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한마당

[한마당] 처칠과 애틀리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의회는 집권당인 보수당과 제1야당인 노동당이 모두 참여하는 전시 내각을 구성했다. 국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연립정부였다. 보수당의 윈스턴 처칠이 총리를 맡았고 노동당 당수인 클레멘트 애틀리(1883~1967)가 부총리를 맡았다. 노동당은 노동장관과 내무장관 자리를 맡았다. 전쟁과 외교는 처칠 총리를 중심으로 한 보수당이, 내치는 노동당이 맡는 연립정부였다. 전쟁이 끝난 뒤 실시된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이 단독 과반을 확보하며 집권했다. 처칠은 실각했고, 애틀리가 총리가 됐다. 애틀리 총리는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고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불리는 대대적인 복지 정책을 폈다. 애틀리 총리는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총리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거국내각 혹은 연립내각은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없거나 전쟁과 같은 비상시국에서 구성된다. 대통령제하에서 연립내각은 실효성이 떨어진다. 집권당이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도 대통령 임기가 보장되고 행정부가 대통령에 속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파문이 확산되던 2016년 정치권에서 거국중립내각이 논의됐다. 박 전 대통령은 2선으로 물러나고 여야가 합의한 국무총리가 국정을 운영하자는 아이디어였다. 거국중립내각에 대한 선례가 없고, 박 전 대통령이 이를 거부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의 전시 연립내각을 예로 들며 초당적 협력을 요청했다. 연립내각은 권한과 책임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권한을 주지 않고 일방적 협조만 요청하거나 책임만 강조하는 것은 연립내각 취지에 맞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 선거제도 개혁에 동의하면 국무총리와 장관 임명권을 한나라당에 넘기겠다는 대연정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 윤 대통령이 말한 초당적 협력을 실천하려면 말만으로는 안 된다. 정권을 함께 운영하겠다는 정도의 비상한 각오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남도영 논설위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