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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유느님의 비애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과 달리 연예계의 정치색을 상당히 경계한다. 이승만 정권 시절 정치깡패 임화수의 ‘반공예술인단’, 군사정권의 정치 선전용 들러리로 연예인들이 동원된 기억 때문인 듯하다. “지구를 떠나거라” 등 유행어로 1980년대 절정의 인기를 누린 개그맨 김병조의 설화는 대중의 이런 시각을 더욱 굳히게 했다.

김병조는 1987년 6월 10일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민주정의당 전당대회에서 막간에 사회를 봤다. 김병조는 “민정당은 국민에게 정을 주는 당, 통민당(당시 야당인 통일민주당)은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당”이라는 뜻풀이를 했다. 참석자들은 포복절도했지만 국민은 분노했다. 그날은 6·10 민주항쟁일이었다. 김병조는 이후 연예계 에서 사실상 퇴출되다시피 했다.

분위기는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조금씩 바뀌었다. 대선 승리에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영향력이 컸던 터라 노사모를 자처하는 연예인들이 눈에 띄었다. 이명박·박근혜정부 하에서 터진 연예계 블랙리스트 사태는 진보 성향 연예인들의 인기를 끌어올렸다. 김제동, 김미화, 가수 윤도현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뿐. 문재인정부 들어 블랙리스트 연예인들에겐 ‘친정부’ 딱지가 붙으며 상대 진영으로부터 난타 당한다. 정치에는 무색무취가 답이라는 인식이 연예계에 재확인됐다.

‘유느님’으로 불리며 안티 팬이 거의 없던 최고 연예스타 유재석이 정치 논란에 휘말렸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유재석이 진행을 맡은 tvN의 ‘유 퀴즈 온 더 블럭’(유퀴즈)에 출연한 게 사달이 났다. “왜 윤 당선인만 출연시키느냐” “새 정부에 줄섰다”는 항의가 빗발쳤다. 제작진의 명쾌한 해명이 없자 타깃은 애꿎은 유재석에게 향했다. 상대의 모든 것을 적대시하는 진영 논리는 방송 경력 30년간 구설에 오른 적이 없던 유재석조차 가만 놔두지 않는다. 이쯤 되면 정치인을 예능 PD의 블랙리스트에 올려야 할 것같다. 사회 갈등을 최소화하려면 그게 방법일 듯싶다. 재미야 없겠지만.

고세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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