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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라이프] 버섯 곰팡이·파인애플 잎… 가죽도 ‘친환경 비건’ 시대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가 지난해 선보인 버섯 가죽 소재 ‘빅토리아 백’. 에르메스 홈페이지 캡처


동물 가죽을 대체하는 ‘식물성 원료’ 가죽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대체가죽 기업 마이코웍스의 직원이 버섯 균사체로 개발한 비건 가죽을 살펴보고 있다. 마이코웍스 홈페이지 캡처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에서 내놓은 비건 운동화 ‘바스켓’. 구찌 홈페이지 캡처




파인애플 가죽 ‘피냐텍스’를 만들기 위해 파인애플 잎에서 섬유질을 추출하는 모습. 아나나스 아남 홈페이지 캡처


‘명품 위의 명품’으로 꼽히는 에르메스는 지난해 가을·겨울 시즌 한정판으로 ‘빅토리아 백’을 선보였다. 이 백은 독특했다. 에르메스를 대표하는 악어가죽이 아니라 버섯 곰팡이로 만든 가죽을 사용했다. 에르메스의 악어백은 5000만~1억원에 달하는 초고가 명품이다. 전 세계에서 가방을 사려는 사람들로 대기자 리스트만 수년치가 쌓여있다. 에르메스는 안정적 가죽 확보를 위해 악어 농장까지 운영한다. 그런데 왜 갑자기 버섯 곰팡이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동물 가죽을 즐겨 사용하던 에르메스, 구찌 등의 명품 브랜드들이 최근 들어 ‘비건 가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식습관을 넘어 생활 전반에 걸쳐 자리를 잡은 비건(채식주의자) 흐름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어서다. 인조 가죽도 과거 ‘레자’로 불리던 플라스틱 합성섬유에서 한 발 나아가 버섯 곰팡이, 파인애플 잎 등의 식물성 원료를 활용한 가죽으로 진화하고 있다.

에르메스는 미국의 대체가죽 기업 마이코웍스와 손잡고 3년에 걸쳐 버섯 가죽 ‘실바니아(Sylvania)’를 개발했다. 버섯 뿌리에서 채취한 균사체를 활용했다. 가죽의 촉감, 내구성이 동물 가죽에 밀리지 않는 데다 생산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훨씬 적다. 동물보호단체의 거센 비판도 부담이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강력해진 비건 트렌드다.

에르메스가 당장 악어백을 포기하는 건 아니다. 올리비에 푸르니에 에르메스 지속가능성 책임자는 “가죽을 대체하는 게 목표는 아니다. 에르메스의 소재에 다양성을 추가하는 것”이라며 “이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세상과 상황에 맞춰 진화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비건 가죽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에르메스뿐만이 아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는 지난해 100주년을 맞아 2년에 걸쳐 자체 개발한 목재 펄프 신소재 ‘데메트라(Demetra)’를 선보였다. 식물성 원료가 77%를 차지하는 소재다. 삼림에서 공수한 비스코스 원단, 밀, 옥수수에서 검출한 바이오 기반 폴리우레탄 등을 주성분으로 한다. 이름은 그리스 신화의 농업 여신 ‘데메테르(Demeter)’에서 따왔다.

구찌는 지난해 데메트라를 사용한 바스켓·뉴에이스·라이톤 등의 비건 운동화 3종을 내놓았다. 가방, 액세서리 등에도 신소재를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특히 구찌가 속해있는 케링 그룹의 발렌시아가, 생로랑, 알렉산더 맥퀸, 보테가 베네타 등의 다른 브랜드에도 데메테르를 공급할 가능성이 높다. 마르코 비차리 구찌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데메트라는 동물성 원료 사용을 지양하는 흐름에 부응하는 지속가능한 재료다. 패션업계에 새로운 대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건 패션의 1세대는 흔히 ‘레자’라고 부르는 인조 가죽이다. 매년 10억 마리를 희생해 만드는 동물 가죽을 대체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동물 가죽보다 관리가 편하고 가격은 싸다. 다만, 엄밀하게는 비건 가죽으로 볼 수 없다. 동물윤리 문제를 해결했지만 환경 파괴라는 부작용은 남았기 때문이다. 인조 가죽은 플라스틱 원료를 사용한 폴리우레탄(PU)과 염화비닐수지(PVC)로 만들어진다. 분해되는 데 수백년 걸린다. 비동물성 원료 사용과 친환경 모두를 추구하는 비건으로서는 새로운 대안이 필요했다.

새롭게 떠오르는 건 식물성 원료를 이용한 가죽이다. 버섯을 비롯해 파인애플 잎, 선인장, 사과 껍질, 포도 줄기, 오렌지 껍질 등으로 재료도 다양하다. 이탈리아 와인 양조장에서 나오는 포도 찌꺼기를 이용한 ‘베제아’, 멕시코에서 가장 흔한 식물인 선인장을 가루로 만들어 압축한 ‘데세르토’ 등이 개발됐다. 기술이 발전하며 질감이나 내구성도 동물 가죽과 비슷해져 ‘인조가죽=싸구려’라는 선입견도 벗었다.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건 파인애플 가죽이다. 영국의 패션기업 아나나스 아남은 필리핀 파인애플 농장에서 나오는 잎과 줄기 등의 폐기물로 비건 가죽 ‘피냐텍스’를 개발했다. 섬유질을 추출해 고무 성분을 제거한 뒤, 부직포처럼 만들어 압축하는 방식을 쓴다. 매년 825t의 파인애플 잎 폐기물을 태우며 발생하는 탄소 약 264t을 줄일 수 있는 데다, 농부에게 새로운 수익을 안겨준다. 나이키뿐만 아니라 H&M, 푸마, 휴고 보스, 폴 스미스 등이 피냐텍스를 이용해 운동화를 만들고 있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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