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양구 (9) 교육부터 농업까지 배움의 시간 된 해외공관 생활

이양구(왼쪽) 전 우크라이나 대사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프랑스 대사관에 있으면서 평등과 권리, 책임의 가치를 경험했다. 이 전 대사가 파리 몽마르트르의 한 카페에서 아내, 지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


상황과 환경이 어떠하든 배울 게 있다는 건 해외 공관 생활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프랑스 대사관에서 참사관으로 있을 때다. 프랑스에 대한 첫인상은 격하게 표현해 ‘개판’이었다. 어떻게 이런 나라가 G7이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며 제국이 됐을까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교육에 그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프랑스는 능력의 평등을 법과 기회의 평등과 동일하게 적용하지 않았다. 특히 교육은 개인의 역할과 실력에 맞는 옷을 입혀줬다. 엘리트는 그에 맞는 교육을 받았고 이들은 프랑스 행정과 경제를 이끌었다. 천편일률적 교육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태복음 25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주인은 종들에게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다. 종들의 능력에 맞게 달란트를 맡기고 이를 극대화하는지 보는 게 성경의 메시지였다. 만약 주인이 능력에 상관없이 평등이라는 틀에 갇혀 동일하게 달란트를 맡겼다면 어떻게 됐을까. 다양성과 역동성은 죽을 수밖에 없고 발전의 동력마저 잃게 된다는 걸 알려 줬다.

프랑스에서 권리와 함께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는 사실도 학습했다. 미국 워싱턴의 한국 전쟁 추모 공원에는 ‘프리덤 이즈 낫 프리(Freedom is not Free)’가 쓰여 있다. ‘자유에는 공짜가 없다’는 이 말은 권리와 책임이 같이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자유와 방종이 구분돼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우리 사회는 차별금지법, 동성애 합법 등을 두고 뜨겁다. 자유만 강조하기보다 이를 먼저 합법화한 프랑스 사례를 보는 건 어떨까 싶었다.

2007년 카자흐스탄에서 3년간 있으면서 ‘전문가의 함정’도 경험했다. 전문가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한 분야를 깊게 파는 전문가와 넓은 시야로 보는 전문가다. 객관성 있게 사안을 보려면 깊이와 너비의 시각이 만나야 한다. 그런데 카자흐스탄에선 깊이 파는 전문가의 의견만 수용하는 게 보였다.

MB정부 시절 자원외교가 활발했던 그때 유전 지대인 악타우에 갔다. 유전은 광구 지역 탐사, 광구 개발 그리고 생산 등 세 단계로 개발해야 한다. 먼저 지질학 등 전문가를 투입해 광구에서 석유가 얼마나 나올지 탐사한다. 최소 10년 걸리고 우리나라가 성공할 확률은 25%에 불과하다. 비용도 엄청나게 소요되는데 유전만 터진다면 말 그대로 ‘로또’다. 탐사를 마치면 광구를 개발하고 생산한다.

외국의 경우 광구 탐사부터 개발, 생산까지 의사를 결정하는 구조가 우리와 달랐다. 협상 법률 지질 전문가 등이 팀을 이뤄 의견을 수렴하니 실수는 최소화했고 결정은 빨랐다. 덕분에 자원외교의 중요성과 방법을 알게 됐다.

카자흐스탄에서 중요성을 알게 된 건 또 있다. 바로 농업이다. 농업이 에너지 환경 바이오로 연결된다는 걸 현장에서 지켜봤고, 유라시아 실크로드를 꿈꾸는 계기가 됐다. 지정학의 중요성도 알게 됐다. 농업과 실크로드 비전 등을 통해 이후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우크라이나에서 근무할 때 실크로드 비전을 구상하며 구체화할 수 있었다.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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