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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세상속으로…] 음악으로 소통한 교회 ‘마을 오케스트라’로 하나되다

국수교회가 2019년 명지대 음대와 함께 교회에서 연 여름 음악 페스티벌 콘서트에서 성악가들이 노래하고 있다. 국수교회 제공


2000년대 초반 교회에서 진행된 오페라 공연에서 성악가들이 노래하는 모습. 국수교회 제공


2000년대 중반 교회 주변 마을 어린이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연습하는 모습. 국수교회 제공


경기도 양평 국수교회(김일현 목사)와 음악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교회의 전통과도 같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된 뒤부터 목요일 오전 11시 30분이면 교회 본당에 있는 ‘산수화 오르겔’ 연주에 맞춰 전문 성악가들의 노래가 가득한 콘서트가 진행된다. 농촌 교회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 매 주일 펼쳐지는 셈이다.

‘연주회가 있는 교회’를 가꾸는 김일현 목사를 지난 3일 교회에서 만났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문화 목회를 시작한 동기가 궁금해 몇 가지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김 목사는 “어릴 때부터 주의 종으로 살겠다고 서원했지만 세상의 아픔을 외면하는 교회의 이기적인 모습에 실망해 신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청주의 한 공장에 취직했다”면서 “공장에 딸린 교회가 있어 주일에는 전도사로 섬겼지만 거기서도 나를 마뜩잖게 생각하길래 사임하고 특수목회를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준비하다 우연한 기회에 국수교회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국수교회와 인연을 맺은 게 1988년이었다.

하지만 김 목사에게는 농촌 교회도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사임할 각오로 교인들에게 평소 갖고 있던 목회 철학과 교회론을 꺼내 놨다. “오랫동안 예수를 믿어온 여러분만 돌보는 목회는 이제는 더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만큼 예수를 믿었으면 내 동역자가 돼 진짜 교회를 함께 만들어 봅시다. 이제부터 우리 마을이 국수교회이고 주민들이 교인입니다. 마을과 주민 위한 목회를 하고 싶습니다.”

교인들은 김 목사의 목회 철학을 존중했다. 1990년 문화 목회는 이렇게 출발했다. 목회 방향을 바꾸고 나니 할 일이 쏟아졌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도 매일 확인했다고 했다.

기존에 운영하던 ‘새마을 유아원’을 유치원으로 확대하고 학생들을 위한 공부방도 열었다. 아이들의 손에 악기를 들려준 것도 이때였다. 서울대 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김 목사는 농촌이라고 해서 음악 교육에서 소외돼선 안 된다는 소신이 있었다. 그래서 주부교실과 노인대학도 개설하고 주민 모두를 교회로 초대했다.

변화는 빨랐다. 작은 농촌 마을의 대학 진학률이 올라갔고 음악 전공자도 여럿 배출됐다.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이들이 늘면서 마을 오케스트라까지 만들어졌다. 농사일에 바쁜 엄마들도 교회에 와서 공예와 악기를 배웠고 노인들은 교회를 사랑방으로 여기게 됐다. 아이들이 연주자로 참여하던 작은 음악회는 시간이 지나면서 전문 음악가들의 콘서트로 발돋움했다.

20년 동안 농촌 작은 마을은 교회를 중심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교회가 없었다면 경험할 수 없었을 일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김 목사는 “20년 동안 꿈꾸던 목회를 하며 매 순간 기적을 경험했다”면서 “목사라는 이유만으로 시비 걸던 주민들도 저를 존중하기 시작했고 교회 때문에 이사 오는 가정이 생겼으며 동네 부동산은 ‘국수교회라는 교회가 있는데….’라며 집을 팔았을 정도로 변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마을에 외지인이 빠르게 늘면서 분위기가 급반전하기 시작했다. 그는 “주민이 늘어나니 자연스레 교인도 늘었지만 부흥할수록 낯선 교회가 돼 갔고 새 교인과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함이 생겼다”고 토로했다. 새로운 목회가 필요한 순간이 찾아온 것이었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국수교회는 전혀 변한 게 없었다. 여전히 농촌에서 다양한 문화 목회를 시도하는, 주민들에게는 선물 같은 교회일 뿐이었다. 하지만 교회는 부흥이라는 뜻하지 않은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또다시 변화의 길을 택했다.

교회는 ‘선교’ ‘사회봉사’ ‘문화사역’을 목회의 세 축으로 정하고, 이를 도울 전담 기구를 만들었다. ‘선교 봉사회’ ‘사회 봉사단’ ‘문화 사역 법인’ 등이었다.

선교 봉사회는 매년 12명을 선발해 1대 1 신앙훈련과 함께 대학 과정까지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제자를 키우고 이들을 통해 또 다른 후배를 양육하는 것이 골자다. 사회 봉사단은 독거노인 반찬 지원과 집수리 등을 주로 한다. 빨래방이 잘 알려져 있다. 2012년 양평군으로부터 위탁받아 운영을 시작한 ‘한사랑 빨래터’는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 가정의 이불을 수거해 세탁한 뒤 배달해 주는 일로, 아르바이트도 동네 어르신들이 맡아 한다.

문화 사역 법인은 교회에 설치한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누구든 들을 수 있도록 각종 연주를 기획하는 일을 위해 만들어졌다. 오케스트라는 물론이고 10여 년 전 조직한 오페라단 연주회 기획도 법인의 몫이다.

김 목사가 생각하는 교회 공공성의 출발점은 ‘빛과 소금’이 되려는 노력에 있었다. 그는 “교회가 지금까지 예배당 안에 모여 세상과 단절된 채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왔다면 이제는 세상 속에서 자기희생을 통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로 변모해야 한다”며 “이것이 우리가 예배하는 이유이며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길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양평=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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