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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희의 인사이트] 지도자의 품격



“박수 받을 때 떠나라.”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답다.” 오랜 세월 구전돼온 우리말에는 선조들의 세상살이 지혜와 촌철살인의 의미가 함축돼 있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 했다. 20년 집권론을 외쳤던 더불어민주당은 5년 만에 권력을 내주고 오늘 윤석열정부가 출범했다.

촛불집회 열망을 등에 업고 출범한 문재인정부는 초기 지지율이 84%에 이를 정도로 기대를 받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일성이다. 그러나 5년 뒤 자기 편만 챙긴 ‘내로남불 정권’이란 오명을 안고 역사 속으로 퇴장했다. 문 대통령의 지난 5년간 평균 지지율(리얼미터 조사)은 51.9%다. 직선제 부활 이후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높은 데도 불구하고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그는 어제 퇴임 연설에서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위기 속에서 위기에 강한 나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로 도약했다”며 “우리 정부 동안 있었던 많은 자랑스러운 일들이 대부분 코로나 위기 상황 속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너무나 놀랍다”고 했다. 시장경제 질서를 흐트러뜨려 부동산값을 폭등시키고 코로나 방역에 실패해 국민을 고통에 빠트린 대통령의 자화자찬이다. 그러면서 다음 정부에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게 중요하다. 선거 과정에서 더욱 깊어진 갈등의 골을 메우며 국민통합의 길로 나아갈 때 대한민국은 진정한 성공의 길로 더욱 힘차게 전진할 것”이라고 훈수를 뒀다.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훼손하고 국론 분열과 갈등을 심화시킨 장본인이 할 말은 아닌 듯하다. 5년 재임 기간 무엇을 하다가 새 정부를 향해 공자님 말씀을 하는지 뜬금없다.

문 대통령의 떠나는 뒷모습은 아름답지 못했다. 승자에게 너그러운 박수와 응원을 보내는 대신 사사건건 몽니를 부리는 모습은 민망했다. 구중궁궐 인의 장막 청와대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했던 그다. 퇴근길에 남대문시장에서 서민들과 막걸리 한잔 나누겠다고도 했다. 그랬던 그가 자신이 못 지킨 약속을 실천하려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딴지를 걸었다. 북한의 빈번한 도발에도 침묵하던 그가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놓고 안보 운운하는 것은 대인배답지 못했다.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민주당이 정권교체 직전 쫓기듯 밀어붙이는 데도 문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여야 정치인 등 힘 있는 자들만 법망을 빠져나가고 자기를 방어할 힘없는 서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것도 무시한 채, 명분도 없는 법안 통과에 동조했다.

이재명 전 경기지사는 기다렸다는 듯 국회의원 배지를 달겠다고 인천 계양을 출마를 선언했다. 대선 패배 후 두 달 만이다. 대장동 개발특혜 의혹과 성남FC 후원금 의혹,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 고구마 줄기처럼 엮인 비리 의혹 수사에 대비한 방탄용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은 현행범이 아닌 이상 회기 중에는 국회 동의 없이 체포 구금되지 않는 불체포특권을 갖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통령이 되겠다던 사람이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출마할 까닭이 없다. 검수완박을 밀어붙인 민주당의 저의가 ‘이재명 문재인 구하기’라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흔히 언론을 하이에나에 비유한다. 새로운 최고 권력에는 침묵하고 약발이 떨어진 권력을 물어뜯는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이런 불편한 시선에도 떠나는 대통령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지지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라크 파병 등을 결정해 훗날 높은 평가를 받는 노무현정부 시즌2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다. 아울러 반쪽짜리 정부로 시작한 윤 대통령이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적 전망은 51.4%, 부정적 전망은 44.6%다. 정권 초 ‘허니문’도 없는 것을 보면 올드보이 내각 구성과 엘리트 강골의 불통 이미지 때문인 듯하다. 자신을 찍지 않은 절반의 국민을 껴안고, 과반 의석을 무기로 사사건건 발목 잡기를 하는 민주당을 넘어야 하는 험난한 과제를 안고 있다. 윤 대통령이 5년 뒤에는 온 국민의 박수를 받으며 떠나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이명희 종교국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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