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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좀비 신드롬 뒤엔 좀비 전문 배우들의 땀과 눈물 있죠”

국중이 감독이 지난 9일 서울 중구 CJ제일제당센터에서 인터뷰를 갖고 춤꾼에서 좀비 안무가, 영화감독으로 활동영역을 넓혀온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국중이 감독(오른쪽)이 처음으로 감독을 맡은 단편영화 ‘29번째 호흡’ 촬영 현장에서 배우에게 연기 지도를 하고 있다. CJ문화재단 제공


영화 ‘29번째 호흡’ 포스터. CJ문화재단 제공


“뭐, 난 사람 하면 안 돼? 나도 현장에서 대사 좀 해보자. 맨날 꾸엑꾸엑거리지만 말고… 나 맨날 좀비만 하니까 계속 좀비만 하잖아, 어? 내 필모 이만큼 있는 거, 그거 다 좀비야. 이러다가 좀비로 내 연기 인생 쫑날 것 같다고.”

국중이(37) 감독의 영화 ‘29번째 호흡’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전아희가 동료 배우에게 말한다. 오디션을 보러 간 그는 영화 출연 경험을 묻는 감독에게 “‘부산행’의 감염자, ‘킹덤’의 역병 환자”라고 답한다. 이들 역할의 공통점은 좀비다. 영화는 좀비 전문 배우 이야기다.

첫 단편영화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왓챠가 주목한 단편상’을 받은 국 감독을 지난 9일 서울 중구 CJ제일제당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이런 역할을 하는 배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좀비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는 지금 이 이야기를 하면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처음엔 사비로 제작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어 “CJ문화재단의 단편영화감독 지원사업 ‘스토리업’에 선발되면서 판이 커졌다. 전주영화제도 친한 사람들과 놀러 간다는 기분으로 참석했는데, 상이라는 게 막상 받으니까 기분이 좋더라. 감사하다”고 했다.

국 감독은 열아홉 살 때 동대문 밀리오레 쇼핑몰 앞에서 ‘데뷔 무대’를 가진 춤꾼이다. 엑소 등 아이돌 그룹의 데뷔 전 트레이너를 맡고 개인레슨도 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한 가수 박재범은 이번 영화의 투자자다.

국 감독은 “연출 경험이 전혀 없는데 다른 영화감독과 경쟁하려니 압박감이 있었다. 시나리오와 CJ 스토리업 선발 관련 기사를 보여줬더니 선뜻 자금을 지원해줬다. 회수할 거란 생각은 안 했을 것 같다”며 열없이 웃었다.

영화판에도 춤추다가 뛰어들었다. 2018년 박재범의 콘서트에 함께 참여한 안무가 전영이 ‘킹덤2’ 안무감독을 제안했다. 본브레이킹(관절을 비틀어 추는 춤) 댄서인 전영은 연상호 감독의 영화 ‘부산행’과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의 안무를 담당했다. 무서운 좀비물을 즐기지 않아 처음엔 거절했지만 두 달가량 좀비 안무 트레이닝을 받고 작품에 참여했다.

좀비는 실제가 아닌 가상의 존재이기에 자유자재로 창작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국 감독은 “주로 좀비 영화를 보고 동작을 연구한다. 갓 태어난 송아지가 일어서려다 넘어지는 모습 등 동물의 움직임도 많이 본다”며 “감독들은 새로운 좀비, 변형된 좀비를 요구하지만 정형화된 모습을 벗어나면 보는 사람이 좀비처럼 느끼지 않을 수 있어 쉬운 작업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좀비의 몸짓을 만들고 구현하는 데 춤추는 사람이 배우보다 유리할까. 그는 “단순히 움직임의 관점에서 보면 유리하지만 카메라 앞에서 표현하는 건 배우들을 못 따라간다”며 “움직임이 안 돼도 표정이나 연기로 커버할 수 있는 부분이 있더라. 움직임을 잘하는 사람에게 연기를 가르치느냐, 연기를 잘하는 사람에게 움직임을 가르치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국 감독은 넷플릭스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 tvN 드라마 ‘해피니스’, 영화 ‘방법-재차의’ 등에 좀비 역으로 출연했다. 연상호 감독의 ‘지옥’에선 배우 김신록이 연기한 박정자의 대역을 맡았다. 죽어서 뼈만 남아 전시돼 있던 박정자가 다시 살아나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그의 영화엔 실제로 여러 작품에서 함께 좀비 역할을 한 동료 배우가 등장한다. 국 감독은 “영화를 보고 감정이 북받쳐 우는 친구도 있고 감사하다고 얘기하는 친구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그 안에서도 누군가는 결국 ‘대사’를 못하고 주연을 하고 싶었지만 못한 경우가 생겼다. 좀비 배우를 조명한 영화에서조차 좀비 역할만 한 친구들이 있어서 미안하고 고마웠다”고 돌이켰다.

