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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터키→튀르키예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관문 역할을 해온 터키는 나라 이름 때문에 종종 곤욕을 치른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 퇴폐 업소 ‘터키 목욕탕(토루코부로·トルコ風呂)’이 유행했는데 이를 보고 놀란 한 터키인이 본국에 신고했다. 이 문제가 외교갈등으로 비화하자 일본은 명칭을 ‘소프랜드’로 바꾸었다. 일본식 퇴폐문화를 베껴온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주한 터키 대사관은 우리 정부에 서한을 보내 “터키에서 매음굴을 한국관이라고 하면 당신들 기분이 좋겠냐”고 항의했다. 6·25 전쟁에 참가해 한국을 도운 터키에 대한 모독이라는 여론이 들끓자 터키탕에서 증기탕으로 이름을 바꿨다.

터키인들은 국제사회가 자국 이름으로 ‘터키인의 땅’라는 뜻의 튀르키예(Tuerkiye) 대신 영어식 발음 터키(Turkey)로 쓴다며 불만이 많았다. 터키와 전혀 관련 없는 ‘칠면조’나 ‘실패작’이라는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어서다. 터키라는 명칭은 16세기 터키 상인들이 아프리카 동부의 마다가스카르가 원산지인 칠면조를 유럽에 터키 닭이라고 소개한 게 유래라는 설도 있다.

터키 정부는 지난 연말부터 국제 표기 변경 캠페인을 벌여왔는데 지난 1일 유엔이 이를 승인했다. 이 캠페인은 장기 집권 중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정통성을 드러내는 한편, 미국 러시아 등 강대국 영향권에서 벗어나려는 민족주의 흐름에 편승하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우크라이나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이후 러시아어 발음으로 표기돼 온 수도 키예프를 자국어 발음 키이우로 바꾼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련 영토였던 조지아도 2005년부터 러시아식 표기 ‘그루지야’를 따라 쓰는 나라에 영어식국호(Georgia)를 써달라고 요청했다. 한국과 일본은 각각 2011년과 2015년 조지아로 표기를 바꿨다. 중국과 북한 등은 아직도 그루지야를 쓴다. 진영에 따라 국호 표기가 갈려 있는 셈이다.

이동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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