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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지금도 개 구충제 찾는 사람들… 보완대체요법 감독 시급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환자 89% 건강보조식품 등 의존
맹신하면 치료 지연·암 악화 위험
가짜정보 감시시스템 구축해야

2019년 암 환자들 사이에 개 구충제 ‘펜벤다졸’ 신드롬이 일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일부 암 환자들이 인체용으로 허가나지 않은 펜벤다졸을 복용해 크게 사회 이슈화됐다. 미국인 말기암 환자 조 티펜스나 폐암 투병 개그맨 고(故) 김철민씨 사례 등 유튜브를 통해 전파된 일부 인사들의 펜벤다졸 복용 후기가 기폭제가 됐고 일반인 경험자들이 가세하면서 항암 효과 논란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약국에서는 펜벤다졸뿐 아니라 같은 계열의 사람용 구충제 알벤다졸의 품절 현상까지 벌어졌다. 김씨가 치료 실패를 밝히면서 파동이 잦아들긴 했지만 지금도 암 환자 커뮤니티에선 펜벤다졸을 찾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간 펜벤다졸 사용에 대한 실태 파악은 물론 정확하고 근거있는 정보가 시의적절하게 제공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또 안전성이나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다양한 보완대체요법이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여전히 통용되고 있어 우려가 크다. 암 환자들에게 올바른 암 치료 기회를 제공하고 국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선 보완대체요법에 대한 실효성 있는 관리·감독이 시급하다.
 
제도권 밖 실태 파악 필요

이런 상황에서 국내 의료진이 약 1년 3개월간 연구를 통해 펜벤다졸을 포함해 우리나라 암 환자의 보완대체요법 사용 실태를 공개했다. 아울러 시류에 따라 등장하는 보완대체요법의 과학적 근거 자료를 제공할 국가 차원의 정보 센터나 관리 기구 구축의 필요성도 제안했다. 세종충남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김정선 교수는 최근 보건복지부 암정복추진기획단과 국립암센터가 연 76회 암정복포럼에서 여러 암 환자 그룹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완대체요법 사용 현황을 발표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정의에 따르면 보완대체요법은 정통 의학의 범위를 벗어나 국가 의료관리체계 밖에서 이뤄지는 건강 관리법을 말한다. 크게 생물학적 기반 요법(비타민, 허브, 건강보조식품 등) 신체 수기요법(카이로프랙틱, 마사지 등), 심신 중재요법(요가, 단전, 명상 등), 대체의학체계(면역·동종요법), 에너지 요법(전자기파, 자기장) 5가지로 분류된다. 김정선 교수는 “보완대체요법은 효과나 안전성, 항암제 등 약물과 상호작용 등 증명된 과학적 근거가 없거나 부족하고 그로 인해 진단이나 치료가 지연돼 암이 악화할 우려가 높다. 또 의료체계 밖에 있어 환자들에게 금전적 부담이 크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2021년 4월부터 이달까지 국내 19개 의료기관 방문 암 환자(1804명), 암환자&가족(768쌍), 9개 암환우회 참여 환자(221명) 세 갈래군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병원 방문 암 환자의 89%, 환우회 환자의 87.7%가 생물학적 기반 보완대체요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밖에 암 환자와 환우회 환자는 신체 수기요법(각각 23.3%, 50.3%) 에너지 요법(각각 17%, 32.9%) 대체의학체계(각각 14.6%, 25.8%) 심신 중재 요법(각각 15.8%, 18.1%)을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환우회 환자 대상 조사에서 보완대체요법 사용자의 16%는 개 구충제 펜벤다졸을 복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젊거나 질병 기간이 길고 암이 전이된 경우 펜벤다졸 복용 경험이 많았다. 또 사용하는 보완대체요법이 많거나 그로 인해 부작용을 경험한 암 환자도 펜벤다졸로 눈을 돌리는 것으로 분석됐다.

암 환자들이 보완대체요법 정보를 얻는 경로에 대한 응답은 가족·친척, TV, 친구·지인, 환우회, 주변 환자·가족, 포털뉴스, 인터넷커뮤니티, 유튜브 등 순으로 많았고 의사나 간호사, 약사로부터 얻는다는 응답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암 환자들이 보완대체요법과 관련해 담당 의사와 상담을 꺼리는 경향도 포착됐다. 의료기관 방문 암 환자 대상 조사에서 보완대체요법 사용자의 58%는 보완대체요법에 대해 의료진과 상담해 본 경험이 없다고 했다. 그 이유에 대해선 ‘의사와 논의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라는 응답이 30.4%로 가장 많았고 ‘의사들이 싫어한다고 생각해서’(20.2%) ‘의사에게 말하면 못하게 할 수도 있어서’(16.3%)라는 응답도 꽤 됐다.

김 교수는 “암으로 진단받는 시점부터 보완대체요법 사용과 인식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의사에게 보완대체요법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 이유가 논의할 문제가 아니거나 의사가 싫어할 것 같아서였는데 의사가 주체가 돼 먼저 대화를 시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환자에게 정보를 가장 많이 제공하는 가족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행타는 암 보완대체요법

이번 연구 책임자인 충남대 의대 권정혜 교수는 암 환자들이 많이 하는 보완대체요법에도 트렌드가 있다며 유통되는 정보에 실시간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권 교수는 “보완대체요법도 유행을 탄다. 한때 상황버섯이 유행했고 그 다음은 아가리쿠스 버섯이었고 최근에는 펜벤다졸”이라며 “시류에 따라 나타나는 가짜 뉴스를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스크리닝할 필요가 있다. 환자나 가족 대상 교육도 필요하지만 그게 어렵다면 셀프 체크리스트 정도는 만들어 제공해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또 “펜벤다졸을 복용하는 암 환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암에 효과 있다는 논문을 봤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논문이 가짜인 경우도 많고 세포 단계 연구이거나 오히려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보인 것도 있다”며 “근거 중심으로 정보를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암 환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소셜미디어 채널(유튜브, 틱톡, 쇼츠 등)을 통한 근거 중심의 정보 전달도 중요하다. 윤호영 이화여대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암 관련 국가 기관이나 전문가들은 단순한 보도자료나 성명서 발표 보다 정보 유통 채널에 직접 뛰어들어야 정확한 정보 제공이 가능하고 잘못된 정보 유통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보완대체요법에 대한 근거 중심 정보 센터 부재 문제도 지적됐다. 미국은 1998년부터 국립암연구소(NCI)에 보완대체요법의 과학적 평가를 위한 조직(OCCM)이 운영되고 있다. 권 교수는 “보완대체요법 근거 지원센터 및 관리 기구를 마련해 접근이 가능한 웹사이트 방식으로 의료진과 일반인을 위한 자료를 별도로 제공하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말했다. 약물 부작용 보고 시스템처럼 한국형 보완대체요법 감시 시스템을 구축해 시류에 따라 환자들이 어떤 보완대체요법을 많이 쓰는지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관련 부작용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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