CJ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지만 부담감은 컸다. 그는 “영화업계 종사자인 스태프와 배우들을 모아놓았는데, 감독인 나는 연출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내 이야기를 들어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며 “실제로 현장에선 정말 재밌게 찍었다. 좋은 분들을 만났고 다들 잘해주셔서 무사히 완성하고 좋은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고 공을 돌렸다. 윤가은 감독과 임대형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 등을 하는 데 멘토가 돼줬다.

그는 영화가 춤추는 사람들이 전문가로서 영역을 넓힐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국 감독은 ”좀비 영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직업적인 기회가 될 것”이라며 “영화에 무술팀이 있듯이 안무 분야도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늘어나지 않을까. 히어로물이나 음악영화 같은 데서 캐릭터의 움직임을 고안하는 등 안무가들이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인 것 같다”고 조심스레 분석했다.

영화를 한다고 춤추는 일을 그만둔 건 아니다. 박재범이 만든 댄스팀 MVP에서 활동하며 엠넷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에서 홀리뱅과 퍼포먼스를 펼쳤다. 국 감독은 “허니제이와 오랜 인연을 갖고 있다. 함께 무대를 만들면 어떻겠냐는 전화를 받았다”며 “영화 작업 하느라 춤 연습을 잘 못 하던 때라 부담스러웠지만 오래 함께한 사람들끼리 모여 만드는 무대가 재밌고 좋았다”고 돌이켰다.

20년 춤꾼으로서 ‘스우파’를 시청한 기분을 물었다. 그는 “처음엔 ‘사람들이 과연 재미있어할까, 우리끼리만 재밌지 않을까’ 궁금했다”며 “친구들이 잘돼서 좋다. 10년만 젊었어도 ‘스트리트 맨 파이터’에 달려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좋아서 시작한 춤이지만 댄서라는 직업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은 늘 있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좋은 춤은 춤추는 사람이 행복한 춤이다. 하지만 금전적인 문제가 연결되면 내 춤은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야 하는 춤이 되고, 완전히 다른 의미로 돈 벌 수 있는 춤이 좋은 춤이 된다”며 “댄서들은 레슨이나 무대 심사 같은 게 주 수입원이다.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하루 수업하기 위해 1~2주 준비하는데도 적절한 보수 측정은 안 되는 게 현실”이라는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영화에 또 도전할까. 그는 ‘내적 갈등’ 중이다. “‘29번째 호흡’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 같은 느낌으로 만들고 싶었다. 운 좋게도 주변에서 잘 만들었단 평가를 해주셨지만 영화 공부를 해둔 게 없어 나중엔 그게 탄로 날 거 같다”면서도 “시작하면 결과물을 꼭 내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그만두더라도 장편까지는 해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있다”고 털어놨다.

장편을 만든다면 이번 단편영화를 바탕으로 만들어볼 계획이다. 덜어낸 신들이 많기 때문이다. 단편은 짧아서 주는 임팩트가 있지만 길이를 1시간 분량으로 늘렸을 때 사람들이 재밌어할지는 알 수 없다. 그는 “20분짜리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서 담배를 6갑은 피운 것 같다. 글 쓰는 건 너무 어렵다. 글 쓰는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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