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나침반이 된 성경말씀] 모친 ‘이사야 꿈’ 40년 만에 다시 공의 구하는 길로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사 32:1)

내가 대학 들어가던 해 어느 날 새벽, 어머니는 꿈속에서 “이사야 32, 이사야 32”하는 음성을 듣고 한 달간 새벽기도를 다니셨다. 어머니가 교회에 출석하시지도 않던 시기의 일이다. 이 일을 까맣게 잊으셨던 어머니는 내가 80년대 학생운동 격동기에 서울대 학생회장이 된 이후 그 꿈을 기억해내셨다. 그리고 32장 9절 ‘너희 안일한 여자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라는 구절에 감동받아 평범한 주부에서 변신, 민주화운동가족협의회 초대의장이 되어 전국 감옥에 갇힌 양심수들을 도우셨다.

청주교도소에 갇힌 22살 청년으로, 군부독재를 뚫고 나라를 구하는 길은 혁명밖에 없다고 부르짖던 어느 겨울밤. 나는 예상치 않게 내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났고 바로 그때 “이 밤도 너를 위해 눈물로 기도한다”는 말로 마무리된 큰아버지 편지를 받고 그 자리에 무너져 펑펑 울며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큰아버지는 10대에 시력을 잃고 평생 찬양 간증을 다니시던, 가난하지만 자랑스러웠던 장로님이셨다.

나는 그 후에도 수많은 일탈과 오류, 반성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하나님나라만이 이 세상을 구하는 진정한 구원과 해방의 길임을 근본적으로 믿는다.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나의 정치역정은 굴곡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2002년 이명박 전 대통령과 맞섰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한 이후 18년 만에 국회에 복귀한 지난 총선 당시 나의 선거사무소에는 “하나님과 국민이 가장 두렵고 감사합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내게 주어졌던 18년 광야 경험의 한 줄 요약이자 고백이었다.

광야를 지나 다시 시작한 정치 좌표를 오래 묵상한 끝에 의원실 벽에 ‘의(義)’라 쓰인 액자를 걸었다. 동양고전 중용(中庸)은 ‘어진 이를 존경하는 것이 의’라 설명한다. 하나님의 양(羊)과 내(我)가 결합된 의라는 한자는 얼마나 경이로운가.

며칠 전 할아버지의 유언편지를 필사했다. 12자녀가 낳은 손주들 중 우리 3형제에게만 남기신 그 편지에는 “좋은 사람 되려면 성경을 열심히 읽고 기도에 힘쓰라”는 할아버지의 절절한 기도와 권면이 담겨있다. 부산 부전교회 장로셨던 할아버님 묘비에는 ‘우리 집안 믿음의 조상’이라고 쓰여 있다.

어머님의 꿈에 나타났던 이사야 32장의 ‘공의’를 구하는 길에 내가 다시 서는 데 대학입학 이후 40년이 흘렀다. 할아버지와 큰아버지의 기도가 가졌던 뜨거운 사랑의 힘을 경험했기에 나는 수천 년의 시간과 수만 리의 거리를 뛰어넘어 작동하는 예수님의 위대한 기도의 힘을 의심 없이 믿는다.

기도는 사랑의 결정체이다. 나 또한 자녀들에게 그런 기도를 남기는 부모가 되길 원한다. 기도만이 이 세상 수많은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켜주고 삶의 길을 비춰준다는 확신으로 오늘도 새벽기도를 한다. 우리 가정이 섬기는 신길교회가 코로나 비대면의 시간을 중단 없는 뜨거운 예배로 이겨내 감사하고 자랑스럽다. 코로나가 끝나는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이 뜨거운 기도로 세상의 공의를 회복하는 선두에 설 때라 믿는다.

약력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제15·16·21대 국회의원(영등포구 을) △미국변호사(뉴저지주) △민주연구원 원장 △김대중 대통령 총재 비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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