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우리는 주안에서 오뚝이입니다



오뚝이는 넘어져도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과 오뚝이를 비교하는 말이 많습니다. 성경은 의인이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넘어질 일이 있고 악인도 넘어질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다릅니다. 의인은 다시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으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환난이 오면 사람은 당황합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는데 왜 환난이 올까’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환난이 찾아와도 이길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서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왜 우리는 넘어질까’ 입니다. 먼저는 우리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지혜롭지 못하거나 신중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않고 결정해서 실수하는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누리며 사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마귀 때문이기도 합니다.

환란을 하나님이 주실 때도 있습니다.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하나님이 쓰시기에 불편해서 우리를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연단이라고 표현합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을 바로 가나안으로 들여보냈다면 그들은 여전히 애굽의 풍습을 가지고 들어왔을 것입니다. 광야 40년이 그들에겐 연단이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이루려고 고난을 겪는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죄 때문에 고난 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대로 그렇게 사셨습니다.

이런 환란들이 우리에게 복합적으로 찾아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다시 일으켜주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중심축을 두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가 구원받을 만한 그 어떤 가치도 없을 때도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넘어지고 쓰러질 때 필요한 첫 번째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관계입니다.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런 상황이 올 때 기도하게 됩니다. 죄악 속에서 환란 속에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의 무게추가 자리 잡으면 쓰러지다가도 일어납니다.

여기에 하나를 더 얹으면 안 흔들립니다. 바로 사명입니다. 사도바울이 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을 핍박하던 중 주님을 만난 후에 그는 여러 가지 환란 중에도 주님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명에 불타는 사람은 뭔가 다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결박이 기다리고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담대하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목숨 걸었다는 것입니다. 사명을 위해 목숨을 거니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또 하나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섭리를 믿는 것입니다. 섭리를 믿으면 인내가 생깁니다. 왜 이런 어려움이 왔는지 모르지만 이런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면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이기게 하십니다.

오뚝이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우리에게 믿음의 추, 사명의 추, 섭리의 추가 있다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일어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상문 목사(두란노교회)

◇경기도 김포와 서울 강서구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두란노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성도를 키워내는 것을 목표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