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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잦은 음주·흡연이 禍 불러… 1·2형 당뇨병보다 훨씬 위험”


 
가장 흔한 위협 요인은 췌장염
질병 코드 없어 유병률도 깜깜
병력·음주력 통해 ‘당뇨병’ 의심
사망률, 2형 환자보다 74% 높아
 
46세 Y씨는 거의 알코올 중독 수준으로 술을 마신다. 이 때문에 2017년과 2018년 급성 췌장염에 걸려 여러 차례 응급치료를 받은 적 있다. 잦은 음주는 췌장에 염증을 일으키고 급성 췌장염이 자꾸 반복되면 만성 췌장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 Y씨는 의사의 강력한 금주 권고에도 술을 끊지 못했고 결국 2019년 7월 급성 췌장염이 다시 도졌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당뇨병 진단을 받은 것. 곧바로 혈당 조절을 위해 인슐린 투여 치료를 시작했지만 잘 듣지 않아 올해 신경과 콩팥에 합병증까지 초래된 상태다.
 
인지도 낮은 췌장성 당뇨병

흔히 당뇨병이라 하면 1·2형 당뇨를 떠올린다. 1형 당뇨는 췌장 내 베타세포의 파괴로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는 유형으로 주로 소아에서 발생한다. 2형 당뇨는 대개 비만 등으로 인해 혈당 조절이 잘 안되며 성인이 걸린다. 그런데 Y씨가 진단받은 건 ‘췌장성 당뇨병’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는 췌장염이나 췌장암, 특정 유전질환(낭성 섬유증) 등으로 인해 췌장 안의 다양한 세포가 파괴돼 인슐린 분비 기능 감소는 물론 영양 흡수 장애, 영양결핍 같은 다양한 증상이 동반되는 게 특징이다.

췌장성 당뇨병은 2형 당뇨처럼 성인에서 발생하지만 인슐린을 분비하는 베타세포의 파괴가 2형 당뇨보다 더 빠르게 진행돼 고혈당이 초래된다. 또 저혈당 발생 시 혈당 증가 호르몬인 글루카곤을 분비하는 알파세포도 파괴돼 더 위험할 수 있다. 아울러 소화효소 분비와 간에서 글리코겐(포도당 복합체)을 저장하는 등 내외분비 기능에 중요한 췌장 폴리펩티드세포도 망가져 궁극적으로 소화·흡수장애를 겪는다. 1·2형 보다 더 무서운 당뇨병인 셈이다.

하지만 췌장성 당뇨병은 1·2형 당뇨와 달리 고유의 질병 코드가 없어 정확한 국내 유병률을 알 수 없다. 앞서 한 대학병원 연구에 의하면 2012~2017년 당뇨 진단 성인의 97.7%는 2형 당뇨였고 췌장성 당뇨는 2.3%를 차지했다.

게다가 췌장성 당뇨병과 2형 당뇨를 감별할 수 있는 진단적 검사가 없기 때문에 2형 당뇨에 포함돼 진단되는 경우가 흔하다. 다만 췌장염이나 췌장암 등 과거 병력, 만성 음주력, 혈당 변동성(2형 당뇨보다 혈당 변동 폭이 큼) 등의 파악을 통해 췌장성 당뇨병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아주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한승진 교수는 6일 “췌장성 당뇨병 연구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미흡한 편”이라며 “일부 국가 연구진들이 최근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 학계의 관심도 필요한 영역”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 교수팀은 최근 한국인 빅데이터를 활용해 췌장성 당뇨병의 특성과 임상경과를 밝힌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Diabetes care)에 발표해 주목받았다. 연구팀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검진 코호트(동일집단) 자료를 바탕으로 2012~2017년 당뇨를 처음 진단받은 15만7523명 중 췌장성 당뇨병 환자 3629명과 2형 당뇨 환자 15만3894명을 비교분석했다.

그 결과 췌장성 당뇨병 환자군은 2형 당뇨 환자군보다 당뇨 진단 5년 뒤의 인슐린 치료 비율이 38% 더 높았다. 합병증인 저혈당 발생 위험은 85%나 높았으며 당뇨병성 신경병증·콩팥병증·안(眼)병증 위험은 각각 38%, 38%, 10% 높았다. 심혈관, 뇌혈관, 말초혈관질환 발생도 각각 59%, 38%, 34% 더 많았다. 사망률은 2형 당뇨 환자보다 74% 더 높았다. 치명적인 당뇨 합병증과 사망률 발생이 2형 당뇨보다 훨씬 더 높은 만큼 췌장성 당뇨병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진단 시 더욱 적극적인 혈당 관리가 필요하다는 게 연구팀의 결론이다.
 
췌장염 조기 치료, 더 큰 병 막는 길

췌장성 당뇨병의 가장 흔한 위협 요인은 췌장염이다. 만성 췌장염이 원인의 62.4%, 급성 췌장염은 28.4% 정도를 차지한다. 만성 췌장염은 췌장 조직이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된 상태를 말한다. 만성 췌장염의 70% 정도는 장기간, 그리고 잦은 음주가 원인이다. 술이 대사되면서 나오는 독성물질이 췌장에 손상을 주거나 급성 췌장염이 반복 재발하면서 췌장 조직 괴사가 일어난다.

순천향대부천병원 소화기내과 문종호 교수는 “일반적으로 마신 술의 총량 보다는 매일 평균적으로 얼마나 마시는가가 췌장염 발생에 더 큰 영향을 준다. 알코올성 췌장염은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빈번하고 40세 전후에 많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만성 췌장염의 25% 정도는 흡연이 원인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문 교수는 “술과 담배를 함께 하면 만성 췌장염 위험이 배가 되므로 멀리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만성 췌장염은 초기에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병이 진행되면서 간헐적으로 반복되는 복통, 체중감소, 소화불량, 설사 등의 증상이 생긴다. 복통은 명치나 복부 왼쪽 윗부분에서 시작되며 등 뒤쪽으로 뻗치기도 한다. 이런 통증은 누우면 더 심해지고, 앉아서 몸을 앞으로 굽히고 무릎을 배쪽으로 당기면 덜해지는 특징이 있다.

급성 췌장염은 알코올 외에 담석, 고중성지방혈증 등에 의해서 발생한다. 담석은 간에서 분비되는 소화효소인 담즙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담낭이나 담관에 생기는데, 이게 췌관(췌장 가운데 대롱처럼 생긴 가는 관)을 막으면 췌장세포가 손상을 입는다. 중성지방이 많으면 유리 지방산(지방이 분해돼 혈액으로 방출된 것)이 늘며 역시 췌장세포에 염증을 일으킨다.

급성 췌장염은 통증이 심해 대부분 응급실을 찾는다. 보통 하루 이틀 금식, 수액 치료를 하면 완화되지만 여러번 재발할 경우 만성 췌장염으로 진행될 위험이 크다. 급성 췌장염 예방을 위해선 고지방식이나 알코올 섭취를 가급적 줄이고 원인이 담석인 경우 제거 수술을 받는 것이 좋다.

특히 만성 췌장염은 췌장암의 씨앗이 될 수 있고 췌장성 당뇨병도 유발할 수 있는 만큼 조기 치료가 더 큰 병을 막는 지름길이다.

한 교수는 “알코올성 급성 췌장염 환자들은 응급 치료 후 반짝 좋아지면 다시 술을 입에 댔다가 다시 응급실을 찾는 경우가 많다. 반복되면 만성 췌장염과 당뇨병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엔 1회의 급성 췌장염으로도 췌장성 당뇨병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해외 연구보고도 있는 만큼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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