면 피조물의 탄식이 들린다.

우리나라 장로교인들이 신조로 믿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한 구절이다. “우리의 선행이 선한 이유는 그것이 성령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 행동들은 우리 인간이 행하였기 때문에 더럽혀졌고, 여러 가지 약점과 불완전성이 뒤섞여 있으므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도저히 견딜 수 없다.”(제16장 5항)

선을 행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불순한 동기가 섞여 있고 그들이 이룬 선에는 약점과 더러움이 혼재돼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한 것은 퇴화하고 함께 자라던 악이 점점 확장된다. 업적은 제도화되어 자랑거리로 전락하고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단단한 덩어리로 굳어진다. 급격하게 변하는 세상은 개혁을 요구하지만 과거의 성취를 영속하려는 관성(慣性)은 이를 번번이 좌절시킨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우리 사회를 돌이켜보자. 1960~70년대 산업화는 우리 생존을 위해 반드시 이루어야 할 선한 과업이었다. 근면하게 일하고 자녀 교육에 힘쓰는 것은 미덕이었다. 덕분에 산업화에 성공해 삶의 질은 나아졌는데, 동시에 숨어 있던 욕망도 극대화되었다. 자산과 소득의 양극화, 부동산값 폭등, 부의 세습을 위한 부모 찬스, 전관예우, 각자도생, 최저 출산율, 최고 자살률, 기복신앙과 무속…. 그러나 산업화 세대는 자신들이 이룬 업적을 깎아내리려는 시도를 못 견뎌 한다.

민주화 세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들의 안위를 버린 동료들에 대해 아직도 빚진 마음이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 불순함이 없었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시대적 소명의식으로 가득한 혁명가들이 구악(舊惡)을 제거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었지만 한 세대가 지나면서 자신들이 적폐가 되어버렸다. 독재로부터의 해방을 쟁취했지만 속물주의와 위선에 자신을 스스로 굴복시켰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라는 두 개의 커다란 지각판(板)이 충돌해 대지진과 함께 입장주의라는 단층이 형성되었다. 여기에 거대한 에너지를 가진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으니 바로 이대남 이대녀로 칭해지는 젊은이들이다. 퍼펙트 스톰이다. 진보의 환상에서 깨어 역사의 퇴보가 가져올 충격을 예상해야 한다.

진보의 희망은 아주 없는가. 다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로 가 보자. 악에 오염된 우리 마음에 성령께서 선을 행할 공간을 열어주실 때, 오직 그때만, 아주 작은 진보가 가능하다. 진보라는 신화에서, 진보해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해방되는 것이 그 시작이다. 성령께서 이루실 선을 의지하고 그의 일에 참여하자. 타락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날을 사모하며 ‘나의 해방일지’의 대사를 떠올린다. “한 발 한 발, 어렵게 어렵게.”

장동민(백석대 교수)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